16세기 교회개혁에 결정적 영향 미친, 14세기 ‘이단’ 존 위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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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이단자들 21] 존 위클리프의 개혁신학 (2)

가시적 교회에는 택자와 불택자 함께 있어
교황도 하나님의 구원과 무관할 수 있다는
파격적 사상, 로마교회와 날선 대립각 세워

▲존 위클리프.
▲존 위클리프.

3. 교회

위클리프는 교황과 교회에 대해 증대되는 영국인들의 혐오감을 의식하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성경의 권위에 관한 신학 저작물을 내놓은 그 해에 『교회에 대하여』 (De ecclesia, 1378)를 펴냈다.

교회를 눈에 보이는 유형적 계급이 아니라 영원하고 불가시적이며 이상적인 실체로 여겼다. 교회를 가시적 조직체와 불가시적 영적 실체로 나누었다. 이 관점에는 어거스틴의 교회 이해가 반영돼 있다.

위클리프에 따르면, 가시적 교회에는 성도와 죄인, 택함을 받은 자와 버려진 자가 함께 있다. 그러나 불가시적 교회 곧 참 교회는 유형적 계급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 교회는 구원받도록 택정된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무형의 몸이다. 우주의 터전이 놓이기 전에 예정을 받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교회 곧 불가시적인 우주적 교회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없다. 누가 예정을 받은 사람인지 분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시적인 교회는 세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죽어 하늘에 있는 성도들로 구성된 승리한 교회, 예정받은 자들로 구성된 이 땅 위의 전투적인 교회, 연옥에 있는 자들로 구성된 잠자는 교회다.

위클리프는 실재론 철학 사상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마음 속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육신 전에 이미 존재했다고 보았다. 지상의 가시적 교회에는 선택을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는 바, 그 차이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은 자들의 경건한 삶과 순종에서 드러난다.

그리스도와 타인의 복지에 힘쓰고 이기적이지 않은 헌신으로 나타난다. 누가 선택받는 자인지, 구원을 받은 자인지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기독인은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위클리프는 “목회자가 반드시 덕스러운 행동으로 자기의 신도들을 교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신도들이 목회자처럼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구원에 해당하는 자인지 아닌지는 삶의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다. 비록 가장 높은 직위인 교황조차 구원을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교황이 선택을 받은 자에 해당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선택받은 자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간다. 신앙생활에서 맺어지는 열매들을 보고 선택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교황일지라도 예정의 은총 아래 있지 않으며, 따라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위클리프는 당시의 교황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교황도 하나님의 구원과 무관할 수 있다는 이 파격적인 사상은 로마 교회와 날선 대립각을 세웠다.

위클리프는 교황과 사제들에게 사면(赦免) 권한이 주어져 있다고 하는 교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사제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함은 거짓 주장이다. 그것은 교황이나 사제가 베풀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모든 죄에는 해당된 형벌이 따른다. 아무도 형벌을 면제받을 수 없다. ‘고백성사’에 시행하는 사면 제도와 교회의 면죄부 제도는 교황이 만든 창고에 남아도는 공로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님만이 사면의 은혜를 베풀 수 있다.

하나님도 만족함 없이는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 교황이 면죄권, 사면권을 소유했다면 마구잡이로 사용할 것이 분명하다.

위클리프의 교회관은 여러 명의 교황들의 난립으로 말미암아 추락된 교황의 이미지와 교회의 권위, 그리고 스콜라주의 실재론 철학과 연관되어 있다.

참 교회를 불가시적인 신앙고백 공동체로 보는 성경적 교회관은 가시적 조직체를 절대시하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조화를 이룰 수 없고, 공존이나 병존도 불가능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전경.  ⓒUnsplash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전경. ⓒUnsplash

화체설, 인성 부인하는 가현설과 같다 여겨
빵과 포도주 임하는 그리스도, 영적·실재적
성례적 현존, 사제 아닌 참여자 믿음에 달려

4. 성찬

위클리프의 성찬론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교황 인노센트 3세의 지도 아래,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는 성찬식에서 물질이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공식 교리로 선언했다.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를 향하여 사제가 축성―축복기도를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빵은 그리스도의 육체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로 변환된다.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 때 실제로 본질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피로 바뀐다고 했다.

위클리프는 『배교에 대하여』 (De apostasia)와 『성찬론에 대하여』 (De eucharistia)에서 로마 교회를 비판한다. 이는 1379년에 저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의 성찬론―화체설은 합리적이지 않고, 미신을 조장하며, 성육신 원칙에 저촉된다고 한다.

성찬 시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소멸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화체설에 따르면, 빵이 빵이기를 그만두는 바로 그 순간 그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변환이 일어나려면 대상이 필요하다.

만일 빵의 본질이 제거되고 그리스도의 몸이 시작된다면, 사물을 사물 그대로 인식할 수 없게 된다. 자연지식의 확실성이 붕괴된다. “어떻게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물체 X가 X의 인식가능한 부수적 성질인 다른 Y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실재론 철학을 선호한 위클리프는 화체설이 가현설(假現說)과 대동소이하다고 보았다. 가현설 주창자들은 그리스도가 참 인간으로 오셨음을 부인한다.

화체설은 이와 마찬가지로 주께서 참 물질인 빵과 포도주에 임재함을 부인한다. 위클리프는 축사 후에도 빵은 여전히 빵이고 포도주는 여전히 포도주라고 했다. 빵과 포도주의 입자가 전멸하고(annihilate)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완전히 바뀐다고 함은 타당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질과 연합했을 때 신성의 임재가 인성을 파괴하지 않음과 같이, 성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 빵 속에 실제로 임재하지만 빵의 본질은 파괴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신비적 형태로 성찬에 임재하므로 빵은 살로 변하지 않는다.

위클리프는 그리스도께서 성례에 현존함을 거부하지 않았다. 빵과 포도주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적이고 실재적이다.

성찬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성례적 현존’은 사제의 권면이나 능력이 아니라 참여하는 자의 믿음에 달려 있다.

성례 때 그리스도는 “물이나 다른 액체와 섞은 잔 안에 계시지 않고, 공기 중에 계시지도 않는다. 다만 영혼 안에 현저하게 계신다. 성례식 끝에 그리스도는 영혼 안에 계신다.”

위클리프는 화체설의 근거를 조사하여, 그것이 성경에서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성직자의 권위 남용의 결과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성찬에 관한 논의 전체에서 “현대 박사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은유적 해석의 차이를 막무가내로 다룬다고 그들을 꾸짖었다.

위클리프는 옥스퍼드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이론에 따라 화체설을 의문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비평적 신학자는 관습적으로 받아들여 온 성찬 교리를 배척했다.

성찬식 때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사제의 축성 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과 피로 변환된다고 믿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다.

로마 교회의 의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화체설에 기초한 성찬 미사이다. 위클리프는 경건하지 않은 사제가 집례하는 미사에는 참석하지 않음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위클리프의 성찬론은 로마 교회가 서 있는 미신적인 토대를 단번에 쓸어버렸다.

교황 그레고리 11세가 작성한 위클리프의 죄목 15개 가운데 3개는 화체설을 부인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수도사들과 귀족들은 위클리프의 성찬 교리에 등을 돌렸다. 옥스퍼드의 학자들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소규모의 학자 그룹만이 그의 주장을 환영했다. 대학 당국은 1381년 그의 성찬론을 이단사상으로 규정했다. ‘지진 공의회’로 알려진 불랙프레아 공의회(1382)도 이단 사설이라고 하여 정죄했다.

콘스탄츠 공의회(1415)는 위클리프가 뇌일혈로 사망한 20년 뒤에 그가 제시한 200여 개의 주지들을 이단시하고 그를 ‘이단의 괴수’로 정죄했다. 그의 사상을 추종하고 옹호하는 보헤미아의 얀 후스를 정죄하고 화형에 처했다.

영국 교회는 교회 부속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위클리프의 유골을 파내어 화형하고 재를 스위프트 강에 뿌렸다. 그가 저술한 책들을 “거룩한 땅 밖으로 내팽개치라”고 명했다.

▲최덕성 박사. ⓒ크투 DB

▲최덕성 박사. ⓒ크투 DB

위클리프, 중세 교회에서 미움과 정죄 당해
영국 대신 체코 개혁 신앙인들에게 큰 영향
성경적 진리 충실한 신학, 무엇보다 소중해

맺음말: 비평적 개혁신학자

창의적인 눈을 가진 비평적 신학자는 종종 교회로부터 반감을 산다. 교회는 진정으로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신학자를 이단자로 정죄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왕따’시켜 매장하기도 한다.

위클리프는 교회로부터 지속적인 미움을 받았다. 중세 유럽사회 구조를 개혁할 거대한 진리들을 성경에서 찾아내고 지성적으로 제시하여 개혁과 변화의 위기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위클리프는 왕실 봉사 사역을 마치고 옥스퍼드로 복직하여 연구와 강의에 종사하다가 1381년에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보상으로 받은 루터워드(Lutterworth) 교구에서 저술에 몰두하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다 1384년에 세상을 떠났다.

루터워드 교구는 황실이 그의 왕실 봉사에 대한 대가로 하사한 개인 소유의 교구였다. 상당히 많은 돈을 받고 그것을 수입이 적은 다른 교구와 교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교회 관례는 위클리프도 교구의 수입으로 옥스퍼드에서 생활을 하고, 교구를 매매할 정도로 부패해 있었다. 모순이 보편화돼 있었다.

위클리프의 사상은 영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의 개혁신앙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화체설을 부정하고, 교황제도를 비판하며, 사제의 사면 권한과 면죄부 제도를 배척하고, 수도회 폐지를 부르짖던 위클리프의 이상은 15세기 후스파 교회개혁 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16세기 종교개혁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위클리프가 자신의 신학적 통찰에 힘입어 등장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출현을 예견했더라면, 두려움 때문에 소신 피력을 포기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과 성경적 진리에 충실한 신학은 어느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위클리프의 지성과 학문적 업적은 교회개혁 운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위대한 이단자 위클리프는 시대의 아들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시대를 만들어 나간 신앙의 거장이다.

최덕성 지음, <위대한 이단자들: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6장 2부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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