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셋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래도 감사하는 이유”.
지난 화요일은 어느 신학대학교에 가서 설교를 하고 왔습니다. 설교뿐 아니라 신학대학교 채플의 노후된 영상 시설까지 저희 교회가 교체를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저녁, 제가 하필이면 어느 지상파 방송 고발 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느 교회 분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유튜브로 본 것입니다.
“서로 함께 개척을 한 교회가 어떻게 설립자와 후임자 간에 다툼이 있고 교인들이 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을까. 어쩌면 저렇게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잔상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부족한 상태로 신학교를 갔죠. 그래도 어쨌든 제가 강단 체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다행히 젊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차로 가서 쉬면서 교회로 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총장실에 도시락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설교를 하는 도중에 제 핸드폰에 불쾌한 메시지가 몇 개 들어와 있었습니다.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그리고 저에게 지난날 그토록 인간적으로 충성했던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오해의 문자를 보내온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배신감이 들고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총장님과 식사를 하는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밥을 먹었습니다. 밥은 먹었지만 생각은 아주 유치한 문자에 있었던 거죠.
그런데 하필이면 도시락 반찬 속에 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반찬을 살살 씹어 먹어야 되는데, 제 마음에 약간 불편한 분노 같은 게 있어가지고 그냥 반찬을 콱콱 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 돌이 팍 씹힌 것입니다.
그 돌을 꺼내놓고 보니까 얼마나 단단한 돌이었는지, 게다가 입 안에서 더 큰 돌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큰 돌을 자세히 봤더니 돌이 아니라 오른쪽 어금니가 부러져버렸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총장님과 다른 교수님께 말도 못하고 끙끙 앓으며 왔습니다.
그 길로 당장 죽전 중앙로에 있는 다봄치과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원장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가 충치 먹은 것도 아니고 아주 건강한데 무슨 돌을 그렇게 세게 씹었길래 이렇게 상해 버렸습니까?”
그러면서 크라운을 씌우는 것도 현재로서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또 마취해서 뽑기도 애매하고, 우선은 견딜 수 있도록 상한 이에 옷을 입혀주겠다며 곧장 임시치료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돌이 나한테… 돌 있는 도시락이 총장님이나 다른 교수님한테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나한테, 그리고 왜 설교 중에 마음을 상하게 하는 문자가 와가지고 그렇게 돌을 씹게 만들었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기분 좋게 식사를 해야 되는데, 생니가 나가버릴 정도로 돌을 씹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잘 안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탄이 저를 시험하는 거였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성도가 교회에 와서 헌신기도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 접촉사고가 난 일이었습니다. 하필이면 교회를 와서 저에게 헌신기도를 받고 가는 중에 그런 일이 있으면 제가 얼마나 미안하겠습니까?
그래서 전화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그런 겁니다. 더 큰 사고가 나지 않는 게 감사할 뿐입니다. 목사님, 기도 많이 해주세요.” 그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무조건 감사해야 되겠구나! 그래도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이가 두 개, 세 개가 부러진 게 아니라 하나만 부러져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험이 교인들에게 임하지 않고 차라리 내가 당한 것을 감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청년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왼쪽 광대뼈 위로 얼굴을 갈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모르지만 거울 가까이서 보면 저만 알 수 있는 흉터 자국이 있습니다.
저는 그걸 ‘은혜의 상흔’이라고 여기는데요, 마찬가지로 제가 부러진 이를 혓바닥으로 감지할 때마다 “이 역시 감사의 상흔이다. 이걸 생각할 때마다 항상 더 감사해야 되겠다. 무조건 감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글이 하나님께 헌신을 하면서도 좋은 일이 아닌 조그마한 시험이라도 온 분들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의 감사로 인하여 하나님이 더 넘치는 위로와 좋은 일을 공급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또 헌신을 하면서 잠시 마음이 상했던 분들도 이 글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감사로 더 큰 승리와 기적을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감사로 더 좋은 소식, 더 좋은 기적이 공급되기를 바랍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