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114] 시어머니, 당신의 ‘가족’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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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중등부 때 함께 임원을 하며 어울렸던 친구들이 있는데, 죽이 잘 맞아서 지금까지 가장 친한 친구들로 남았다. 그때 난 제일 작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제일 크다. 키 하나도 예측할 수 없듯이 미래도 저마다 달라졌지만, 친구 사이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때 교회에서 가까운 남자 중학교가 있었는데, 미션스쿨이라 다니던 교회를 이용해 가끔 집회나 행사를 할 정도로 그 학교 학생들이 많이 다녔다. 그곳 출신의 친형을 따라 교회에 나갔었는데, 친한 친구들 중 혼자만 학교가 달랐다.
그래서 가끔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갈 때 문제가 생겼다.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게 된 후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시작하면서, 교회를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이듬해 봄까지 잠수를 했는데, 가장 우울한 시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매일 어울리던 친구들과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다가, 1년 뒤부터 다시 만나게 됐다.
그런데 아들 교육에 열성적이었던 한 친구 어머니가 유독 나를 경계했다. 그 중학교에서 전교 5등 정도 하던 친구의 어머니였다.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고등학교도 안 간 아이가 미심쩍은 것은 당연했다.
당시 검정고시생은 성적이 너무 우수해 월반하는 극소수 아이들 아니면 만학도였는데, 학교 다닐 나이에 검정고시를 하는 아이들은 퇴학생이나 문제아라는 인식이 꽤 있었고, 어느 정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 어머니는 동네 시장에서 제일 잘나가는 옷 가게를 하시면서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을 중간에 사립으로 옮길 정도로 당시로서는 드문 교육열을 지닌 당찬 분이었다. 우리가 집으로 놀러 가면, 이제 그만 놀고 대학 가서 만나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에게 나와 어울리지 말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가게에서 만나는 다른 친구의 어머니한테도 ‘걔랑 못 놀게 하라’고 귀띔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충격과 상처를 받았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엄마로서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무척 착했다. 좋게 말하면 무던하며 원만했고, 나쁘게 말하면 두루뭉술하고 흐리멍덩했다. 저 놈이 어떻게 저렇게 공부를 잘하는지 이상할 정도인, 요즘 말로 딱 ‘너드’ 같은 녀석이다. 결국 일류대학에 갔고, 대기업을 거쳐 공기업에 다니며 무난한 인생을 산다.
어머니가 나와 놀지 말라고 했다지만 특별히 변한 것도 없었고, 어머니 때문인지 바빠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보면 보는 대로, 못 보면 못 보는 대로 살았다. 그 친구가 결혼할 때와 여동생이 결혼할 때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서 인사하고 그렇게 지냈다.
나름대로 내 분야에서 목표를 이루면서 사는 나에 대해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물을 수도 없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을 만큼 세월도 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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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어머니는 그렇게 깐깐한 분이었지만, 수십 년 지난 뒤 내가 당신의 관을 운구할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거다. 어머니는 80대 초반의 연세에 며칠 전 지병으로 떠나셨다.
누구나 친구에게 나 말고도 많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장례식장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운구를 하고, 끝까지 남아 화장장이나 장지까지 가는 친구들은 별로 없다.
거기에는 단순히 친하고 중요한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나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 친구들이 선산 가파른 언덕까지 긴 거리를 운구해 주었다. 이후로 이번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세 번째 부모님 장례였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것이 고부간의 갈등 문제와 비슷해서다. 그 친구가 결혼할 여자를 소개했을 때 당차고 똑똑해 보이는 것이 내 친구와는 정반대라, 마치 그 센 어머니와 무던하시던 아버지가 연상됐다. 결혼하면 시어머니와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런 걱정도 해봤던 것 같다.
어떤 친구와 놀지 말라고 하듯,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드시면 아들 부부 관계에 영향이 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하지만 그간 자세한 내막은 들은 적은 없어도 특별한 문제를 듣지 못할 정도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 같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세월이 가도 참 어려운 문제인 모양이다. 최근 브랜드 아파트들이 무슨 파크, 하임, 캐슬 등 온갖 이름을 붙이다, 급기야 25글자 짜리 아파트까지 나왔다는 기사가 있었다.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라니, 자기 주소 외우기도 힘들 지경이다.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야 시어머니가 못 찾아온다는 조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을 못 외우면 시누이를 앞세워 둘이 같이 온다나…. 이런 농담이 있을 정도로 가능하면 멀리하고 싶은 것이 시어머니일 수 있지만, 마음 편히 잘 지낼 수 있다면 아들이나 며느리나 인생의 큰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집집마다 간단치 않은 사연과 역사와 문화가 얽힌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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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에도 내가 친구와 멀어지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친구의 처신이었다. 자기 기질 때문이었는지, 그 문제를 크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남편이 이러면 속이 터지겠지만, 삶이라는 게 꼭 모든 일을 딱 정돈해 놓고 걸리적거리지 않게 치워놓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종종 좋은 해결법이 되기도 한다. 세월이 해결할 영역도 있기 마련이다.
가족은 못마땅함을 그대로 두고 사랑하는 존재다.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인정하는 것은 스트레스지만, 자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내치는 사람이 없듯 시부모도 일단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여성들이라고 불만이 없지 않다. 하지만 늘 불평을 하면서도 측은지심으로 이해하려 애쓴다. 또 섬기는 조건에 있어서도 친정 엄마와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챙긴다.
둘째는 친구가 양쪽을 다 인정하고 들어준 점이다. 그 친구 성격에 어머니한테 토 달며 어떤 친구와 사귀든 참견하지 말라고 반항했을 리 없고, 그저 알았다고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한테는 전혀 내색도 안 했다. 자기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엄마 원래 그러잖아” 정도로 나오니, 달리 할 말이 없어진다.
아내에게는 이 정도만 돼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우리 엄마가 어때서? 당신은 뭘 그리 잘했어?” 이런 남편은 빵점이다.
결혼 초기에 나오기 쉬운 반응인데, 자기 어머니와 아내는 좋은 사람들이라 세간의 고부 사이 같은 갈등이 없을 줄 알았다가 혼란에 빠져 어머니에게는 아내 편을 들어 설득하려 시도하고, 아내에게는 어머니 험담은 용납할 수 없다며 싸우는 일이 잦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우유부단하지만 않다면 양쪽 말 다 들어주고 수긍해 줄 때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남자의 뇌 구조상 아무 일도 해결 안 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자들에게는 들어주는 것이 절반의 해결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셋째, 좋은 주변인이 있었다. 나는 그 일을 다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친구가 어머니들끼리 오간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 것은 이간질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일을 대비해 나랑 계속 잘 지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친구는 그 어머니한테 설득당할 뻔한 자기 어머니에게, 염려와 달리 좋은 친구라고 나를 변호했다고 한다.
고부 간에 잘 지내려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 포지티브한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욕하는데 지인이 맞장구를 쳐주면 당장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지만,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각각 시누이나 친정 엄마, 또는 친구가 그런 역할을 하면 점점 더 서로를 곡해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관계가 나빠지면 그들은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타인에게 고충을 토로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럴 때도 선을 지켜야 들어주는 사람도 같이 험담하지 않게 된다. 좋은 상담자라면 다 들어주되 잘 풀어가라는 쪽으로 조언하고,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선한 쪽의 말을 해준다. 무작정 같이 헐뜯는 사람에게는 가족 간의 갈등을 말하지 않는 쪽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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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이 갈등이 없는 집은 없다. 하지만 내가 염려한 것과 달리 내 친구의 아내는 어머니와 관계가 나쁘지 않았음을 장례식에서 알 수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앞에서 가장 많이 슬퍼하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바로 그 며느리였기 때문이었다.
여느 집처럼 많은 사연이 있었겠지만, 가족은 서로 회한과 미운 정 고운 정을 다 남기는 것이니,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 며느리가 어머니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살아왔음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결국 고부간은 사이가 좋은가 나쁜가 하는 것보다는 서로를 진짜 ‘가족’으로 여기는가 아닌가의 문제만 남는 것 같다. 나 역시 청소년기에 마음이 상했었지만, 이젠 웃으며 말할 수 있고 진심으로 추모할 수 있는 이유도 그만한 일로 멀어질 수 없는, 가족처럼 좋은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서 없이 모두 죽는다. 사랑만 해도 아쉬움이 남는 인생에 너무 많은 매듭은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담이지만, 끝으로 중학교 때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그 친구 집에서 놀고 있을 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늘 훈련으로만 하던 공습경보가 실제 상황으로 발령됐다. 당장 대피해야 하는 긴급 상황이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매월 반공훈련을 했지만, 실제로 TV에서 경계경보, 공습경보가 나오니 반신반의하면서도 적잖이 당황했고, 이러다 전쟁이 나는 건가 싶었다.
그때 대여섯 명이 함께 있었는데, 집주인인 그 친구가 평소와 다르게 흥분하면서 하던 말이 기억난다.
“너네 이제 집에 못 가. 이대로 전쟁 나면 우리 식구들이랑 같이 피난도 가고, 밥도 먹고, 같이 다녀야 되는 거야!”
그 소동은 북한에서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소령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고, 한두 시간 뒤 해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에 그려보았는데, 그때 생각이나 지금 생각이나 그 친구 어머니는 전쟁통이라도 미우나 고우나 우리를 버리지 않고 거두셨을 거라는 결론이다. 이젠 편히 쉬시길. 그리고 천국에서 뵙기를….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