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읽는 설교 211] 베드로의 신앙고백
본문: 요한복음 6장 68-69절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하는 현장입니다. 제자로 불릴 정도의 사람들이 영생에 대한 진리에 대해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저 하늘나라보다 눈앞의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때 주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답변은 신앙고백의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영생을 인정하는 믿음
영생을 믿는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68절에서 베드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서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허탈한 현장을 보면서, 제자들을 대표해 지금의 상황을 수습하는 발언을 하게 됩니다. 그 답변이 유명한 신앙고백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주님의 시선이 베드로에게 향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답변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라 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나서는 것은 베드로의 성격과도 관련됩니다. 나서기를 좋아하고 대표하기를 좋아하는 베드로의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대 상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신앙적 차원에서, 너무나 위대한 답변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라는 고백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영생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기에 주님의 말씀하시는 영생도 믿습니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주님을 따르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단순히 관념적인 동의와 고백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완전한 지식에 도달한 완벽한 고백입니다. 믿음은 확신의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알지 못한다”는 원리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영생의 진리를 불러 일으키는 믿음은 넘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2. 비장한 결심의 믿음
비장한 결심의 믿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는 수사적 표현입니다. 아무에게도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주님을 따를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이는 단순한 고백을 넘어, 엄청난 각오가 담긴 결심입니다. 비장한 결심의 믿음입니다.
베드로의 비장한 결심에서는 “그냥 따라보다가 아니면, 물러나겠다”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니 목숨을 걸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비장함이기 때문입니다.
비장한 각오의 모습에서 우리는 배수진(背水陣)을 생각합니다. 군대가 물을 등 뒤에 두고 물러서지 않고 목숩을 걸고 싸우는 전투입니다. 뒤로 물러서도 죽으니,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결연한 전투자세입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배수진’을 치고 노력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물론 중국 한나라의 명장 한신에게 배수진은 상대방을 유인하려는 유인책이었습니다. 배수진을 친 군사들이 적의 주의를 끌어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척 시간을 끕니다. 그 사이 매복해 있던 2천의 군사가 적을 무찌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오늘에도 이 배수진의 정신만은 남아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지금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 배수진의 정신을 가졌습니다. 현세적 명예나 메시아적 영광을 찾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생의 진리만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순교를 했다는 데서 역사적인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모두 목숨을 내놓는 순교로 그 믿음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믿는 믿음
주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믿는다는 믿음입니다.
69절은 가장 확실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믿는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엄청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주님이 신적 특성을 가진 신성(神性)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자의 신성은 주님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신 분으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대단한 말이요, 믿음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정신이 이상해서 하는 고백이 아니라, 멀쩡한 정신에서 한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모든 기독교인의 완벽한 신앙고백의 모범으로 인정하는 이유입니다.
때로 우리는 영적인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갈등하는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현실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고백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아직도 믿음이 적은 사람은 영생의 진리를 붙들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생의 말씀으로 살고 죽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주석가 메튜 헨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생의 진리를 붙들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의 사랑을 버리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약속된 메시야,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죄의 용서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주님의 진리만이 우리에게 자신감과 위안, 기쁨을 줍니다. 두려움과 낙담이 사라지도록 만듭니다. 주님의 영생의 진리는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생의 진리를 마음에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정리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가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은 삶이 더 짧을지 모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영생의 진리를 확실하게 믿어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인정하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우리는 비장한 결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임을 믿게 하소서. 주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