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읽는 설교 212] 한 사람은 마귀니라
본문: 요한복음 6장 70-71절
제자의 배반에 대한 장면입니다.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베드로가 보였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오늘날 기독교인의 신앙고백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위대한 최고의 신앙고백이 있고 나서, 갑자기 상황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열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은 마귀라는 청천벽력입니다. 푸르게 갠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과 날벼락이 치는 소리입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한 사람은 마귀니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숨겨둔 의도를 알고 있다는 신호
감추어 두었던 의도를 익히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는 말은 주님께서 배반할 제자를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배반할 제자가 누구인지 모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제자에게 경고의 신호를 보내는 중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 계획을 상대방이 모른다고 생각될 때, 자유롭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의 생각을 꿰뚫어 아시는 주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주님이 경고의 신호를 보냅니다. 그 경고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끄떡하지 않습니다. 이미 마귀에게 완전히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수한 동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동기의 순수성이 결과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동기가 순수하면, 모든 진행은 그만큼 순조롭게 됩니다. 순수하지 않은 동기는 인간의 욕심으로 얼룩져서 일을 그르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자원하여 나선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게 되자, 배반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아마도 가룟 유다는 다른 의도를 갖고 주님을 따르려 했나 봅니다. 그 숨겨두었던 의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민망한, 실로 안타까움이 그지없는 일입니다.
2. 회개하라는 권고
돌이킬 기회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는 가룟 유다 면전에서 주님이 집중포화를 퍼붓는 행위입니다. 가룟 유다를 엄청난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회개의 권고로 받아들이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파멸 전 주어지는 것이 회개 기회입니다. 인간에게는 갑작스런 파멸이란 흔치 않다고 합니다. 대개 그 전에 이미 위험을 알리는 신호의 증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듯 모든 암에도 전조증상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모든 암을 통틀어 17가지 전조증상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속적 피로와 체중감소, 화장실의 변화와 신체적 고통 등이 가장 대표적이었습니다.
의사들은 암을 예방하기 위해서 전조증상을 무시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이 전조증상을 무시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영화 《십계》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인의 장자를 죽일 것이라는 경고를 처음부터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재앙이 계속되는 중에 마지막 순간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여러 번이나 경고를 했습니다. 이는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왕은 회개의 기회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파멸의 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을 묵살한 결과입니다. 가룟 유다가 이 회개할 기회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서운 결과를 생각하고 가룟 유다가 회개 기회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사악함에서 발길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주는 교훈입니다.
3. 사람은 배반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배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선택받은 열두 제자들 모두 처음에 모두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사람이 배반의 사람으로 변절되었습니다. 주님은 그 변절된 제자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왜 배반할 가룟 유다를 제자로 받아들였는가의 의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배반의 심리를 가르치기 위한 교훈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도 가룟 유다처럼 배반의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반의 심리는 방심하지 말아야 함의 교훈입니다. 인간은 배반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1/12 정도는 반대할 사람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실제로 인간은 배반의 피를 원초적으로 물려받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선조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배반한 그 원죄의 피가 여전히 우리에게도 대물림 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배반하기를 조심해야 할 이유입니다.
4. 정리
변절과 배반이 난무한 세상입니다. 그 배반으로 우리는 치욕스런 삶과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을 끝까지 믿어서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좋은 의도를 숨겨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회개할 기회를 무시하지 말게 하소서. 주님을 세상의 주인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