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3)”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해,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는 것처럼 설교하고 말을 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우리 교회를 나가면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담 이후 타락한 사람에게 축복권과 저주권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런 권세가 사람에게 있다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서 중보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란 본문 해석을 위해 구약의 세 인물을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문제입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9:14)”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중심에는 롯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은 롯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멸망을 예고하는 롯의 말까지 농담으로 여기는 불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그리고 롯의 딸들이 아버지와 동침(근친상간)한 후 큰딸은 모압 족속의 조상을 낳았고, 작은딸은 암몬 족속의 조상을 낳았습니다. 그 후 모압과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롯은 소돔과 고모라는 물론 아내와 딸들에게 화를 불러온 인물이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요셉은 범사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 39:3)” 요셉에게는 축복권과 저주권이 없었습니다. 오직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요셉을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화가 변하여 복을 받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다니엘 선지자의 설교를 한두 번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훌륭한 말씀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 그런 신앙 덕분에 다니엘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단 3:29)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 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결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롯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살면 자신은 물론 주변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요셉과 다니엘처럼 말씀에 순종하고 살면 자신은 물론 주변이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은 성경 해석의 마스터 키(master key)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가정과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신 5:10)” 반면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 14:18)” 그리고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신 7:10)
사람은 남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마 71~5).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서만 하십니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대상 16:7~14)”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억울함을 다 알고 계십니다.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 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시 57:6)” 기도의 능력은 서로 죄를 고하고 거룩한 삶을 살 때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인간에게 축복권과 저주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소금이며, 빛입니다. 그런 의무를 잘 감당하면 내가 복을 받고, 가정과 세상이 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 때문에 7년 기근 때 온 가족이 복을 받았고, 애굽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내용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사람은 그 누구도 축복권과 저주권이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나라와 민족,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만 할 뿐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