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칼럼] 교민 사회가 좁다 보니
교민 사회가 좁다 보니, 한 집 건너 아는 사람을 만날 때가 많다.
‘행복한 가정을 위한 세미나’를 위해 호주의 가장 서쪽인 퍼스에 갔다가 방문한 교회에서 예전 멜버른 가정 세미나 캠프에서 만난 집사님을 만났고, 또 그 집사님 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사님의 친인척이 필자와 아주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보니, 넓은 사회인 호주에서 살면서도 좁은 교민 사회에서 익명성이라고는 경험하지 못해서, 안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교민들을 만나다 보면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철저하게 감추고 이야기를 잘 안하시는 분들도 많다. 교민들과는 아예 교제를 하지 않으면서 호주 사회에 들어가서만 사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나 자랑거리만 나누고 힘든 것이나 어려운 것은 전혀 나누지 않는 분들도 있다.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자랑만 늘어놓고 솔직하게 자신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지인들과 만나 차를 마시고 시간을 보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공허하고 만남 자체가 의미가 없게 여겨질 때도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나눔이라는 것은 너무 중요한 부분이고, 진정한 나눔이 있어야 관계는 발전하게 된다. 진정한 나눔은 피상적 정보 교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깊고 솔직한 감정 교환이 있을 때 사람 간의 관계가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모든 사람과 깊고 솔직한 감정 교환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솔직한 것이 때로는 타인이 나를 너무 쉽게 공격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끔 상대방을 믿고 솔직한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었더니,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을 때가 있다. 영화에서 보면 재산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 비명횡사를 경험하는 일들을 종종 보게 된다. 누군가 그 집의 아이를 유괴를 한 후 재산을 빼앗아 가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뿐인가? 배우자에게 어렸을 때 또는 나의 어릴 적 가정의 모습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가, 그것이 안 좋은 상황에서 공격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경험할 때도 많다.
이런 삶의 모습들로 인해 솔직하게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는 삶 속에서 좋은 나눔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행복감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억압과 고난,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그것에 대해 나눌 대상이 없는 사람은 삶이 허무하다고 성경 전도서에서는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친구를 만들고 배우자와 화목하게 지내는 등이 때로는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 힘든 일이지만, 직업에서 성공하는 것 이상으로 노력해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
어제 우리집 딸이 엄청나게 일을 하고서도 아주 밝은 모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피곤해할까 걱정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직장에서 오늘 수십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타인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람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딸은 스트레스가 다 해소된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지, 왜 상담사와 같은 타인에게 가서 이야기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분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삶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감정을 나누고 어려움을 나누는 대상이 있을 때, 우리는 훨씬 더 빨리 어려움을 극복하고 편협하지 않은 건강한 결정을 내릴 기회가 많아진다.
외향적 사람들이 내성적 사람보다 강점이 있다면,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외향적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혼자 끙끙 앓기보다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나누고 사람들과 대화한다. 그러면서 도움이나 위로를 얻고 더 나은 자원들을 선택하는 결정들을 내릴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교민 사회가 좁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면 안 되고 감정을 나누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평생 외롭고 갇힌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 교민 사회에서 체면과 위신을 세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마음을 나눌 좋은 이웃을 만나고 가족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에 초점을 두고 노력하라고 권하고 싶다.
어떤 분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을 도우며 살았는데, 원치 않게 호주에 온 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게 됐다고 한다. 변화된 삶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외로움과 고립감으로 죽고 싶은 마음까지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일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며, 교민 사회에서도 타인과 소통하며 의미 있는 삶을 나누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청년들은 혼자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은 면도 있지만, 깊은 고독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므로 혼자 사는 사람들도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좋은 친구들을 만들지 않으면, 외롭고 힘든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따뜻한 관계의 필요성은 선택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필수임을 알고, 좁은 교민 사회라도 용기를 내어 내게 있는 관계들을 잘 세워 나가고 좋은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그것을 위해 내 모습을 내려놓고 나누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가정에서부터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김훈 목사(Rev Dr. HUN KIM)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
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Chair of Board in Australia Korean Life Line)
ACA Registered Supervisor (ACA등록 수퍼바이저),
ACA Member Level 3 (ACA정회원)
기독교 상담학 박사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
목회상담학 박사 (Doctor of Pastoral Counselling)
고려대학교 국제경영 석사 (MBA of International Business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at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BA of Mass Communication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BA of Theology at Chongshin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