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예배의 전략적 원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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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칼럼] 칼빈의 예배 신학과 목회적 적용 (7)

▲김재성 박사(한국개혁신학회 전 회장,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부총장). 

▲김재성 박사(한국개혁신학회 전 회장,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부총장). 

6. 공식적인 예배의 전략적 원리들

예배의 개혁에 있어서, 칼빈이 가장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은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에게 합당하게 공적인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우리의 경건이 실천에서 진보를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길은 공적인 예배에 출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례에 참여하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의로움을 얻는 가장 중요한 기초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뒤집혀 버린다면, 마치 건물들이 서로 떨어져서 붕괴하듯이, 모든 의로움의 회중들이 파괴되고, 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1541년, 제네바에 복귀하자마자, 칼빈은 시의회에 교회가 출교권을 독립적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교회 법령집”을 제출했고 긴장과 대립된 논의가 지속되었다. 그 해 11월 11일, 시의회는 수요일을 기도의 날로 정하였다. 오늘날 수요기도회의 첫 시작이었다.

왜 예배가 중요한가? 칼빈은 십계명 해설에서, “예배가 의로움의 기초이고, 시작이다”고 강조했다. 이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눅 1027, 마 22:37,39)는 총강령의 근본 취지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에 근거하여, 칼빈은 예배를 올리는 사람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설파하였다. 타락 후에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탈취하고, 헛된 우상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라헬이 아버지의 우상을 훔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창 31:19).

칼빈의 설교와 주석에는 참된 예배와 거짓된 우상숭배를 구별하는 교훈들이 많다. 구속의 역사를 읽어보고, 날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종합하면, 인간은 결코 정욕적 불법이 그칠 줄 모른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죄의 영향으로 모든 유혹에 넘어가게 되어지고 말았다. 사람은 “우상의 공장”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인간에 대한 낙관적 견해가 성경에 입각한 칼빈의 인간 이해와 충돌하게 되는 부분이다.

예배의 방식과 내용을 정립함에 있어서 칼빈이 루터와 다른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게 된다. 루터는 유대인의 율법준수와 같은 엄격한 의무조항과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대조시킨다. 루터는 구약 성경에의 율법 조항과 복음 아래서 보다 자유로운 입장과를 대조시켰다. 루터는 (1) 형상이나 형태를 숭배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그 계명의 금지조항에 어떤 형상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고, (2) 복음으로 대체된 후에는 형상들이 교육적으로 유익한 도구들이 될 수 있으며, (3) 이미 그들의 마음 속에 우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상처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복음의 기본들을 훼손시키지 않는 한에는, 형상들을 파괴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루터는 교회 당 안에서 각종 형상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1520년대 중반에 칼 쉬타트와 논쟁을 벌였다. 형상에 대한 루터의 기본 입장은 로마 가톨릭과 별반 차이가 없으며, 단지 적용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왜냐면 루터는 믿음으로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참된 교리를 근거로 삼기만 한다면, 나머지 적용의 문제는 포용적이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원리에 거슬리는 것들은 제거하지만, 그 외에 것들은 허용했다.

기본적으로 루터를 깊이 존경했던 칼빈이지만, 예배의 구성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달랐다. 칼빈이 쓴 『세례 시행에 관한 규칙』 (1542)의 마지막 결론에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비판했다:

“우리는 다른 곳에 시행하는 여러 가지 예식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
그것들이 오래된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고안해냈거나,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권위도 없이 개발해낸 것들이기에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로부터 미신적인 것들이 많이 창출되어 나왔는데,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적으로 나아가는 것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게 하려면, 그것들을 폐지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고
판단한다.
첫째로, 명령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들은 그 무엇이든지간에, 우리가 그것들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
둘째로, 건덕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않된다. 만일 그 어떤 종류라도 받아들여진 것이 있다면, 바로 제거해야 하고, 그저 추문만을 일으키는것들은 무엇이든지간에, 더 강력한 이유로 없애야 한다. 그것들은 우상숭배와
거짓된 의견의 수단이기 때문에, 조금도 관용을 베풀 이유가 없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로 명령을 받은 것만을 예배 시간에 시행해야 한다고 엄격하게 천명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에서 시행해 오던 성상 숭배는 반대했지만, 성경에서 금지하지 않으면 다양한 찬송들과 예식들을 예배의 내용으로 허용하는 입장이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예배의 내용으로 신명기 4장 15절-24절에 담긴 “규례와 법도”를 매우 중요시했다. 예배자들은 아무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거나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삼가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형상도 인간이 목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이런 말씀을 하신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신 4:24, 5:8-10). 그래서 칼빈은 공적인 예배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나 형상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철저히 반대했다.

종교개혁의 핵심으로 삼았던 예배의 개혁은 유럽 전 지역에서 로마 가톨릭과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논쟁의 핵심에 놓여있었다. 칼빈은 당시 유럽 개신교 진영의 선두에 서서, 성경적인 예배의 정립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양쪽 진영이 격론을 벌이고 있던 중, 오래 동안 기다려온 “스파이어 회의”(the Diet of Speyer)가 교황 바울 3세의 주관 하에 트렌트에서 열리게 되었다. 1543년 10월 23일, 마틴 부써는 칼빈에게 이 회의에 제출할 청원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로마 가톨릭을 지지하는 찰스 5세의 권세는 절정에 있을 때라서, 종교개혁을 후원하는 독일 군주들의 동맹인 ‘스말칼틱 진영’에서는 의구심이 높았다. 찰스 5세에게 제출하는 “겸비한 청원서” (Supplex Exhortatio ad invictissimum caesarem carolum quintum)를 칼빈이 작성하였다.

이 “겸비한 청원서”의 핵심이 되는 내용은 “종교 개혁의 정당성”을 자세하고도 탁월하게 피력하는 것인데, 당시 유럽 개신교 진영의 대부분의 교회와 지도자들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았다. 칼빈은 청원서를 작성하는 일에 너무나 부담감을 크게 느껴서, 파렐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발 빨리 제네바로 와서, 이번에 자신이 맡은 문서 작성에 자문을 해 달라고 간청했다.

칼빈은 당대 유럽에서 최고의 권력자, 신성로마 제국 황제 찰스 5세에게 독일 여러 군주들과 같이 교회의 회복을 수행해 나갈 것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찰스 5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교회의 회복을 염원하는 수많은 경건한 성도들과 함께 군주들과 국가들이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칼빈은 지금 모든 사람들이 심각하게 병든 교회를 다 알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다.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이 이미 시작한 것들을 확실하게 고쳐나가자는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즉각적인 도움을 달라고 간청했다.

청원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칼빈은 교회의 문제점들을 직접적으로 고발하였다. 참된 교회는 전적으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 안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신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행동과는 별도로 기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교회를 보전하고 지켜나가는 분이시다. 이 청원서의 마지막 구절은 매우 간절한다: “만일 귀하께서 더 이상 머뭇거리신다면, 우리는 독일에서 더 이상 이런 가시적인 교회를 볼 수 없다는 점을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기독교 종교를 유지하고, 또 그 진리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가장 원리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그것들 아래에서 기독교의 전체 진리들을 깨달을 수 있게 하려면, 두 가지 사항들이 확실하여야 합니다.
첫째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충분히 경배를 받으셔야만 하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원천에 관한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충분히 경배를 받으시게 되는 조항들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원리적인 기초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모든 덕, 의로움, 거룩함, 지혜, 진리의 유일한 원천이시다. 따라서 그 모든 선한 것들에 대해서 원천이 되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영화롭게 해야만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그분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재들을 이해하는 상황에서 기도가 그분을 향하여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이름의 참된 거룩함이다.”

참된 예배가 기독교의 본질이다. 진정한 경건은 겸손하고 순수한 예배를 통해서 발휘된다. 성령은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을 부인하게 만들어서, 오직 하나님을 참된 마음으로 찬양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칼빈은 예배의 방식에 대해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원서의 후반에 보면, 칼빈은 공적인 예배의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 세밀히 접근하였다. 칼빈은 참되고 진정한 예배라야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성령이 성경 안에서 가르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4장 23절이다; “진리 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참된 예배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참된 예배의 방식과 일반적인 규칙들을 구별하고자 하였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참된 예배는 확실한 형식을 취하여야만 한다. 성경에는 분명하고도, 단순하게 참된 예배를 가르친다. 칼빈은 성경 두 곳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삼상 15장 22절)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마태복음 15장 9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결국,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나아야 하는 지를 사람들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예배만큼은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따라서 복종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참된 예배는 그래서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라는 것이다.

1544년 4월 21일, 칼빈은 이 청원서를 멜랑톤에게 먼저 검토해 달라고 보냈다. 비록 이런 청원서를 제출하여 황제에게 호소를 하더라도 별로 큰 효과가 없을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칼빈은 이 글을 읽은 멜랑톤으로부터 비텐베르크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배우고자 했던 것이다.

1544년 6월 10일, 강화회의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찰스 5세는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보편적이고, 자유로우며, 기독교인들의 종교회의를 소집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에 대해서 교황 바울 3세가 8월 24일에 “아버지와 같은 충고”를 보냈는데, 자신에게 상의도 없이 먼저 임의적으로 개신교 진영에게 회합을 허용한 것과 임시적으로 합의를 이룬 것 등을 비난했다. 교황은 황제를 가르치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 혜택을 주려는 것이라고 적었다.

황제의 약속과 조치에 따라서 양 진영이 다시 상의하는 모임을 개최해야 했지만, 교황이 주도권을 가지고 “트렌트 종교회의”가 1547년 3월 3일에 회집된 후, 1551년까지 일곱 차례의 모였다. 루터가 95개 조문을 발표한 지 거의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무렵에, 교황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회의가 열린다 하니, 개신교 진영에서는 공평한 조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가를 거부했다. 곧바로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개신교회의 칭의론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트렌트 선언문”을 발표했다.

파렐과 비레와 다른 목회자들의 요청에 따라서, 칼빈은 트렌트 선언문을 비판하는 반박문 (Acta Synodi Tridentinae cum antidoto)을 1547년 12월에 발표했다.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갖고 검토하는 교회의 예배 개혁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칼빈의 반박문에는 종교개혁의 신학적 원리들이 담겨 있다.

1547년부터 다음 해까지, 챨스 5세와 루터파 군주들 사이에 “스말칼트 종교 전쟁”이 벌여져서, 처절한 댓가를 치렀다. 챨스 5세가 대체로 승리를 했지만, 결코 독일 등 유럽 전 지역에서 완강한 저항을 했기에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었다.

1548년 5월, 황제 찰스 5세는 트렌트 종교회의가 개신교 진영에 의해서 철저히 거부되고 있는 상황이 되자, 매우 못마땅했다. 그는 1548년 5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다시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다. 종교개혁의 원리들과 예배에 관한 긴장이 절정에 도달하였다. 로마 가톨릭 율리우스 프룩(Julius Pflug)과 마이클 헬딩 (Michael Helding)이 루터파 요한네스 아그리꼴라 (Johnnes Agricola)와 함께 작성한 임시합의서가 나오게 되었는데, 양 쪽 진영의 회합에 가서 추인을 받아오도록 제출되었다.

칼빈은 1549년 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회의”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서 비판하는 문서를 작성했다. 황제는 이 문서에 대한 비난을 금지시키면서 이를 어길 경유에는 사형의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공표했다. 하인리히 불링거와 마틴 부써가 칼빈으로 하여금 이를 비판하는 글을 쓰도록 강권했다. 칼빈의 비판서에서 핵심을 이루는 교리는 칭의와 성화라는 이중적 은혜의 혜택이다. 로마 가톨릭측에선 이를 사람의 공로와 선행으로 왜곡하였다는 점을 비판했다.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회의에서는 예배의 내용에 있어서 “아디아포라”(adiaphora)를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하고자 했다. 칼빈과 동료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주어진 말씀에 따라야 하므로 오직 시편 찬송만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배의 내용들과 절차들은 할 수 있는 한 성경 본문에 근거하여서만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칼빈은 거의 십 오 년 여의 투쟁에서 성경과 예배에 대한 일관된 입장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화의” 문서에 대한 비판서를 발표한 후에, 칼빈은 자신의 상세한 견해를 담아서, 『교회 개혁과 기독교 세계에 참된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이라는 책자를 출간했다. 이 글에서 칼빈은 중세 시대를 통해서 들어오게 된 로마 가톨릭 교회의 타락에 대해서 조목조목 비판하였다. 칼빈은 갈등을 겪고 있는 기독교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참된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순수한 개혁”이라고 규정했다. 성경대로 개정을 한다면, 평화가 찾아온다. 게다가 로마 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개혁과 참된 평화에 대해서 도무지 “진정한 관심이 없다”는 점이라고 칼빈은 정곡을 찔렀다. 종교 화해를 도모하는 기간에 그 어떤 양보를 한다하더라도, 그것들은 단지 전략들과 지연 전술에 불과한 것들이다. 칼빈은 다시 한번 개신교 교리들을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에 기초한 칭의라는 점을 예배의 개혁에 임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칼빈은 교회의 개혁과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은 “참된 신앙의 회복”(vera religio) 이라고 확신했다. 가장 기본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얼마나 순수하게 진행되느냐에 달려있는데, 이는 구원이 시행되는 수단들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타락은 단순히 그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진행되어만 한다.

1550년에, 칼빈은 『교회 개혁의 방법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를 발간했다. 칼빈은 두 가지 예배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시했다. “합법적인 예배” (legitmum cultum)를 드리든지, 아니면 “자의적 예배”(will worship)를 드리면서 죄를 범하든지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세를 따르든지, 바울을 따라가든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금지하는 예배는 모세에게도 분명했고, 바울 사도 역시 자기 의욕에 따라서 (ad eius voluntatem) 제멋대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다 (롬 12:1). 그리스도 한 분이 드린 희생제사로 죄인의 속죄가 충분하기에 더 이상의 “중보 사역”은 없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신부들의 미사를 통해서 아직도 속죄제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어리석은 예배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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