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국정운영에 훈수 두기
흔히 ‘선수 바둑은 1단, 훈수 바둑은 2단’이란 말이 있다. 인간은 자기 눈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기 눈썹을 잘 볼 수 없다. 그래서 자기 얼굴을 보려면 ‘거울’이 필요하다.
얼굴 모습이야 거울을 보면 되지만, 한 인간의 인격이나 행동이나 가치관 등 처신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의 진솔한 피드백(충언)이 필요하다.
그런데 진정한 충간을 듣기가 쉽지 않은 게 문제다. 대놓고 쓴소리하는 것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모두 수준급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옛말에 “忠言逆於耳而於行/ 良藥苦於口而利於病”(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행실에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라는 말이 있다. 기관장 취임 인사편지엔 반드시 ‘지도편달(指導鞭撻)’을 부탁하는 말이 있다. 그말을 그대로 믿고 함부로 편달(鞭撻/ 가죽 채찍으로 때리는 일)을 하다가는 큰 병폐가 일어난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도 구애받지 말고 수사하라”고 당부했지만, 윤석열 총장이 대통령과 측근의 비리를 수사하자 온갖 핍박을 다한 나머지 그를 후임 대통령으로 만드는 사건(?)이 터지고 만 것 아닌가?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으로 하는 말의 차이를 분별해 처신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말로는 동(東)쪽으로 가라고 하여 명분과 존경을 받으면서, 귓속말로는 서(西)쪽으로 가라고 속삭이는 이중인격자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정직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세상 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며, 옛 사람들의 충고 몇 개를 전하고 싶다.
① 지도자들은 말을 해야 되고 말을 해달라고 요구받는다. 이때 말하는 요령은 ‘간결하되 깊은 뜻’(辭簡意深)을 전해야 한다. 당나라 때 문장가 한유(韓愈)는 글쓰기의 비법에 대해 “풍부하나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간략하되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는다”(豊而不餘一言/ 約而不失一辭)고 했다.
② 텅 비어 고요하고 담백하게 무위함(虛靜無爲)을 깨달아야 한다. 천금의 재물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고, 삼공(三公)의 벼슬도 결국 종놈과 한 가지다. 이의현(李宜顯)이 말했다.
“구구하게 얻은 것으로 크게 잃은 것과 맞바꿀 수 있겠는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보답하며 살아라. 흉악한 짓을 멋대로 하고 독한 짓을 마구 하여 착한 사람들을 풀 베듯 하며 스스로 통쾌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몰래 죽임을 당할 것이니 하늘의 도는 가히 두려워할 만하다.”
③ 약간 가려두어야 신비롭다. 옛날 시인들도 그 끝만 살짝 보여주지 다 드러내 놓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낌새만 조금 보이고, 곁만 살짝 건드렸다.
시(詩)뿐 아니라 세상사도 그렇다. 미인의 아름다운 몸매도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감출 때 매력이 있지, 다 벗어 제치면 오히려 추하고 역겹다.
꽃도 ‘저만치’ 혼자서 핀 꽃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윤선도가 「어부사시사」에서 “강촌의 온갖 꽃이 먼빛에 더욱 좋다”고 노래한 이유다. ‘먼빛에’와 ‘저만치’의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바싹 다가가지 말고 남겨둔 여백이 있어야 한다.
송(宋)나라 때 소강절(邵康節)도 이렇게 노래했다. “좋은 술 마시고 살포시 취한 뒤에/ 예쁜 꽃 절반쯤 피었을 때 눈여겨 보노라”(美酒飮敎微醉後/ 好花看到半開時).
무엇이든지 다 털어 끝장을 보면 후련할 것 같지만, 오히려 허전한 법이다. 상대방을 몰아붙여도 최소한 그 사람이 서 있을 최소한의 공간은 보장해 주는 게 좋다.
성경에도 고의가 없이 과실치사한 자에겐 도피성(민 35장)을 마련해 보호해 주었다. 물건 꾸러미를 묶을 때도 마지막 여분이 남아있어야 안전한 것이다. 5km를 가자고 할 때 5+5km까지 가주는 미덕을 배우면 좋겠다. ‘여유’ 있게 살고, ‘여지’를 두고 말하자. 달도 차면 기울기 때문이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