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성도들이 굳게 붙잡아야 할 복음의 핵심
1. 복음과 종교를 구분하라
복음은 원죄(하나님 떠난 죄)의 인간 모두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천국의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으로부터 시발(始發)된 복된 소식이다.
종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숭배 행위, 하나님을 떠남으로 죽음의 올무가 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우상숭배 행위를 일컫는다.
모든 종교의 귀결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을 추종하는 행위다. 그리스도의 복음 또한 그리스도의 언약을 상실한다면, 인류를 멸망케 하는 자(사탄)의 궤계로 인하여 종교로 몰락하는 반증이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탄은 오직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하거나 그리스도를 왜곡시켜 종교화하는 술책을 교묘히 행한다, 선행이라는 당위성, 화합이라는 당위성, 모든 종교는 똑같다는 당위성 등을 앞세워 특별한 은혜의 복음인 ‘그리스도 언약’마저 많은 종교 속에 하나의 장르로 몰아넣는다.
종교다원주의가 그것이다. 종교다원주의는, 인간적으로 볼 때 수많은 종교가 화합하고 단결하고 교류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인류애가 한껏 발휘되는 화합으로 경이로운 조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사탄이 깔아놓은 수많은 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영적 이면이 존재한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고, 그리스도는 사탄을 심판하는 심판자이다. 어찌 주인이, 주인을 배신하고 주인에게 대적하는 자와 어깨동무를 할 수 있으리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명백한 적그리스도다. 인류를 구속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단으로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만드는 궤계를 펼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요일 2:22)”.
그리스도를 생략하는 습관, 그리스도로 귀결되지 않는 설교,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는 예배, 그리스도 이름 없는 기도는 모두 이미 사탄의 궤계에 빠져든 모습일 수 있다. 사탄은 지금도 육신의 선행과 봉사를 강조하는 행위로 그리스도를 망각하게 한다.
복된 소식, 복음의 중심은 ‘그리스도’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생략하거나 그리스도를 강조하지 않는 영혼의 무지함을 조롱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천만 번 강조하고 반복해야 할 하나님의 절대적 구속의 언약이다. 그리스도는 믿음의 정중앙이다.
2. 복음과 율법을 구분하라
율법은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형태의 신앙이기 때문에 구약 교회가 율법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 구원에 이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을 떠난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약속 실천으로 주어진 은혜다. 인간이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율법적 구원의 길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종결됐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은 구원의 방식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율법의 도덕적 윤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표가 되고 있으며, 율법이 구원으로 역사하는 길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으로 존립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전통적 맥락으로 이어오는 율법적인 습관적 신앙 행위를 제거하고, 진리(그리스도) 안에서 자율의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있게 깨달아야 한다.
사탄은 지금도 율법적 잣대를 이용해 스스로 자멸하도록, 그리스도인의 나약한 육신을 죄책감이라는 올무를 사용해 좌절과 실의에 빠뜨린다. 인간은 누구나 제한적이고 한시적이며 나약한 육신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언약을 상실하지 않는 범주의 죄라면 언제든지 회개를 통해 돌이킬 수 있고, 그리스도 언약을 굳게 붙잡은 믿음으로 거듭날 수 있다.
3. 십자가의 의미를 점검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담당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비하(卑下)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육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처절하고 비참한 고통의 죽음이지만 영적인 이면은 그렇지 않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8)”.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께서 구속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택한 성도들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심판자로 나서 하나님 말씀을 실천한 성취 행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물로 인해 믿음의 인류가 구원받게 된 약속은 이미 구약성경의 유월절로 예표돼 지켜져 왔으며, 유월절 어린양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실제로 십자가 언약을 실천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십자가 제사의 그림자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 사실임을 입증한다. 단 한 번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가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하나님과 세상을 화해시킴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道)를 믿는 인류를 구원하셨다. 십자가의 길을 열어놓은 권세는 물론 그리스도다.
4.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기하라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장사 이후의 비하(卑下)로부터 승귀(承歸)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루어짐으로, 하나님 떠난 인간의 죽음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을 떠난 죄에 대한 죗값을 치름과 동시에 주어진 필연적 귀결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한 개인이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난 절대 권세의 결과에 제한되지 않고, 사망을 멸하고 생명의 새 세상이 도래했음을 장쾌하고도 준엄하게 선포한,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취되었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선포하신 증거다. 인류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직 창조주이자 생명의 주관자이신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심판하고 평정할 수 있는 절대 권세자다.
그러므로 기독교(基督敎) 곧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천국 열쇠를 손에 쥐게 된, 매우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은 성도들의 공동체다. 그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다.
5. 그리스도의 언약을 굳게 붙잡아라
하나님은 언제든 그리스도 언약을 굳게 잡은 소수의 택한 자를 통해 인류의 구속을 회복시키는 역사를 주도하셨다. 인간은 그리스도 언약을 상실하며 타락을 반복했고, 하나님께서는 시대 시대마다 그리스도 언약을 상실하지 않은 믿음의 선진들을 특별히 세우시고 인류 구원의 길(그리소도 언약)을 회복시켰다.
하나님의 구속은, 메시아(그리스도) 언약을 믿는 믿음이다. 인간에게 유일한 구속의 길이 그리스도임을 친히 약속으로 선포하셨고, 그리스도 언약을 굳게 잡은 소수의 성도들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
그리스도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원죄(하나님 떠남)가 용서되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죽음 문제가 해결되어 영원한 새 언약의 성취로 인류 구원에 이르렀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하나님의 구 언약은 물론, 새 언약 역시 ‘그리스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덧입은 성도일지라도 누구나 도덕적·윤리적으로 완전할 수 없는 피조물이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두 번이나 외면했고, 야곱은 장자의 특별한 권한을 속임수로 쟁취했으며, 다말은 시아버지와 동침했다.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는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다렸고, 세 번이나 그리스도를 부인한 베드로는 자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들을 지탱한 동력은 모두 ‘그리스도 언약’을 굳게 잡은 믿음이다.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구속 초점이 그리스도임을 명명백백하게 깨달을 수 있다. 조금은 나약하고 가끔은 육신적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그리스도 언약을 굳게 잡은 선진들은 승리의 삶을 영위했다.
세상 풍조는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치닫고 있다. 동남동녀(童男童女)가 거리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물질 때문에 천륜을 거스르는 악행들이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위험천만하게도 ‘그리스도 안에서’ 수행해야 하는 전제를 소홀히 여길 수 있는, 실족의 유혹이 난무한 세상 풍조와 공존하고 있다. 선한 가치가 상실되고 인본주의가 만연한 풍진의 세상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도덕적 윤리적 덕목이 설령 조금 부족할지라도, 가난과 장애 등으로 고통받는 환경일지라도 성도들이 굳게 붙잡아야 할 믿음의 핵심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성경의 핵심, 말씀의 핵심, 신학의 핵심, 신앙의 핵심, 예배의 핵심, 설교의 핵심, 영원한 생명의 핵심, 십자가의 핵심, 부활의 핵심, 심판의 핵심, 믿음의 핵심은 그리스도 한 가지다. 성도들이 일생동안 변질 없는 믿음으로 간직해야 할 신앙의 좌표, 그리스도다. 성도들이 뼈에 음각할 천국 열쇠, 숨질 때 내 할 말,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리스도다.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