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읽는 설교 223] 비장한 자기변호
본문: 요한복음 7장 28-29절
주님이 성전에서 가르치는 장면입니다. 성전에서 가르치는 주님 모습이 예전과는 조금 다릅니다. “가르치면서 외쳐 이르시되”가 나옵니다. 목소리를 높여 무엇인가를 강조하시는 모습입니다. 다른 때와 다르게 “외쳐 말씀하셨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지금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중요하다는 강조입니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하다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비장한 자기변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사명을 갖고 왔다
사명을 갖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28절)”. 이전의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는 말씀과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쳤다”고 나옵니다. 외쳤다는 말은 그냥 말하는 강도가 높아짐을 의미합니다.
“외쳤다”는 말은 부르짖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주님이 역정을 내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때와는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갖고 오신 주님의 메시야성이 부정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출생지와 가족에 대한 지식, 주님의 갈릴리 사역 등을 들먹였습니다. 모두 주님의 인간성에 대한 증거로 완강하게 돌아선 것입니다. 이는 그 당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야 합니다. 초막절을 맞아 뭔가 음산한 분위기와 종교지도자들의 돌변한 태도를 보아서입니다.
그런 분위기에 종교지도자들의 무언의 압력이 가세했습니다. 메시야에 대해 알려고 하면, 안 된다고 겁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적 출신을 문제로 삼아 주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의 효력을 무효화시켰습니다. 요한이 사제들과 관원들 앞에서 주님이 공개적으로 가르치셨다는 깊은 인상과는 대조됩니다.
2. 사명을 주신 하나님은 참되신 분
하나님이 사명을 주어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사명을 주신 분을 소개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이 “참되시다”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되시다”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원래의 “참되시다”는 느낌을 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나를 보내신 분이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어 대단한 분이시다”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차피 어렵기에 이렇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 거짓이 없는 참되신 분이 바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어떤 말이라도 믿지 않으려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상태입니다. 주님과 유대인들의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사람이 듣지 않으려고 하면, 어떤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들으려 해야 들리기 때문입니다.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의문이 일어납니다. 주님이 엄청난 능력으로 유대인들을 일시적으로, 순간에 갑자기 모두 눈이 번쩍 뜨이게 할 수는 없었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렇게 하시려고 하면, 사람의 나약한 몸으로 오지 않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3. 하나님과 하나임을 주장하는 뜻
주님은 하나님과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입니다.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29절)”. 주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밝힙니다.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이 말씀에 중요한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말하면서, 하나님과의 내면의 본성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아무리 강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신성한 기원과 메시야성이 유대인들에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그 외침은 오히려 신성모독(神聖冒瀆)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있습니다. 도저히 자존심이 상해 주님을 메시야로 믿을 수 없다는 의도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러기에 나중에 주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백성을 구원하라는 사명으로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척 해도 알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던 그리스도의 본래 혈통입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본성과 완전함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약속입니다. 주님의 생각과 뜻, 그리고 거룩한 약속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4. 정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잘못 결정하면, 운명이 바꾸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됩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주님을 믿는 결정을 제대로 해서 주님의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셨음을 믿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은 창조주이심을 믿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과 하나님이 하나됨을 믿게 하소서. 주님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