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거저 받았으니 거저 드립니다.”
저는 설교를 할 때 중간 중간에 찬양을 하고, 비록 찬양이 아니더라도 곡조 있는 예화로서 일반 노래를 부를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음악적 존재입니다. 음악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운율과 곡을 섞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암송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신명기 31:19)?
성 프랜시스 역시 거리와 시장, 광장에서 설교를 하고 복음을 전할 때면, 평민들에게 익숙한, 당시 유행하던 민요나 대중가요에 복음 가사를 입혀 그들에게 복음을 전달하였습니다. 당시의 사제들은 전부 고상한 라틴어로 설교를 했고, 평민들은 설교를 알아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성 프랜시스는 시장에서 장터 언어로, 대중가요에 복음 가사를 입힌 노래로 평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존 칼빈도 시편 쥬네브 찬송을 만들 때, 다는 아니지만 일부 찬송은 당시 유행했던 프랑스 민요나 대중가요에 시편 말씀을 가사로 붙였습니다.
저 역시 전도집회나 복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성 프랜시스나 칼빈처럼 대중가요를 복음적으로 개사해서 부를 때가 있습니다. 사실 찬송가에 나오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신자 되기 원합니다’ 등도 다 그 당시 민요와 흑인영가에서 차용했습니다. 그리고 아리랑이라고 하는 곡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찬송가 곡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예화 없는 설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예화는 어차피 다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일반 예화는 곡조 없는 예화이고, 노래는 곡조가 있는 예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도들과 소통하고 감동을 더 하기 위해 설교 중 찬송도 부르고 특별한 경우 곡조 있는 예화로 일반 노래도 선용하는 것이죠. 과거에는 주지주의적 설교를 하였지만, 요즘은 감성과 에토스가 있는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음악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애로사항이 많아져 갑니다. 유튜브에 설교 영상을 올리면 노래의 저작권에 걸리는 것입니다. 다른 노래의 저작권이라면 모르겠는데 3.1절이나 8.15 광복절을 맞아 ‘애국가’를 부르는데도 저작권에 걸리는 것입니다. 또한 어버이주일을 맞아 ‘어머니 은혜’를 불렀는데, 이것 역시 저작권에 걸리는 것입니다. ‘애국가’나 ‘어머니 은혜’와 같은 노래는 진짜 국민의 노래가 아닙니까?
CCM은 말하기도 어색할 정도로 저작권에 제한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스탭에게 빨리 저작권 단체에 비용을 지불해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부를 수 있도록 하라고 했는데, 저작권을 관리하는 단체도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누가 저에게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작사를 하거나 작곡한 노래를 저작권협회에 등록을 하세요. 특별히 ‘사명의 길’ 같은 경우는 어지간한 교회 성가대에서 다 불렀고 해외에서도 많이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목사님께서도 저작권 등록을 하면 저작권료를 꽤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노래뿐 아니라 앞으로도 정말 좋은 가사를 쓰고 좋은 곡을 작곡하여 저작권협회에 등록을 해 보세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게 무슨 떼돈을 버는 거라고요. 제가 저작권에 걸려 상처를 입었다면 저라도 남에게 그런 상처를 안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작권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음악 공부도 안 한 사람이고 국문과 출신도 아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문학성과 음악성을 거저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는 저작권료보다 제가 만든 노래가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이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저 받았는데 거저 줘야 되는 것이 신앙의 정신과 가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목사님, 듣고 보니까 참 그러네요. 정말 존경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더 큰 은혜를 주시고 더 큰 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목사님도 문학성과 음악성을 거저 받은 것이겠지요. 하나님이 몹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작권은 세상의 영역이라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은총의 영역이고 거룩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60권 가까이 책을 썼는데 누가 제 책에서 설교를 인용하거나, 책을 쓰는데 풋노트를 달지 않고 인용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마저도 쓰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는 부흥회나 세미나에 가서 설교나 강연을 한 후 어떤 분이 제 설교나 강의 원고를 달라고 하면 그냥 바인더 채로 줘버립니다. 이렇듯이 저는 앞으로도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드리고 살 것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