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오랜만에 꾸린 배낭
엊그제는 기생 눈썹 같은 그믐달이 행주대교에 매달려 유유히 흐르는 세월의 강을 도강(盜江)하더니, 어느새 잘 성근 사내의 육감처럼 둥근 달이 되어 단풍을 넘는다.
아무리 유속 같은 세월 속절없다지만, 우리의 일상은 얼마든지 진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소중한 만사연의 일생이다. 자칫 그날이 그날 같은 환경 안에서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나, 그런 중에 변하고 변하는 것이 세상만사 정한 이치이고 보면 오늘이라는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풍요롭게 채워야 할 존귀한 생명의 시간이다.
그래서 인생은 오늘이 소중하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기에, 모두들 다가올 병사(病死)의 시간조차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설령 회한의 그날이 성큼성큼 다가올지라도, 지금 이 순간 생명으로 오늘을 걷는 것은 가장 소중한 희열이다.
인생은 누구나 한 치 앞을 측량할 수 없는 피조물의 연약함을 지녔다. 그러나 창조주의 불꽃같은 지킴으로 안식할 수 있는 은혜 또한 피조물의 것이어서, 모든 피조물은 얼씨구 좋구나, 좋다 하며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나그네 길을 걷는다. 그래서 인생은 어떤 환경에 존립하든지 창조주의 품안에서 푸르른 날이다.
이름 모를 들꽃의 향연은 벌써 아득한 옛 기억으로 서러운 별리의 고개를 넘었고, 이글이글거리는 햇살을 어깨에 메고 예고 없이 소나기를 쏟아내던 그 여름도 파도에 휩쓸렸다.
만추(晩秋)다. 옷깃을 여미고 다정으로 걸어야 할 시골집 돌담길에 쌓이는 낙엽의 시간에 섰다. 천년 애환을 듣다가 실어증에 걸린 당산나무 그늘 근처 호젓한 찻집 창에 턱 궤이면, 곱고 높은 하늘 구름 정겹다. 산들바람 지난 자리마다 꽃단장한 신부의 얼굴처럼 낙화를 앞둔 잎새의 조화는 창조주의 경이로움으로 탄성이 절로 난다.
실로 오랜만에 배낭을 꾸린다. 지리산을 향하는 여정은 벌써부터 설레임이다. 스무 살 정열을 삭이며 오른 산, 대학 동아리들과 무리지어 오른 산, 일곱 살 아들의 고사리 손을 잡고 으른 산.
계절마다, 상실의 때마다 무심히 찾게 되는 산, 무심의 세월 지난 혼돈의 가슴으로 성큼 다가온 산, 그 산의 둔중한 품에 안겨 통곡이라도 해야 할 애증들을 몽땅 털어놓고 내려올 그 산은 그 자리에 변함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지리산은 이미 가을을 단장한 겨울이다. 지리산을 왜 자주 가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 산은 실의와 좌절, 고뇌와 근심, 투기와 허영, 인연과 별리, 나눔과 봉사, 지혜와 명철, 희망과 비전, 무소유와 해탈의 무심까지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거대한 소각장이 있다고 대담하기 싫다.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