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단풍잎에게 길을 묻다”.
요즘 산행을 하면 온 숲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계절의 신비를 느끼는 때이죠. 겨울에는 죽은 듯 조용하던 나무에서 연한 잎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까?
가을의 단풍도 신비스럽지만 봄의 연초록 잎들 역시 언제 만나도 신비롭죠. 온 대지는 푸른 생명들이 스프링처럼 솟아나고 그 푸른 소나타가 온 대지를 푸르르게 만듭니다. 게다가 바람이 부는 들판에서 흔들리며 피는 꽃들은 생명의 아리아를 노래하는 듯하지 않습니까?
여름에는 신록의 계절이 되어 온 산을 눈이 부시도록 푸르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오면 계절의 신비를 더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이 부시도록 푸르르던 숲들이 저렇게 붉게 물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단풍이 들다가도 낙엽으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내년 봄이 되면 또 다시 푸르른 잎사귀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단풍은 낙엽이 되고 그 낙엽은 땅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저는 지난주 토요일 산행을 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단풍잎들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봄의 새싹으로 피어났는가. 무엇 때문에 여름에는 푸르르고 지금은 왜 단풍이 되어 낙엽으로 떨어지고 있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 봄에는 그토록 연녹색의 노래를 부르고 여름에는 신록의 춤을 추다가 가을에는 이렇게 단풍이 들어 땅에 떨어지는가.”
마치 단풍잎은 저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단풍이 들고 낙엽으로 지는 것이야 말로 사라짐과 영원성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죠.” 사실 이는 가을 시인 김현승의 시 세계이기도 합니다.
김현승은 ‘가을의 향기’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 (전략) 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
여기서 육체로 상징되고 있는 일체의 지상적인 것들은 가을이 오면 마르고 시들고 떠나가는 것들을 말합니다. 가을의 이미지들인, 단풍, 낙엽, 마른 풀들을 말하는 거죠.
김현승 시인의 상상력 가운데는 가을 자체가 계절적으로는 육체적인 것이 끝나가는 때로 여겨집니다. 사람의 육체건, 마른 풀이나 나뭇잎이건, 산 까마귀가 구슬프게 울어대는 겨울을 맞는다는 거죠.
그러나 그는 ‘지상의 시’를 통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 (전략)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사라지는 것만이, 남을 만한 진리임을 위하여, 나의 마음은 지금 저무는 일곱 시라면, 시는 그곳에 멀리 비추이는 입 다문 창들….”
한 마디로 김현승 시인은 반드시 가을은 모든 걸 사라지게 하는 계절이지만 사라짐이 있기에 영원이 있다는 것이죠. 아니, 사라짐은 영원을 전제로 하고 영원은 사라짐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단풍잎들을 향하여 이런 질문을 했고, 단풍잎은 저에게 김현승의 시 세계를 떠오르게 해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가을이 있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맞으면 우리 육체도 서서히 단풍이 들게 되어 있죠. 그러다가 겨울을 맞으면 낙엽이 어디론가 사라지듯이 우리의 육체도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짐이 있기에 영원이 있고 또 영원이 사라짐을 품어 주듯이, 언젠가 가을 단풍처럼 떨어지고 사라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세계로 걸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독의 시인 김현승에게 있어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회로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육체의 사라짐 역시 영원을 향하여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낙엽에게 다시 한 번 길을 물어봅니다. 전도서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 12:1).
오랜만에 만난 분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소 목사님, 예전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아직도 피부가 40대 같아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얼굴에도 단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몸도 언젠가 낙엽처럼 사라지는 때가 오겠죠.
그러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주신 사명의 길을 더 잘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저의 사라짐이 있기에 영원이 있고, 영원은 저의 사라짐을 품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