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탄일종과 보신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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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일종이 울린다 땡땡땡. ⓒ픽사베이

▲탄일종이 울린다 땡땡땡. ⓒ픽사베이

12월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징글벨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다. ‘사랑의 종소리’는 결혼 축가로 듣는다. 큰 행사 때마다 종소리가 울린다. 구주 예수의 성탄에는 탄일종이 땡땡땡 울리고, 12월 31일 송년 행사엔 보신각종이 울린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의 시를 읽지 않을 수 없다.

“울려라. 힘찬 종이여, 거친 창공에/ 날아가는 구름에, 싸늘한 빛에/ 오늘 밤으로 이 해는 가게 될 것이다/ 울려라. 힘찬 종이여, 이 해를 가게 해라// 울려서 낡음을 보내고, 울려서 새로움을 맞이하라/ 울려라. 기쁜 종소리여, 눈발을 헤치고/ 이 해는 이제 가노니, 이 해를 가게 하라/ 울려서 거짓을 보내고, 울려서 진실을 맞으라// 울려서 보내라, 가슴 졸이는 이 슬픔을/ 이 세상에서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생각에/ 울려서 보내라 빈부(貧富)의 차이와 반목(反目)을/ 울려서 맞아라. 모든 사람들 반목(反目)의 구제를// 울려서 보내라, 이윽고 사라질 쟁점을/당파의 나쁜 습성인 그 반목(反目)을/ 울려서 맞아라, 보다 고상한 삶의 방법을/ 보다 아름다운 예절, 보다 깨끗한 도덕을 지녀라//

울려서 보내라, 이 세상의 결핍과 고뇌와 죄악을/ 이 시대의 싸늘한 불신의 마음을/ 울려서 보내라, 울려서 보내라, 내 애도의 시를/ 울려서 맞아라, 보다 충만한 시인을// 울려서 보내라, 가문과 지역의 거짓된 자만심을/ 이 세상 사람들의 중상과 모략을/ 울려서 맞아라, 진실과 정의의 사랑을/ 울려서 맞아라, 모든 사람들의 착한 사랑을// 울려서 보내라, 낡아빠진 세상 모든 고질병을/ 울려서 보내라, 마음에 확 들어찬 황금의 욕망을/ 울려서 보내라. 수천 번 되풀이되는 전쟁을/ 울려서 맞아라, 수천 년 계속되는 평화를// 울려서 맞아라, 훌륭한 사람과 자유를/ 보다 관대한 마음보다 자비로운 손을/ 울려서 보내라, 이 나라의 어두움을/ 울려서 맞아라,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Alfred Lord, Tennyson/ 울려라. 힘찬 종이여(Ring out, wild bells)/ In memoriam/ 1850).

이제 2022년도 서서히 역사 속으로 자리를 옮겨 안착하고 있다. 정말로 희노애락을 다 겪으며 다사다난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시(詩)라도 몇 편 읽어 송년의 인사에 대하고자 한다.

① “12월이 되면 가슴 속에서 왕겨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 집에 오래 갇혀 있던 맷돌이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귀때기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서나서나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2월의 나무들은 마을 옆에 지팡이처럼 서있다/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12월이 되면/ 가슴 속에서 왕겨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솥 하나 있음을 안다”(유강희/ 12월).

② “등허리에 상처가 났다// 혼자 약(藥)을 바를 수 없어/ 상처는 점점 곪아갔다// 거울에 등을 비추고 고개를 한껏 돌린 뒤/ 내 몸의 가장 가엾은 자리를 보았다// 몸에서 가장 먼 얼굴과/ 몸에서 가장 먼 상처는 거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도록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마음의 가장 먼 곳을 차마 보여줄 수 없었던/ 한 외로운 사람의 뒷모습이었다”(황수아/ 몸에서 가장 먼 곳).

③ “해가 지는 곳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나무가 움직이는 곳에서/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담은 김치의 맛이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해/ 형이 슬퍼한 밤이었다// 김치는 써는 소리마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고 형이 말했지만/ 나는 도무지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는 밤이었다// 창문이 있는 곳에서/ 어둠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달이 떠 있어야 할 곳엔/ 이미 구름이 한창이었다// 모두가 돌아오는 곳에서/모두가 돌아오진 않았다”(임경섭/ 처음의 맛).

이것과 저것, 너와 나의 다름을 깨달을 때 처음의 맛이 선명해진다. 김치의 맛은 누가 담갔느냐에 따라, 또 누가 써느냐에 따라서도 그 맛이 다르다. 그런 분별이 생길 때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분별과 나이 먹는 것의 슬픔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언론기관마다 2022년의 10대 뉴스를 발표할 것이고, 기관마다 1년을 정리해 년보(Annual Report)를 발간하면서 한 해를 정리해 역사 속으로 보낼 것이다.

어떤 것은 우리 머리로 기억하고 어떤 것은 우리 몸이 기억할 것이다. 어떤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나를 더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기억할 것이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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