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직한 삶과 아름다운 선택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38-42)”.
우리는 종종 솔직함과 정직을 혼돈 하며 살아갑니다. 사전적 의미는 둘 다 ‘거짓이나 숨김없이 바르고 곧다’로 얼추 비슷합니다. 그러나 솔직함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정직은 상대방을 배려하여 잘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함은 때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이라는 말은, 어쩌면 ‘지금껏 널 배려했지만 이제 내 감정에 충실할 테니 각오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상대방을 배려하고 진실을 사랑하는 거짓 없음, 즉 정직이야말로 최고의 성공 비결 아닐까요?
요즘 정치권을 보면 솔직함과 정직은 사라지고, 온갖 꼼수와 권모술수만 판을 칩니다. 정의와 공의는 당연히 보이질 않습니다. 아이들도 일상생활 대화 중 ‘정말인가요? 진짜인가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할 정도입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의 가장 큰 덕목은 정직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가르침과 성경책을 교과서 삼아 읽고 실행한 결과 높은 학문을 배웠던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인재가 되었습니다.
링컨은 중상과 모략이 판치는 정계에서도 ‘정직이 가장 큰 무기’라는 신념으로 일관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니스트 에이브’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정직한 에이브’란 명예로운 수식어였습니다.
우리 삶은 선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싫든 좋든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몇 시에 일어날지, 어떻게 씻을지, 무엇을 먹을지, 내일은 무엇으로 시작할지 등을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일상적 선택은 늘 하던 대로 하는 경향이 있기에 선택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들 역시 모두 일종의 선택입니다.
윤리적 선택에는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 더 나은 것과 더 나쁜 것 등의 양자택일이 있습니다. ‘결정론’은 동기와 의지가 물리적·심리적·사회적, 심지어 무의식적과 힘과 더불어 인과적으로 완벽하게 얽혀 있다는 이유에서, 선택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자유롭고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에덴의 낙원에서조차 탐심이 발동하여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인류 역사상 최대 비극을 초래했던 아담과 하와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금까지 핍박과 고통 속에서 죄악이 판치는 세상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연일 득점포를 터트려 한국인으로서 전설을 써내려가, 마침내 득점왕 자리에까지 오른 선수가 연일 화제입니다. 그에게는 오늘날 슈퍼스타가 되기까지, 든든한 조력자인 아버지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로, 때로는 엄격한 아버지로, 때로는 엄격한 호랑이 코치로 아들을 가르쳤고, 결국 아들을 최고의 축구선수로 키워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축구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먼저 인성을 가르쳤고, 겸손한 삶의 자세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내년 1월 춘천에 문을 열 예정인 체육공원도 아버지의 설득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아들아, 170억으로 건물을 사면 우리는 앞으로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돈을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면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일 것 같다.”
아들은 아버지의 권유에 망설이지 않고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축구 꿈나무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축구장 2면과 풋살장 2면, 족구장 1면 등의 시설을 갖춘 7만 1,000여 제곱미터 규모의 체육공원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얻은 부를 자신과 가족들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지만, 아버지와 그는 자신들만을 위해 쓰기보다 이웃을 위해 베푸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기억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을 돕기로 한 선택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선택이 아닐까요?
그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축구선수 손흥민입니다. 누구에게나 작고 초라했던 과거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를 기억하고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려운 환경 때문에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축구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손흥민 체육공원’.
‘초심을 기억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선택을 하게해준 아버지 손웅정 감독과 손흥민 부자를 응원합니다’라는 유튜브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가슴에도 고요한 울림이 적셔옵니다.
이 밖에 맨 처음 유럽으로 진출한 차범근 감독을 비롯해 박지성 등 많은 축구 스타들이 유럽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습니다. 야구도 박찬호를 시작으로 류현진과 최지만, 김하성과 박효준 등 많은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골프도 박세리로부터 많은 여성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고, 수영 황선우, 높이뛰기 우상혁, 탁구, 배드민턴, 펜싱, 양궁, 태권도, 유도, 레슬링, 마라톤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종목에서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면서 국위를 선양하는 모습에서, 이 나라의 국민 됨이 뿌듯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특히 예술에서는 최근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을 비롯해 음악과 미술,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가 된 BTS와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박찬욱·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전도연 등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의 아들 딸들이 많이 있어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짜증스럽고 보기 싫은 분들이 방송을 넘나들면서 하는 행동은 차마 눈뜨고 보기 민망스러울 지경입니다. 입술에 꿀을 발랐는지 툭 하면 국민을 위한다는 달콤한 거짓말을 듣다 보면, 저들이 정말 최고의 학문을 배운 분들이 맞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고 구역질이 절로 나옵니다. 이럴 바에는 아예 국회의원을 없애고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아 나라 일을 맡기는 편이 옳지 않을까요?
국민을 위하는 일이 고작 정직하지 못한 입술과 행동으로 남을 의심하며, 자신들만 옳은 것처럼 주위 여론이나 국민들의 염원에는 관심 없이 내로남불 정치를 하는 저들은, 좀전에 이야기했던 손흥민 선수 부자에게 무릎 꿇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40년 넘게 섬긴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을 잠시 소개합니다. 교회가 부흥하여 2천 명 넘는 교인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복지센터를 만들자는 제안이 당회를 통과해 사회복지관과 요양원, 그리고 장애인 복지기관과 노인대학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재단 명칭을 공모했고, 저는 밤을 세워가며 많은 명칭을 응모하였습니다.
공모 결과 제가 지은 명칭이 당선되었습니다. 하루는 수요기도회 때 교회를 나가지 못했는데, 담임목사님께서 복지재단 명칭 공모 당선작에 대해 포상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이후 성도들이 알려줬습니다.
제가 지은 이름을 재단명으로 사용한다는 기대로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복지재단 오픈식이 내일모레인데, 당선자인 제게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주일 당회가 열렸습니다. 당회 중이라도 명칭 공모 당선에 대한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장로님 한 분이 “이제 마치기로 동의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깐만요, 목사님께서 지난 수요기도회 설교 도중 명칭 공모 당선자에게 포상을 한다고 이야기했다면서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목사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계속 앉아만 계셨습니다. 이후 장로 한 분이 “마치기로 동의합니다”라고 말씀하셔서, “뭐라고요? 마친다고요? 목사님께서 포상을 하시겠다고 성도들 앞에서 이야기하셨으면,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건 목사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이후에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계셨습니다. 주위에서도 “목사님께서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장로는 아무도 없었고, 얼른 마치기만 바라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지경에 이르러, 저는 잠깐 재치를 발휘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돈이나 어떤 상품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장을 하나 써서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모두들 찬성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돈 한 푼 안 드는 일이니,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언제 그런 명칭을 공모했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을 것이기에, 날짜와 이름이 적힌 감사장이라도 받아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겨우 감사장이라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목사와 장로들의 잘못으로 교회가 분열돼 새롭게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번에도 개척교회 명칭을 공모했는데, 제가 응모한 작품이 당선됐습니다. 이번 교회에서는 예배 중 광고 시간에 포상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포상금으로 받은 돈 전부를 받은 즉시 교회로 다시 헌금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약속입니까? 교회에서는 형편이 어렵지만 약속을 지켜서 좋았고, 상을 받는 저로서는 가문의 영광인데다 전액을 다시 헌금해 교회 재정에 도움이 되는 일석삼조 결과가 나오게 됐습니다.
교회가 덩치가 커지고 교인 수가 많아지면, 보다 통 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깨알같은 속좁은 신앙으로 특정인 말에 의지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나 돈 많은 장로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엉터리 지도자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성도들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복음 8:20)”고 하셨고, 제자에게는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8:2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어느 한곳만이 아니라 온 세상 곳곳에서 선포해야 한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다시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라면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지 않은 사람들 앞에 정직함을 우선시하고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며, 이웃을 배려하고 아픔과 고통을 함께할 수 있는 파아란 하늘같은 마음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정직하지 못하고, 꼼수와 내로남불,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이기심으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국회의원들 못지 않게 권력과 명예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지도자들 때문에 하나님 마음은 더욱 무겁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신 주님 명령에 순응하며, 오로지 의와 이웃을 위해 공명정대한 선택으로 주님 오실 그 때까지 끊임없이 나를 비워내며 날마다 아름다운 선택으로 변모하는 믿음의 군병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