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넷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지지 않겠다는 약속의 노랠 부릅니다”.
“눈물 나는데 / 슬퍼지는 이유를 몰랐던 건 / 나를 대신해 / 아파하는 너를 몰랐던 일 / 내 마음 내 어둠 무겁지만 / 내 얘기 내 노래 외롭지만 / 내가 미워한 세상 모든 것 / 어쩔 수 없다며 피하진 않아 / 나를 사랑한 너의 모든 것 / 이젠 내가 더 사랑할 수 있어…, (중략) 내가 방황한 세상 모든 것 / 어쩔 수 없단 말 하지 않아 / 나를 사랑한 너의 모든 것 / 이젠 내가 더 사랑할 수 있어”.
이는 가객 이선희와 윤도현이 콜라보한 ‘지지 않겠다는 약속’의 가사입니다. 생태계 파괴로 인하여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고래들을 위로하고 함께 싸우며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노래하는 것이죠.
제 마음도 푸른 바다의 고래처럼 눈물 나고 슬퍼지고 어둡고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아니, 무언가 눌림이 있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의 문제나 우리 교회의 문제보다는 총회와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찾아오는 고뇌와 눌림입니다.
총회 선관위원장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총회장을 할 때보다, 선관위원장을 할 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인으로서 보다, 공인으로서 총회 화합과 상생을 더 중요시하며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총회를 화합과 상생의 길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제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겠습니까? 무엇보다 한국교회 연합사역과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해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처럼 막막하고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 마음 속의 고래도 상처 받고 아파하고 슬픔의 바다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 현 지도부가 결단하고 동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연합의 길이 묘연해 보이고 험난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안 되더라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약속만큼은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결코 지지 않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주시는게 더 중요합니다. 이미 그 약속을 받았기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길이 막힐 때마다 확인하며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 약속이 여기까지 끝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시 연합의 깃발을 향하여 달려가야 할 시점에서 하나님의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총회 때도 틈틈이 묵상 기도를 하며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총회를 다 마치고 목요일 저녁에 홀로 산행을 하며 이 음악을 들었습니다. “… 부서지는데 / 무서워하는 법도 몰랐던 건 / 나를 위해서 / 기도하는 너를 몰랐던 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알려진 유홍준 교수님은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파괴되어 가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노래를 통하여 환경 생태계의 중요성과 푸른 바다의 고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저녁 산에 오르니, 고요한 풀벌레 소리가 저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마치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노래를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저는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노래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저만의 노래를 들려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어찌 하루아침에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남북통일도 다 때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해왔고 큰일을 이루었지만, 그러나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인내와 기다림,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저는 결코 지지 않겠다는 약속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를 것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