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읽는 설교 214] 내 때는 아직
본문: 요한복음 7장 6절
초막절에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초막절에서 주님의 형제들과 의견 차이를 보였습니다. 아직은 그 의견 차이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이 보는 관점과, 주님의 관점은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고서도 어떻게 주님의 형제들인가 하는 정도의 의구심까지 들 정도입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내 때는 아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관점이 다르다
기회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6절에서 주님의 형제들은 초막절을 노렸습니다. 초막절 절기가 주님을 드러내는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는 주님과 주님의 형제들이 보는 관점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주님의 형제들과 친족들에게는 세상적 유익을 얻는 것이 기회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통해 세상적 유익을 얻으려 했습니다. 주님이 흔쾌하게 동의하지 않는 태도를 보면서,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에 고용된 사람에게도 그런 태도를 취합니다. 현재의 유익을 촉진할 것에 초점을 둡니다. 그런 사람은 신앙이 조금 다르다 해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반면 주님은 주님의 형제와 친척들과 관점이 다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기회는 영적인 기회입니다. 잔치에 올라가는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엄숙하게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입니다.
몇 달 안에 그 날이 올 것이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구별된 유월절 어린양의 잔치가 아닙니다. 추수 때의 즐거운 외침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아마도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 그 때를 기회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2. 생각이 다르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마음을 어디에다 두는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집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그 관점을 세상적인 것에 두었습니다. 이번 초막절이야말로 주님이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생각을 세상적인 성공에다 둔 것입니다.
주님의 형제들과 친척들의 생각은 주님과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 차이를 주님은 이렇게 완곡하게 표현합니다. “너희의 시간은 항상 준비되어 있느니라”입니다.
형제들은 명절 때처럼 지금 갈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명절에 갖는 민족의 생각과 감정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인파가 몰리는 명절에 참여하고 성전 봉사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주님의 형제들은 언제든지 자신과 그들의 일을 세상에 보여줄 자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세계의 이상(理想)이라는 종교적 사상을 완전히 공유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실인 야고보는 전통적 의식을 엄격히 하고 교단의 보수적인 열정을 존중했습니다. 그럴지라도 언제든지 세계의 주요 세력으로서 환호나 승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에게는 그렇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재의 사건은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돌변, 유대인들의 위협, 그리고 형제들의 불신앙 등이 모두 무엇인가를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끝이 상당히 가까웠고, 주님의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중 심리에 떠밀려 행동하거나 절기의 축제에만 마냥 취할 수만은 없는 신중한 형국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형제와 친척들과의 생각의 차이를 드러낸 이유입니다.
3. 등장의 목적이 다르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목적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의미심장한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정체를 나라에 온전히 나타낼 때, 주님 자신의 사명에 대한 내 생각을 드러낼 때입니다. 바로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요한복음 2장 11절에서 하신 말과 의미가 통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달라고 하인들에게 시키는 때의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했던 말입니다.
주님의 때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등장의 때입니다. 마지막 자기계시를 위한 절기입니다. 기회가 멈추고, 아버지의 뜻을 암시하기 위해 잠시 십자가에서 멈춤이 일어나는 그 숭고한 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그리스 헬라어로 시간은 두 가지 의미로 구분됩니다. 크로노스는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으로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어제와 오늘의 자연적인 시간입니다.
반면 카이로스는 의미 있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일상적인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갖는 시간입니다.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주님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카이로스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등장하는 목적이 다른 이유입니다.
4. 정리
우리는 흘러가는 자연적 시간인 크로노스와 매우 의미를 갖는 카이로스의 시간에서 삽니다. 가는 인생 길에 주님을 잘 믿어, 카이로스의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세상적 유익에다 관점을 두지 말게 하소서.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 생각을 두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자연적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의미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