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더위가 숨고 바람이 멈춘 언덕”

|  

10월 셋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서양등골나물꽃’ 앞에 선 소강석 목사.

▲‘서양등골나물꽃’ 앞에 선 소강석 목사.

“더위가 숨고 바람이 멈춘 언덕”.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에는 가을을 무색케 할 정도로 한여름 같이 덥더니, 어느새 더위가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아니, 벌써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매미는 할 일을 다 한 지가 오래고 그 사명을 풀벌레에게 기쁨으로 넘겨주었습니다. 더위는 어디로 도망가 버렸을까요.

언젠가 제 서재에서 본당으로 가다 보면 뒷담벼락 위에 개망초꽃이 하얗게 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망초꽃이 지고 나니까 더 하얗게 일대를 덮어버린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경사가 험한 언덕에 하얀 꽃으로 덮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풀벌레들이 얼마나 요란하게 합창을 하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보니 바람이 불어도 꽃들이 흔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을바람도 저 꽃잎들 앞에는 쉬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도대체 저 꽃은 무슨 꽃일까?” 마침내 저는 운동화를 신고 그 곳으로 직접 가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날씨였습니다. 제가 어지간하면 짧은 팔 차림으로 나갈 텐데, 요즘 같은 때 감기에 걸리면 사람이 추하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행여라도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하고 조심스럽게 긴 옷을 입고 갔습니다.

가서 보니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온 언덕 위에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막상 그곳에 가니까 전혀 춥지가 않았습니다. 차가운 가을비가 온 후였는데도 수풀 아래는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순간 시인의 상상력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 며칠 전까지 한낮을 달구었던 그 더위가 이곳으로 와서 숨어버린 것은 아닌가. 더위가 그냥 도망갈 수는 없어서 잠시 이곳에 숨어있나 봐. 그렇다면 왜 더위는 이곳에 숨었을까. 아마 이 꽃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피어 있게 하려고 이곳에 숨었겠지.” 별의별 시적 상상이 스쳐갔습니다.

비 갠 뒤 상큼한 하늘은 청옥같이 맑아 보였고 거기서 비쳐오는 햇빛은 꽃들을 더 하얗고 눈부시도록 해주었습니다. 순간 이런 상념에 젖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험한 언덕이라도 하얀 꽃들이 피어 있으면 이토록 아름답고 눈부시게 보이는 것을…. 증오를 심고 미움을 심으면 우리 마음에서부터 독버섯이 솟아나거늘, 우리도 소설가 이청준의 ‘꽃씨 할머니’처럼 온 세상에 꽃씨를 뿌리며 살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무슨 꽃인가 궁금했습니다.

옆에 있는 수행비서에게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서양등골나물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본 꽃명이었습니다. 꽃 이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꽃이 어떻게 여기에 심겨져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서양등골나물꽃’ 앞에 선 소강석 목사.

▲‘서양등골나물꽃’ 앞에 선 소강석 목사.

한두 송이가 핀 것도 아니고 언덕 전체를 차지하여 하얀 꽃 세상을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죠. 민들레 홀씨처럼 한꺼번에 이곳으로 날려 와서 그들의 영토를 확장해 했는지, 아니면 이청준의 ‘꽃씨 할머니’처럼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꽃씨를 뿌렸는지,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또다른 방법으로 꽃씨를 뿌려 놓았으리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꽃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이런 아름다운 꽃밭 언덕 같은 세상을 일구라는 걸 깨닫게 하시려고 그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매일매일 창문 너머로 그 꽃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언제까지 더위가 그곳에 숨어 있고 바람마저 쉬어가는가를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 부디 저 꽃들이 오래오래 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설사 찬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려 꽃들이 진다 해도 제 마음의 뜨락에 하얀 꽃들이 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 하얀 꽃들을 바라보며 ‘너는 진다 해도 너를 대신해서 나는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 가슴의 언덕에 바람도 쉬어가고 더위도 숨어 있어야 하겠지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123 신앙과 삶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성료 감사 및 보고회

“‘현장에만 110만’ 10.27 연합예배, 성혁명 맞서는 파도 시작”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성료 감사 및 보고회’가 21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렸다. 지난 10월 27일(주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열린 예배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광화문-서울시의회-대한문-숭례문-서울역뿐만 아니라 여의대로…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

‘윤석열 대통령 참석’ 제56회 국가조찬기도회… “공의, 회복, 부흥을”

“오늘날 대한민국과 교회, 세계 이끌 소명 앞에 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며 온전하신 뜻 분별해야” 윤상현 의원 “하나님 공의, 사회에 강물처럼 흐르길” 송기헌 의원 “공직자들, 겸손·헌신적 자세로 섬기길” 제56회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가 ‘…

이재강

“이재강 의원 모자보건법 개정안, 엉터리 통계로 LGBT 출산 지원”

저출산 핑계, 사생아 출산 장려? 아이들에겐 건강한 가정 필요해 저출산 원인은 양육 부담, 비혼 출산 지원은 앞뒤 안 맞는 주장 진평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의원 등이 제출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21일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

다니엘기도회

다니엘기도회 피날레: 하나님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 10인

①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 이미재 집사 (오륜교회) ②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 박광천 목사 (올바른교회) ③어린이다니엘기도회를 기대하라! - 강보윤 사모 (함께하는교회) ④천국열쇠 - 강지은 어린이 (산길교회) ⑤용서가 회복의 시작입니다 - 최현주 집…

예배찬양

“예배찬양 인도자와 담임목사의 바람직한 관계는?”

“담임목사로서 어떤 예배찬양 사역자를 찾고 싶으신가요?” “평신도의 예배찬양 인도에 한계를 느낀 적은 없으신가요?” “예배찬양 사역을 음악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가르치고 계신가요?” 예배찬양 사역자들이 묻고, 담임목사들이 답했다…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

“학생 담뱃갑서 콘돔 나와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훈계 못 해”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세미나가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를 주제로 21일(목) 오후 2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이상원 상임대표는 환영사에서 “학생인권조례는 그 내용이 반생명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실상 법률…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