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타작마당의 도리깨질, 누구에게 필요한가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 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역대하 3:1)”.
인류에게 근심이 되었던 코로나19도 점점 쇠약해지고, 많은 피해를 입힌 태풍도 지나가, 성큼 다가온 가을 하늘은 파란 하늘바다를 이루며, 기다렸다는 듯 하얀 흰 구름은 조각배를 타고 하늘 바다를 수놓으며, 땅에는 모든 나무들과 꽃들이 함께 주님의 세계를 찬양하며, 인간의 마음 곁으로 다가오는 충만한 계절입니다.
‘타작마당’이라 함은 곡식의 낟알을 줄기에서 떨어내는 일을 하는 마당을 말합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주로 농사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온 고로, 논이나 밭 그리고 길거리에서 탈곡기나 혹은 도리깨로 타작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았습니다.
탈곡기에서는 논밭 주인과 서너 명이 탈곡기에 붙어 나락을 한 다발씩 탈곡기에 얹어 나락을 떨어냅니다. 도리깨질은 지금도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보면 볼 수 있습니다. 도리깨질은 나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깨 다발을 마당에 펼쳐놓고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타작’이 상징하는 바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입니다. 타작마당을 택하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게 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전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이 전은 인류와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보좌로, 그곳으로부터 심판과 구원이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성전 터인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사무엘하 24:15-25)은 어떤가요?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사무엘하 24:15-19)”.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사무엘하 24:20-23)”.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사무엘하 24:24-25)”.
이스라엘에게 내린 흑사병의 재앙은 심판 천사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을 때 멈추게 됩니다. 즉 재앙이 끝이 납니다.
옛 이스라엘에는 마을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타작마당이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그곳에서 곡식을 떨며, 알곡은 곡간에 쌓고 쭉정이는 태우거나 썩혀 토지에 거름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곡식 양이 적으면 막대기나 도리깨로 떨었지만, 양이 많으면 가축을 끌고 곡식 위를 지나가게 하여 타작을 했다고 합니다.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 역시 타작마당에서 룻을 만나게 됩니다(룻기 3:3).
오늘 주인공인 오르난은 아라우나라 불리는 여부스 사람으로, 그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 산에 타작마당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 전역에 3일간 온역을 내렸고, 그로 인해 7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구입해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써 그 무서운 재앙이 멈췄던 것입니다(사무엘하 24:18-25, 역대상 21:14-17).
주목할 점은 타작마당의 주인인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타작마당은 물론 제단에 바칠 소와 땔감나무 등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값없이 주려 했지만, 다윗은 절대로 권력을 위한 착취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은 50세겔이라는 거금으로 제단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구입해 하나님께 온전히 제사함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합니다.
오늘 필자가 외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농부가 도리깨질하는 모습입니다. 거두어들인 볏단과 마당에 펼쳐놓은 들깨를 사정없이 후려칩니다. “어이샤! 어이샤!” 소리치며, 피곤함도 없이 연신 소리 지르며 내리치는 농부의 이마에는 기쁨의 땀방울이 흘러내립니다.
그렇다고 곡식은 아프다고 반항하거나 덤비지 않습니다. 그저 신음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그래도 농부는 아랑곳 않고 사정없이 내리칩니다. 이마와 얼굴에는 땀방울로 넘쳐납니다.
단단했던 곡식들이 부서져야 밥이 되고 떡이나 과자 빵도 만들어냅니다. 단단하고 질긴 음식도 입안에서 고르고 잘게 부서져야 소화되어 영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도리깨질이 아프라고 때리는 것은 아닙니다. 미워서 때리는 것도 아닙니다. 쌓여있는 두꺼운 껍질들을 벗겨내기 위한 공정입니다.
타작마당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도리깨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나만 때리느냐고 불만과 불평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깨질을 쉬지 않고 계속 하십니다. 더 많이 부서지고 깨어지라고 열심히 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누가복음 17:10)”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상태는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처참한 지경입니다. 대통령께서 외국 순방 중에 있던 일들을 말잔치와 거짓말과 속임수를 써가며, 나라 위신을 처참하게 끌어내리는 모습은 도리깨질로 저들을 후려 내리쳐 겉으로 포장된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도리깨질을 사용하여 저들의 생각이나 가슴에 묻어둔 모든 것들을 새로운 변화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9월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한국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만난 자리에서 비속어를 사용하였다며 “외교 참사”라느니, “외교 문제가 우려된다”느니 하는 말들이 정치권과 방송을 통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명확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최초로 공개한 무모한 야당과 MBC, 언론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해졌습니다. 국민들은 또 다시 당황스럽고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들을 타작마당으로 인도하여 도리깨질로 내리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지난 29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직후 “20년 만에 돌려줬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던 김 의원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때 박 장관이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해임에 앞장섰다고 말하는 모습은 정말 유치함을 넘어 구역질이 납니다. 이런 정치 풍토는 국민들에게 원성만 살 뿐입니다.
처음 남해군수로 일할 때는 참신한 인재로 각광받았지만, 역시 정치란 오래 하면 할수록 빛이 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자기 당이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추잡한 모습을 드러내는 꼴볼견으로 전락해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컴퓨터를 컸더니 우연히 눈에 띄는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유무 등등인(有無 等等人)의 글입니다. “윤석열과 김건희를 보면 아합과 이세벨이 떠오른다. 먼저 펌글을 적기 전, 다음 글 또한 다른 분의 카페에서 본 글이다. 굥과 건의를 보면 볼수록 엘리야 시절 북이스라엘 아합과 이세벨이 생각난다. 결국 부부는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기원전 870년인가? 아합 왕의 아둔함, 이세벨의 교활함과 권력욕 참으로 비슷한 캐릭터다”
이 글을 읽고, 참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마 이런 글을 올린 분은 좌파나 주사파, 아니면 공산당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겨우 6개월도 되지 않은 대통령과 부인을 성경을 인용해서 비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한쪽 이념으로만 판단하는 몰상식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전 정부가 저지른 온갖 만행에 대해서는 어째서 그렇게 함구하는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말씀을 왜곡해서 인용하지 마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물론 생각은 다 다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공적 방송이나 유튜브, 그리고 인터넷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므로 절대 거짓된 말로서 국민들을 현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나라 안에서 입법을 논하는 국회의원, 그리고 교육자, 언론인, 민주노총, 경찰, 국민 혈세를 축내는 모든 기관들에 대해 도리깨질로 혁신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가을이 점점 짙어져 갑니다. 가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계절일 때입니다. 그래서 가을은 가장 오래된 계절일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처럼 사람들도 가을처럼 원숙한 인격을 가졌을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나 싶습니다.
한여름 사하라의 열풍과 잦은 폭풍의 시절을 보내고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해선 부서지고 내려놓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의 힘찬 도리깨질의 아픔을 겪는 자체가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겸손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나는 이해 많은 사람이며 겸손하게 살고 있노라 자처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치켜 올림을 받고 싶은 마음이 언제고 준비되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만만하게 보거나 하대한다면, 이해는 한순간에 자만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오늘 타작마당을 이해하면서 농부의 도리깨질로 후려 내리치는 아픔과 고통 후에는 아름다운 천국이 기다림을 깨닫고, 여태 남을 미워하고 증오했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회개하며, 다시는 이 땅에서 좌파, 주사파, 공산당이 춤추지 못하도록 모두 열심히 공부하며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