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믿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신탁하셨습니다. 그 신탁을 잘 관리하여 잘했다 칭찬을 들을 수도, 무익한 종이란 책망도 들을 수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마 25:14~30). “각각 그 재능대로…. (마 25:15)” “재능(헬, 두나미스)”이란 그 사람의 능력과 힘의 수준을 의미합니다. 즉 일꾼들의 힘과 재능은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도 동일하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반면에 아무런 이익을 남기지 못한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는 결국 무익한 종으로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인생의 모든 삶을 심판할 때가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100%)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란 주인의 일과 가정 사무를 맡이 주인을 대신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구약의 요셉이 있습니다. 그는 보디발 장군 집에서 하인으로, 감옥에서 죄수로, 애굽의 총리로, 가족을 돌보는 일을 잘 관리를 하고 수행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과 말씀은 신앙인들에게 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 13:34)” 달란트 비유에서 말씀하신 내용처럼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맡은 다양한 직업과 사역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시대에 사는 각자의 사역과 직업이며, 생활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돈을 맡기셨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 돈($)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IN GOD WE TRUST)”란 글이 있습니다. 전 세계 나라는 UN 기준으로 193개가 있습니다. 세계은행 기준으로는 229개가 있습니다. 그 많은 나라 중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란 글을 화폐에 새긴 나라는 오직 미국밖에 없습니다. 달러는 전 세계가 통용하는 화폐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돈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동안 먹는 음식값만 해도 1인당 평균 약 4억 5천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연애 비용도 평균 약 7천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 외 의류비, 장신구, 화장품, 병원비(건강식품), 통신비, 연료비, 자동차 운영비(교통비), 관리비, 학비, 기타 비용 등을 합산하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쓰는 돈도 환산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돈을 쓰다가 이 땅을 떠나게 된다면 달란트 비유에서 “악하고 게으른 종”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돈은 벌기보다 쓰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칼빈은 “이웃을 위해 지갑을 잘 비우는 사람이 믿음과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사랑’의 정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40)”고 말씀합니다. 일평생 나를 위해 쓰는 돈만큼, 아니 10분의 일 정도만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복음화가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람 관계와 관리라고 합니다. 한 광역시 대형교회 목사님께서 원로 목사로 은퇴를 하고 강원도에 가 계셨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 생일과 명절에 찾아오는 분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였는데, 은퇴를 한 후 사람들이 찾아오지를 않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씁쓸한 말을 듣고 돌아오면서 만감이 교차하게 되었습니다. 달란트 비유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와 형제, 남편과 아내, 자녀들을 맡기셨습니다. 그 사람들을 복음으로 잘 관리하는 것이 아프리카 오지 선교사로 떠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경은 신앙에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딤전 3:4)”
결론
“누가 나를 보고 예수를 믿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과거는 분명히 현재의 산물입니다. 과거의 삶을 통해 오늘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우리가 매일 벌고 쓰는 돈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신탁입니다. 내 주변의 가족들과 지인들도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신탁입니다.
지구에는 약 80억이란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약 5,2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모태신앙인으로 또는 10년 20년 전에 예수를 믿게 하셨을까? 그리고 집사와 장로 권사로 또는 선교사와 목사로, 신학 교수란 직분을 주셨을까? 그 이유는 내 주변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기 위함입니다. “제자(弟子)”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입니다. 제자들에게 성경 교육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스승이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단 한 명도 제자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신앙생활을 시작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후손과 후배들에게 믿음과 신앙의 스승들입니다.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을 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고전 11:1, 빌 3:17).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의 철학은 다음과 같습니다. “(엡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