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셋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더위가 숨고 바람이 멈춘 언덕”.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에는 가을을 무색케 할 정도로 한여름 같이 덥더니, 어느새 더위가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아니, 벌써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매미는 할 일을 다 한 지가 오래고 그 사명을 풀벌레에게 기쁨으로 넘겨주었습니다. 더위는 어디로 도망가 버렸을까요.
언젠가 제 서재에서 본당으로 가다 보면 뒷담벼락 위에 개망초꽃이 하얗게 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망초꽃이 지고 나니까 더 하얗게 일대를 덮어버린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경사가 험한 언덕에 하얀 꽃으로 덮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풀벌레들이 얼마나 요란하게 합창을 하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보니 바람이 불어도 꽃들이 흔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을바람도 저 꽃잎들 앞에는 쉬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도대체 저 꽃은 무슨 꽃일까?” 마침내 저는 운동화를 신고 그 곳으로 직접 가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날씨였습니다. 제가 어지간하면 짧은 팔 차림으로 나갈 텐데, 요즘 같은 때 감기에 걸리면 사람이 추하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행여라도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하고 조심스럽게 긴 옷을 입고 갔습니다.
가서 보니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온 언덕 위에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막상 그곳에 가니까 전혀 춥지가 않았습니다. 차가운 가을비가 온 후였는데도 수풀 아래는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순간 시인의 상상력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 며칠 전까지 한낮을 달구었던 그 더위가 이곳으로 와서 숨어버린 것은 아닌가. 더위가 그냥 도망갈 수는 없어서 잠시 이곳에 숨어있나 봐. 그렇다면 왜 더위는 이곳에 숨었을까. 아마 이 꽃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피어 있게 하려고 이곳에 숨었겠지.” 별의별 시적 상상이 스쳐갔습니다.
비 갠 뒤 상큼한 하늘은 청옥같이 맑아 보였고 거기서 비쳐오는 햇빛은 꽃들을 더 하얗고 눈부시도록 해주었습니다. 순간 이런 상념에 젖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험한 언덕이라도 하얀 꽃들이 피어 있으면 이토록 아름답고 눈부시게 보이는 것을…. 증오를 심고 미움을 심으면 우리 마음에서부터 독버섯이 솟아나거늘, 우리도 소설가 이청준의 ‘꽃씨 할머니’처럼 온 세상에 꽃씨를 뿌리며 살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무슨 꽃인가 궁금했습니다.
옆에 있는 수행비서에게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서양등골나물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본 꽃명이었습니다. 꽃 이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꽃이 어떻게 여기에 심겨져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한두 송이가 핀 것도 아니고 언덕 전체를 차지하여 하얀 꽃 세상을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죠. 민들레 홀씨처럼 한꺼번에 이곳으로 날려 와서 그들의 영토를 확장해 했는지, 아니면 이청준의 ‘꽃씨 할머니’처럼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꽃씨를 뿌렸는지,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또다른 방법으로 꽃씨를 뿌려 놓았으리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꽃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이런 아름다운 꽃밭 언덕 같은 세상을 일구라는 걸 깨닫게 하시려고 그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매일매일 창문 너머로 그 꽃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언제까지 더위가 그곳에 숨어 있고 바람마저 쉬어가는가를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 부디 저 꽃들이 오래오래 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설사 찬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려 꽃들이 진다 해도 제 마음의 뜨락에 하얀 꽃들이 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 하얀 꽃들을 바라보며 ‘너는 진다 해도 너를 대신해서 나는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 가슴의 언덕에 바람도 쉬어가고 더위도 숨어 있어야 하겠지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