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후 변화와 종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 지어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편 37:1-3, 11)”.
시편 37편을 요약해 봅니다. 노년의 다윗은 악인의 번영을 보고 회의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신앙과 경험에 입각해 위로와 권면을 베풀었습니다. 즉 악인의 형통은 아침에 잠깐 푸르다 저녁에 시들어 버리는 풀과 같지만, 의인은 잠깐 고난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일으키고 축복하실 것이니 낙심치 말라고 하십니다.
악인의 번영을 보고 흥분하거나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일시적이기에 차분히 기다리고 지켜보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이 말씀은, 오늘날 대한민국 현주소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할 국가 공직자들이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질 않나, 자신이 한 짓을 남에게 덮어씌우질 않나, 국민을 향해 사기를 치며 마치 자신들이 나라의 주인처럼 국민 혈세를 마구 퍼주질 않나, 저들이 과연 이 나라에 참 지도자들인가요? 국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판국에, 자신들만의 부귀영화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모습에, 재림의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듯합니다.
나라 밖은 어떻습니까. 파키스탄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침수되어 발루치스탄 주 자파라바드에서는 가옥들이 홍수로 불어난 물에 둘러싸였고, 보건당국은 전염병 발생이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파키스탄에는 지난 6월 중순부터 내린 몬순 폭우로 현재까지 1,136명이 사망하고 이재민 3,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파키스탄 154개 행정구역 중 75%인 116곳이 이번 폭우로 피해를 입었으며, 수해로 이재민들의 일상생활도 불편이 큰 상황입니다. 식수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콜레라, 세균성 이질 같은 전염병과 고인 물로 인한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모기 관련 질병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했던 태풍 5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1959년 9월 12일 ‘사라호’ 태풍으로, 당시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이어서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사망자가 938명, 피해액 6조 6,620억 원에 달했던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뒤를 잇는 태풍은 1987년 7월 9일 발생한 셀마, 2002년 8월 23일 발생한 루사, 2003년 9월 6일 발생한 매미, 2006년 7월 1일 발생한 에위니아 순이며, 그 중 제일 강력했던 태풍이 사라였습니다.
이제 9월 6일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태풍 ‘힌남노’도 위력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9월 5일 오전 9시 제주 서귀포 남남서 500km 해상에 접근 후, 7일 동해에서 온대저기압으로 소멸 된다는 예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통영 지역에 상륙할 예정으로 그 위력이 상당하며, 조금이라도 방향이 틀어질 경우 역대급 태풍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하지만 제주와 남해, 부산, 경남 등지에는 치명적인 피해가 닥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저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어, 안타까움만 키우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지구가 세상의 모든 버려진 이들과 더불어 부르짖으며, 다른 길을 찾아볼 것을 호소하는 듯 합니다. 생명의 원천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경제 집단들의 이익이 천연자원을 다루는 일에서 우선시돼선 안 됩니다. 사람들이 생태계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나쁜 소비습관은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절대 규칙이 되어 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자연환경처럼 취약한 모든 것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자원이 고갈된다면 고귀한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결국 새로운 전쟁의 상황이 조성될 것입니다. 또 자기만족과 경박한 무책임을 부추기는 거짓되거나 피상적인 생태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간도 생명과 행복을 누리며 고유한 존엄성을 지닌 이 세상의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환경 훼손, 현재 개발 방식, 버리는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도시들이 불균형적이고 무분별하게 확대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적 변화와 사회적 요인들 가운데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혁신, 사회적 소외, 에너지와 공공서비스의 불평등한 분배와 소비, 사회적 붕괴, 폭력 증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폭력 증가, 마약매매, 젊은이들의 마약 사용 증가, 정체성 상실 등이 있습니다.
나아가 매체와 디지털 세계가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사람들이 현명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며 넉넉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이상기후, 화산, 지진, 쓰나미, 전염병으로 현재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오존층 구멍이 크게 생기고, 기후환경 문제로 곳곳에서 화산과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남극과 북극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여의도 수십 배에 달하는 빙하가 갈라지고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한반도에도 이젠 겨울에 예전처럼 눈이 오지 않고, 예전에 있던 삼한사온도 사라졌으며, 봄·가을은 짧아진 대신 여름·겨울이 길어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구 곳곳이 과거보다 더 잦은 이상기후로 고통스러워합니다. 지진은 또 언제 우리 가까이에서 또 나타날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팬데믹 재앙을 불러온 코로나 같은 온역으로 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종말의 본격적 시작은 자연재해가 빈번해지고 심해지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지진과 가뭄 등은 최후의 날이 가까워지는 징조일 것입니다.
말세에는 땅이 흔들리고 기근이 일어나며, 난리와 난리가 꼬리를 물고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고 했습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이런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성경이 예언한 것은, 예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1:29-36)”.
이 말씀은 십자가 수난을 사흘 앞둔 때에 주어진 교훈입니다. 1차로 예루살렘 멸망을, 궁극적으로는 종말의 심판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모든 종말론적 강화처럼, 여기서도 주님은 종말의 시기와 현상보다는 그것에 대한 성도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말에 대해 믿는 이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인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떻게 심판과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세상의 향락과 생계의 걱정 때문에 믿음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과 같이, 성실한 마음의 자세로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임을 성도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의 간교한 꾐에 빠진 아담과 하와의 교만과 탐심의 대가가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환경 파괴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며, 곧 일어날 종말을 한층 더 앞당기는 지구촌 최후의 모습 아닐까요?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