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칼럼] 가족 소통의 힘
우리 가족은 매주 월요일 저녁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자녀가 6명이다 보니 서로 만나기 쉽지가 않을 때도 있지만, 집안일을 공유하려면 의논이 필요해 함께 모인다.
모이면 가끔은 게임도 하고 재미난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금 하는 집안일에 대한 점검과 각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누게 된다. 그리고 각자 고민을 나눈 뒤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하고 마치는데, 마무리는 매번 같은 노래다. 수년 전 한국에서 방문했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오셔서 계시는 내내 거의 매일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불렀던 찬양을 아이들은 유일하게 한국 말로 열심히 부른다. “완전하신 나의 주~”.
어제는 한국 방문 중인 아빠와 멀리 퍼스에 가 있는 셋째를 제외하고 가족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둘째인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다른 생각이 있기에 그것들을 다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친구든 다 받아주고 어떤 친구의 생각이든 다 인정해 주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다른 친구의 영향을 잘 받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타인을 대할 때 옳다 그르다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삶의 모습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다. 그들과 가까이하는 것이 때로는 독이 되는 것 같아, 그런 친구들과는 가까이하지 않고 나에게 통찰과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해야겠다.
판단이라는 말이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서는 나쁜 말로 여겨지지만, 분별해서 바른 선택을 하는 의미에서는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판단이라는 말이 좋다. 개인의 성공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나누어 주면서 살고 싶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엄마, 아빠가 그런 삶을 살고 있어 멋진 것 같다.”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자신만의 세계관과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 같아 흐뭇했다. 많은 재산이나 넉넉함을 아들에게 주지 못했지만, 부모의 삶을 가치 있게 여겨주는 아들로 인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둘째 아들이 생각을 나눈 후 가족들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다른 아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또 들었다.
첫째 아이는 최근 취직을 했는데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개인적인 시간이 지루하다고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안 하니 왠지 우울해지는 것 같다”고 하자, 다른 아이 하나가 그 마음을 먼저 공감해 주었고, 다른 가족들은 여러 조언들을 해주었다.
“이제 일을 시작하고 나면 쉬지 못할 테니 열심히 잘 놀아라”고 말해주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동을 하면 어때? 나랑 같이 운동하자”는 아이,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잘 찾아봐. 종이에다 삶의 장기 목표, 중간 목표, 단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 보면 어때?”라는 말을 해주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자 큰 아이는 동생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번 해 봐야겠네요. 말한 것 중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기분도 좋아질 것 같아요”라고 응답했다.
넷째는 방학 때 하고 싶은 일들을 야심 차게 설명했다. 운전면허도 취득하고 악기도 배우고 동생들 공부도 가르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넷째의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베리 굿”이라며 무엇인가 열심히 해보려는 넷째를 칭찬해 주었다.
막내에게도 나눌 기회를 주었는데,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언니 오빠가 말을 잘 해서 그런지 아니면 큰 아이들과 나이 차가 많아서 그런지, 막내는 가족 시간에 의견을 많이 내지 않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는 식구들은 막내가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한 바퀴 다른 사람들이 다 나누는 동안 생각할 기회를 주었고, 그리고 나서도 더 뜸을 들인 다음 막내는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데 잘 적응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가끔 늦게까지 이야기하지 않는 막내를 위해 내가 대신 원하는 바를 설명해 주려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막내의 표현 능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힘들지만 기다려 주어 막내가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모두 바랐다.
우리 가족의 시간이 항상 행복하고 평안하진 않다. 가끔은 가족끼리 이야기를 하다 서로 다툼을 하는 일도 생긴다. 게임을 하다 다투어 그만둔 적도 있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성향이 맞지 않는 아이끼리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가족의 시간을 보내려면 각자 시간을 따로 떼놓아야 하고, 서로 조율해야 하며, 때로는 불편한 일들을 나누기도 한다.
그렇지만 매번 가족의 시간을 마무리할 때마다 우리 가족은 행복해한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더 친해졌음을 느끼고, 서로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 속한 자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민 사회에서 부모들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다 보면, 아이들이 클수록 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세계관도 무척 다르다. 때문에 가족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꾸준히 갖고,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다 보면 오해가 풀리고 이해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러다 보면 자녀는 부모의 세계를 이해하고, 부모도 자녀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은 소통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소통은 일방적으로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혹시 내 소통 방식이 일방적이어서 가족들이 힘들어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 것을 강요하거나 상대의 의견을 듣지 않는 일방적 소통으로 가족 관계가 힘들어지지 않도록 각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면, 소통을 통해 위로와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김훈 목사
Rev Dr. HUN KIM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