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 토마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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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순교자들의 의로운 피

▲토마스 선교사.

▲토마스 선교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한 알의 밀이란, 희생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 자신을 상징합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예수님 자신의 수난을 설명하는 비유로 언급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우주적인 진리를 가르치시며, 바울 역시 같은 교훈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땅에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Robert J. Thomas, 1839-1866)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선교의 꿈을 품고 이 땅에 들어왔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27세에 순교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토마스 선교사뿐 아니라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들과 가족 145명이 안장돼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당시 변방이던 ‘Corea’에 복음의 빛을 나누기 위해 헌신했고, 병원과 학교를 설립해 사회 발전에 기여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수많은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가톨릭의 성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은 개신교의 성지로 서울 마포 한강변을 따라 이웃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1840년 9월 7일 영국 웨일즈 회중교회 목사의 두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친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매우 경건한 사람으로 웨일즈 하노버교회 담임으로 목회하다 1884년 2월 28일 사임 후 10월 2일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3년간 클린도 비리 칼리지에서 라틴어, 헬라어, 프랑스어 공부를 했으며, 어학에 재능이 탁월했다고 합니다. 1856년 16세 때 신학공부를 위해 런던대학 뉴 칼리지에 진학했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학교 측에서 1년 후로 입학을 연기하였습니다.

그는 방황과 낙망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런던 대학교 뉴칼리지에서 학사 및 신학과정을 마쳤습니다. 1863년 6월 4일 고향 하노버교회에서 23세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중국 선교의 사명을 느끼고, 부인 캐롤라인과 런던 선교회 파송으로 중국 상하이를 향해 떠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일찍부터 준비되었던 선교사였습니다. 그의 성장 과정이 그랬습니다. 1875년 런던 대학교 입학 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자기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1859년 대학 교수회에 휴학을 요청하면서 보낸 편지에 이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스스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처럼 주님과의 특별한 교제는 기독교 역사 속 빼어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입니다. 1859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적 부흥이 웨일즈에서 시작됐는데, 당시 웨일즈 사람 중 부흥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휴학 후 설교에 전념했던 토마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 순교를 다룬 그림. ⓒ크투 DB

▲토마스 선교사 순교를 다룬 그림. ⓒ크투 DB

영적 부흥을 경험하며 중국 선교를 꿈꾸던 토마스는 대학을 졸업한 1863년 12월 사랑하는 아내 케롤라인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지만, 3개월 후인 1864년 3월 24일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보냅니다.

캐롤라인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임신 중 다른 기후의 이국 생활로 고생하다 중국 남부로 이동했으나, 거기서 미국 선교사 부인의 죽음을 듣고 충격으로 유산한 지 사흘 만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함께, 현지 런던 선교회 책임자들과도 뜻이 맞지 않았던 토마스 선교사는 직을 사임하고 산동성 지푸 세관에 취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 주재하던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알렉산더 윌리엄슨 목사를 만나, 선교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토마스 선교사는 우연히 한국에서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둥성으로 피난 온 천주교 신자 두 사람을 만나 한국 선교의 꿈을 꾸기 시작하여, 마침내 세관에 사표를 내고 한국 선교의 기회를 엿보다, 한국으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많은 양의 한문 성경을 품은 채 배를 타고 한국 서해안으로 떠난 것이 1865년 9월이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황해도 연안 창린도에 도착해 약 두 달 반을 머물면서 섬 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는 한편, 한국어를 배우면서 열심히 전도한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조선 땅으로 가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중, 마침 미국 상선인 제너럴 셔먼(General Sheman) 호가 무역을 위해 한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1866년 7월, 그는 이 배의 통역 겸 안내자로 동승해 선교 열정을 불태우던 한국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약 일주일 후 제너럴 셔먼 호는 대동강 입구 용강군에 당도했습니다. 배는 계속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평양성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머물자, 평양 감영 문정관들은 “우리나라는 외국과의 무역이 국법으로 금지 되어 있으므로 퇴각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제너럴 셔먼 호는 무역선답지 않게 중무장을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문정관 중군 이현익을 억류하고 강압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에 강변 병졸들과 주민들이 물러가라고 고함을 치면서 돌을 던지고 활과 화승포를 쏘기 시작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셔먼 호에서도 소총과 대포로 응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와중에 홍수로 불어났던 대동강 물이 줄어들고, 썰물 때가 되자 강물이 급격히 줄어 제너럴 셔먼 호는 강바닥에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평양감사 박규수의 명에 따라 우리 군은 상류에서 작은 배 여러 척을 연결하고 그 위에 나무를 쌓아 불을 붙인 신탄선을 떠내려 보냈고, 이 신탄선이 제너럴 셔먼 호에 닿자 배가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불이 크게 번지자 배에 탔던 선원들은 어쩔 수 없이 강으로 뛰어내려 강변으로 헤엄쳐 나왔지만, 대기하던 병졸들이 뭍으로 오르는 선원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쳐 죽였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도 더 이상 배에 있을 수 없어, 성경 몇 권을 품고 강으로 뛰어내려 헤엄쳐 나왔습니다. 강변에 이른 선교사를 퇴교 박춘권이 칼로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 초기 선교 역사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개신교 성직자 순교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마지막으로 품고 온 성경을 강변 여기저기에 뿌렸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박춘권에게도 한 권을 주었으나 받지 않자, 그대로 모래사장에 던졌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순교를 당했습니다.

박춘권은 자기 칼을 맞고 죽어가는 서양 사람이 건네주는 책을 처음엔 받지 않았으나, 상황이 끝나고 돌아 갈 때 하나를 주워 집으로 가져갑니다. 그 성경을 정독한 그는 후일 예수를 영접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어, 안주교회 영수(장로)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군중 속에 열 두 살 난 소년 최치량이 있었는데, 그는 토마스 선교사가 흩뿌린 성경 세 권을 주워 갖고 있다 한 권을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주었고, 박영식은 성경을 한 장씩 뜯어 벽지로 사용했으며, 그 후 박영식 집터에서 평양 최초 교회인 널다리골 예배당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박춘권의 조카 이영태가 박영식의 집을 방문했다가 벽에 바른 성경을 잃고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실한 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만큼 한국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도 드물다 하겠습니다. 이 땅에 생명을 바친 첫 순교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같은 영광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박춘권의 칼을 맞고 죽었으며, 시체는 토막나 강변에서 불태워졌다고 합니다. 제너럴 셔먼 호의 닻줄은 평양 동문에 걸려, 해방되던 1945년까지는 남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토마스 순교기념교회당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토마스 순교기념교회당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한국교회는 그의 순교를 기념해 1927년 토마스 목사가 묻혀 있는 쑥 섬에 1천여 명의 교인들이 모여 추모예배를 드렸고, 1932년에는 토마스 목사의 이름 첫 알파벳인 ‘T’자 모형으로 기념예배당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고대 교회 교부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고,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교회는 1930년대부터 6.25 사변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공산당에 의해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신사참배 거부로 주기철 목사를 위시해 적어도 목회자 50여 명이 순교했고, 6.25 사변 때는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아들로 삼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순교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특히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목 베임을 당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던 토마스 선교사의 어머니는 목이 잘려나간 아들의 소식을 듣고 온 성도들과 함께 조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아들을 목 베어 죽인 민족이지만,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조선이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랍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후 평양 대동강변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목을 베었던 박춘권뿐 아니라 장사포의 홍신길은 서가교회의 설립자가 됐고, 만경대의 최치량은 평양교회를 창설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토마스 선교사가 뿌린 한 알의 밀이 썩어져 많은 열매를 맺은 결실이 아닐까요?

지금 이 땅을 통째로 집어 삼키려는 불순한 좌파들과 주사파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이 땅은 결코 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의로운 피가 이 땅에서 아직도 끓고 있고, 양화진을 비롯해 6.25 남침으로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 땅을 지켜내기 위해 장렬히 순교한 그 피가 지금도 삼천리 금수강산에 메아리치고 있으며, 우주와 세상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품에 안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중직자들과 성도들 중 양화진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아 아쉽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교회별로 절두산을 순례하며 신앙 성찰 계기를 마련하고 있으며, 그 효과는 대단하다고 합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도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개발해 성도들을 양화진을 비롯한 국내 여러 순교지들을 방문케 하여, 다시는 이 땅에서 성도들을 박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순례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고, 종말론적 신앙인으로서 주님의 명령인 복음을 전하는 일에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앞장서, 다시 횃불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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