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훈민정음(訓民正音)과 훈몽자회(訓蒙字會)
훈민정음은 조선시대 1443년 음력 12월(세종 25년)에 창제되었고, ‘한글’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1913년)에 생긴 것이다. 훈민정음은 579살이요 한글은 109살이 된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의 이름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글은 ‘언문(諺文)’, ‘반절(反切)’, ‘암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오다가 오늘날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周時經) 선생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1913년 쓰이기 시작한 이 말이 널리 통용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펴낸 「한글」 잡지에서부터다. ‘한글’의 ‘한’은 ‘하나’와 ‘크다’는 뜻이다. 앞의 ‘언문’, ‘반절’, ‘암클(여성용 글자)’ 등은 우리 한글을 낮추어 부른(사대주의적) 호칭들이다.
한글 창제 원리는 철학적이고도 과학적이다. 모음(홀소리)은 천(天), 지(地), 인(人) 3요소를 표하여 ‘ㅣ’와 ‘ㅡ’와 ‘·’을 조합해 ‘아, 야, 어, 여…’가 만들어졌고, 자음(닿소리)은 입안의 발성기관(혀/이빨/목구멍)을 본떠 ‘ㄱ, ㄴ, ㄷ, ㄹ…’이 만들어졌다.
모음과 자음을 첫소리(初聲), 가운뎃소리(中聲), 끝소리(終聲)로 조합하기 때문에 철자(綴字)가 곧 발음 기호가 되어 1-2시간이면 어느 외국인도 우리 한글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게 돼 있고, 컴퓨터에 활용할 땐 세계에서 제일 편리한 글자로 인정받고 있다. 영어는 철자와 발음 기호가 따로 돼 있고 일본어와 중국어와는 완전 비교 우위임이 전 세계에서 증명된 바 있다.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조선 중종 22년(1527년)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한자 학습서이다. 3,360자의 한자를 33항목으로 분류해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았다. 1527년쯤의 우리말을 엿볼 수 있는 어휘들이 들어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 보겠다.
가람(江, 河, 湖), 가물다(旱), 개(浦 港), 고개(峴), 골(谷), 그늘(陰), 그믐(晦), 기운(候), 나루(津), 나죄(夕/저녁), 날(日), 날이 새다(曙), 납향(臘), 낮(晝), 내(川), 노을(霞), 누각(漏/구멍, 새다, 틈), 뉘누리(湍/여울, 급류·渦/소용돌이), 눈(雪), 달(月), 땅(地, 壤), 때(時), 덥다(署), 돌(礁, 물에 잠긴 바위 石), 돌(梁/들보, 징검다리, 울돌목), 두던(丘, 原, 皐), 두듥(坂, 阪, 陵, 陸), 마디(節), 매(野, 들), 모래(沙), 못(淵, 沼, 塘), 뫼(山), 묏골(山谷), 묏기슭(麓), 묏봉우리(峰), 묏부리(嶽), 묏언덕(崖), 밀물(潮), 바다(海), 바람(風), 바위(巖), 밤(夜), 번개(電), 벼락(霹), 별(星辰), 볕(陽), 보름(望), 봄‧여름‧가을‧겨울(春夏秋冬), 비(雨), 새배(晨) 새벽(曉), 샘(泉), 서리(霜), 섬(島), 아침(旦, 朝), 안개(霧), 어스름하다(昏), 열흘(旬), 오란비(霖/장마, 오래 내리는 비), 우뢰(雷), 우물(井), 이르다(早), 이슬(露), 재(嶺), 저물다(暮), 집(宇宙), 차다(寒), 초하루(朔), 하늘(天, 乾), 해(歲年), 흙(土, 泥) 등이 있다.
현재 우리 한글은 많이 변화·변질되고 있다. 많은 외래어가 뒤섞여 쓰이고 있고, 축약어로 쓰이기도 한다. 원래 말은 태어나고 활용되다 사라지기도 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늘 새로운 시대와 상황에 맞는 새로운 낱말(단어)들이 생성-활용-쇠퇴의 길을 걷는 것이다.
한글을 갖게 된 것은 문화 국민으로서의 최고 자랑거리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학교생활에서 한글(조선어)을 쓰면 감점 제도를 적용해 처벌도 하고 손해를 끼쳤다.
오늘은 자유롭게 우리말을 쓰고 읽고 작품을 지을 수도 있게 되었다. 말은 얼(정신)이다. 말을 정확히 사용하지 않으면 얼빠진 사람(얼간이)이 된다. 말과 글을 정확히 쓰고 오염시키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자.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