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6): 우상숭배와 복음
팀 켈러 통해 복음 재발견 사례들
몰랐다기보다 오해 바로잡은 것
내가 죄인이란 나쁜 소식 있어야,
대신 죽으심이 기쁜 소식 고백돼
팀 켈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은 ‘복음’이었다. 팀 켈러를 통해 복음을 재발견했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복음 자체를 몰랐다기보다, 복음에 대한 잘못된 오해들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팀 켈러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가 복음을 전달하는 방식이 날달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팀 켈러를 통해 복음을 재발견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지만, 이전엔 나쁜 소식이어야 한다. 내가 죄인이며 나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나쁜 소식이 선포될 때,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쁜 소식 전에 나쁜 소식으로 인도하는 팀 켈러의 복음 전달 방식이 우상숭배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포스트모던 시대 맨해튼 사역 중
기독교 죄 개념 가르침 어려워져
마음의 동기 살피는 ‘우상숭배’로
시대에 맞는 깊고 넓은 관점 찾아
“내가 처음 맨해튼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곳에서 기독교의 죄 개념에 대한 문화적 알레르기 반응을 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상숭배에 관한 성경의 광범위한 가르침을 전했을 때 사람들을 가장 많이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죄를 ‘여러분의 삶의 의미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위에, 비록 그것이 아주 좋을 것일지라도 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팀 켈러, 오종향 역, <센터처치>, 두란노, 271쪽).”
팀 켈러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사는 뉴욕의 청중에게 기독교의 죄 개념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죄에 대한 문화적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팀 켈러는 시대에 맞는, 그러나 더 깊고 넓은 관점으로 죄에 대해 설명할 방법을 찾았다. 바로 ‘우상숭배’의 개념으로 죄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죄에 대한 설명은 인간의 행위적 죄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팀 켈러는 죄를 짓는 마음의 동기를 살피고, 비록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이지만 그것이 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겔 14:3) .”
대체로 사람들은 우상(idol)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신상을 떠올린다. 유명가수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이뤄지는 내적 우상숭배에 대해 이야기한다. 머리에 뿔 달린 악마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상이다.
팀 켈러는 <내가 만든 신>에서 우상을 이렇게 정의했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팀 켈러, 윤종석 역, <내가 만든 신>, 두란노, 22쪽).”
우상, 하나님보다 중요한 모든 것
슬픔과 절망 차이 우상 유무 구분
슬픔, 삶 속 위로받을 수 있는 고통
절망, 궁극적인 것 잃을 때 찾아와
그럼 내 안에 우상이 존재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팀 켈러는 슬픔과 절망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슬픔은 위로받을 수 있는 고통이다. 슬픔은 여러 좋은 것들 중 하나를 잃었을 때 찾아온다.
예컨대 직장에서 낭패를 겪었다면 가정에서 위안을 얻어 헤쳐 나갈 수 있다. 반면 절망은 위로받을 길이 없다. 궁극적인 것을 잃었을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팀 켈러, <내가 만든 신>, 14쪽).
이렇게 내 삶을 절망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내 안의 우상일 가능성이 많다. 가장 의지했던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그러나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자녀를 우상숭배의 위치에 올리게 된다. 즉 자녀를 하나님 자리에 두는 것이다. 만약 자녀가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부모를 실망시킬 때, 단순한 슬픔을 넘어 절망의 단계까지 나간다면 자녀가 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배신에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이 고통스럽고 성경을 읽고 싶지도, 교회를 나가고 싶지도 않을 만큼 절망에 빠져 있다면, 배우자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삶의 결과이다. 거기서 회복될 때는 “내가 하나님보다 배우자를 더 사랑했습니다”라는 회개를 통해 회복된다.
◈사랑의 순서
어거스틴: 죄란 ‘순서 바뀐 사랑’
하나님 계실 자리 대체한 것들
하나님 가장 사랑해야 바른 순서
향유하는 사랑, 그 자체를 위함
사용하는 사랑, 잠시 수단으로
<반지의 제왕> 절대반지 같아
결국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며, 이것은 사랑의 순서 문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를 ‘순서가 바뀐 사랑(Disorderded love)’이라고 정의했다. 가장 사랑해야 할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자리에 다른 사랑이 대체된 것이 죄이며, 곧 우상숭배이다. 사랑에는 순서가 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때, 삶의 순서가 세워지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을 두 가지로 나누어 향유하는 사랑(Frui)과 사용하는 사랑(Uti)로 설명했다.
어떤 대상을 향유(Frui), 즉 즐기는 것은 그 자체를 위하여 사랑한다는 말이다. 반면 어떤 대상을 사용(Uti)한다는 말은 더 높은 차원의 목적을 위하여 잠시 수단으로 쓴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향유하는 사랑의 대상이시고, 나머지는 사용하는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향유의 대상으로 말하지만, 사람도 향유와 사용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향유한다고 할 때도, 하나님보다 더 향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사용의 대상이 되는 사랑을 향유의 자리에 올릴 때 우상숭배가 되고, 우리는 가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죄는 순서가 바뀐 사랑이고, 죄에서의 회복은 사랑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모든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우상숭배가 된다.
<반지의 제왕>에서 중요한 소재는 악의 군주 사우론이 소유한 ‘절대반지’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이 반지를 끼려는 사람은 누구나 탐욕에 물들게 된다. 돌킨에 해박한 톰 피쉬 교수는 이 반지를 ‘심리적 증폭기(a psychic amplifier)’라고 불렀다. 마음의 가장 절실한 갈망을 우상으로 획대시킨다는 뜻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선한 의도를 가진 등장인물들도 반지를 끼고 나면 그 선한 의도를 이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를 이루려 한다. 반지가 좋은 것을 절대화해서 다른 모든 도의나 가치관을 전복시킨다(팀 켈러, <내가 만든 신>, 19쪽).
톨킨이 말하는 ‘절대반지’는 좋은 의도와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절대화될 때 악한 일이 됨을 보여준다. 우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우상들은 대부분 좋고 선한 가치들이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공장이다. 성공, 사랑, 가족, 재물 등 모든 좋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켜 버린다.
미국 캘리포니아 코너스톤 교회를 개척했던 프란시스 챈은 <부부 제자도>에서 “결혼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결혼은 중요하고 선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선한 결혼도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버릴 때 그것은 가짜 하나님, 우상이 된다.
◈우상숭배의 위험성
우상숭배, 우리를 노예 만들어
사사기, 우상의 예속상태 현실
문제가 우리의 우상숭배 아닌,
충분히 숭배하지 않은 것 착각
우상숭배의 위험성은 그것이 우리를 노예로 삼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리에 다른 것을 숭배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속박된다. 사사기는 그 패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 중 하나이고, 이스라엘은 죄와 회개와 우상숭배를 반복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삿 10:6).”
바알과 아스다롯은 가나안의 신들이었다. 아람과 시돈의 신들은 북쪽의 신, 암몬과 모압의 신들은 동쪽의 신, 블레셋은 남쪽의 신이다. 이스라엘이 섬겼던 신들은 모두 그들을 억압했던 민족들의 신들이었다.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이 아람에, 에훗이 모압과 암몬에, 삼갈이 블레셋에, 드보라가 가나안에 대항해 이스라엘을 구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어느 나라 우상을 숭배할 때마다, 그 나라가 결국 이스라엘을 압제하게 됐다.
이것은 우리가 우상을 숭배할 때 그 우상의 예속상태로 이어짐을 알려준다. 우상숭배는 종살이로 이어지고, 그 종살이는 다시 우상숭배로 이어진다.
이런 패턴은 사사기뿐 아니라 오늘날도 동일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가치와 목적을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결혼 생활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가, 결혼 생활이 실패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연히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해, 더 좋은 배우자가 필요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우상숭배가 아니라 우상을 충분히 숭배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팀 켈러, 최종훈 역, <당신을 위한 사사기>, 두란노, 179-180쪽).”
건강한 교회 세우는 비전도 자칫 우상숭배 될 수 있어
우상숭배가 위험한 이유, 죄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
팀 켈러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비전 또한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목회자가 건강한 교회를 꿈꾸고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회가 건강해지지 않는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한 질책과 비난이 이어진다. “나는 잘 못해”, “나는 개척이 맞지 않아” 등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향한 비판이 이어진다. “이런 설교를 듣고도 변하지 않는 성도들이 문제야”, 또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는 외부 환경 문제에 두려움을 느낀다.
교회 월세가 올라가든지, 교회를 이전해야 하는 등의 문제들이 불안해 지는 것이다. 건강한 교회를 위해 꿈꾸고 날마다 기도하지만, 목회자의 마음 속에 자신을 향한 비난, 상대방을 향한 비판, 그리고 외부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해지는 이유는 바로 건강한 교회라는 꿈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우상숭배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두면 교회가 좀 건강해지지 않아도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으로 알고, 또 교회가 건강해지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렇듯 우상숭배가 위험한 이유는 죄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선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죄가 아닌 선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탕부 하나님>에서 돌아온 동생에 대해 분노하는 첫째 아들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눅 15:29)”이라고 고백한다. ‘여러 해’는 많은 시간을 의미하고, 그는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는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선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도덕적 삶을 통해 아버지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우상숭배를 한 것이다.
“그가 아버지에게 그토록 노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는 집안의 옷이며 반지며 가축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자신의 의견을 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사람들도 대개 아주 도덕적으로 살지만 그들의 목표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그분을 통제하고, 자기네 생각대로 그분께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 당신도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통제하려 든다면 당신의 모든 도덕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팀 켈러, 윤종석 역, <탕부 하나님>, 두란노, 71쪽).”
이렇듯 우상숭배는 우리의 삶으로 가짜 신을 섬기지만 입술의 고백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걱정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가장 큰 위험성이다.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상의 노예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 우상(Surface Idols)과 근원적 우상(Deep Idols)
우상 발견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부분 때문
근원적 우상, 눈에 잘 띄지 않아
돈? 우월감, 통제력, 안정 문제도
팀 켈러는 우리 안에서 우상을 발견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에 대해 우상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과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이 아닌, 내면의 뿌리까지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자기 내면 안에 있는 우상을 발견할 때, 돈, 성공, 사랑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상숭배의 심리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표면적 우상’은 더 구체적이고 눈에 잘 띄지만, 숨겨진 마음 속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근원적 우상’이 도사리고 있다.
돈을 사랑하는 표면적 우상도 근원적으로는 돈을 통해 인정을 원하는 우월감이 내면에 작용할 수도 있고, 돈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도 있다. 또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느끼는 안정감이 우상이 되기도 한다. 같은 돈이라는 표면으로 드러나지만 통제, 안정, 우월감 등 다양한 근원적 우상이 존재할 수 있다(팀 켈러, <탕부 하나님>, 116쪽).
근원적 우상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늘 피상적인 우상만을 다룰 위험이 있다. 팀 켈러는 ‘제임스’라는 한 목회자의 이야기를 통해 근원적 우상의 위험성을 설명한다.
제임스는 예수님을 믿기 전 여색을 밝히기로 유명했고, 매번 여자를 유혹해 잠자리를 갖고 나면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성적 일탈을 끊고 기독교 사역에 매진했지만, 근원적 우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업이나 토론 때마다 그는 논쟁을 일삼으며 이기려 했고, 자신이 회장이 아닌 모임에서도 늘 회장 행세를 하려 했다. 자신의 새로운 신앙 주제로 대화할 때도 회의론자들을 거칠게 해서 마찰을 일으켰다.
“결국 그의 의미와 가치는 그리스도께 옮겨진 게 아니라, 여전히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기초해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런 권력을 통해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제임스가 여러 여자들과 잠자리를 한 것은 그들에게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동참할 수 있다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권력만 얻으면 여자는 더 이상 흥밋거리가 못 되었다. 기독교 사역도 사람을 섬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권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권력의 우상이 성적인 형태에서 종교적인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상은 꼭꼭 숨어 있다(팀 켈러, 윤종석 역, <탕부 하나님>, 175쪽).”
◈문화 내러티브 속의 우상
우상, 한 세대 전체에도 영향
18세기 합리주의 시대 거치며
신 역할 예술·이성·문화가 대리
팀 켈러, 문화 속 우상 드러내
팀 켈러는 우상이 단지 개인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영향을 주는 문화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우상은 한 명의 개인의 삶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문화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18세기 합리주의를 거치면서 신이 사라지고, 비록 그 역할을 잘 감당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에 신의 대리 역할로 등장한 것이 바로 예술, 이성, 문화라고 말한다(테리 이글턴, 조은경 역,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알마출판사, 6쪽).
데이비드 폴리슨은 <마음의 우상과 허영의 시장(Idols of the Heart and Vanity Fair)>이라는 논문에서, 우상숭배로 인간을 몰아가는 세 가지 대상이 있다고 말한다. 육신과 세상과 마귀이다.
육신은 인간 안에 있는 욕망을 다루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세상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죄의 문제가 아닌 문화가 주는 영향력이다.
‘허영의 시장’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장소를 비유한 것이다. 주인공 크리스천은 사망의 골짜기를 빠져나온 뒤 ‘믿음’을 만났고, 서로의 간증을 나누면서 도착한 곳이 ‘허영의 시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온갖 욕망들을 팔고 있었고, 진리를 찾다가 믿음은 순교하고 크리스천은 감옥에 갇히는 일들을 겪게 된다.
데이비드 폴리슨은 우상이 한 개인의 욕망만이 아니라, 허영의 시장이라는 문화가 주는 영향력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팀 켈러도 데이비드 폴리슨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에서 기독교 상담이 가지는 약점 중 하나가 개인의 죄에만 집중한다는 것이었는데, ‘마음의 우상과 허영의 시장’에 대한 폴리슨의 가르침 덕분에 문화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의 영향력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고,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도 데이비드 폴리슨의 영향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고백했다(참고: https://www.thegospelcoalition.org/article/keller-reflects-powlison)
팀 켈러가 설교와 변증에서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설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문화 속에 있는 우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상은 목상앞에 절하는 원시인을 떠올리지만 … 현대도 동일한 우상을 섬기고 있다. 문화마다 그 문화를 지배하는 우상이 있다. 제사장과 토템과 의식도 있다. 사무실이나 헬스장이나 스튜디오와 경기장 같은 신전에서, 행복한 삶이라는 복을 얻고 액운을 물리치려고 거기서 제사를 드린다. 미모와 권력, 돈과 성취의 신이 바로 우리 개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서 신적 위치를 점한다(팀 켈러, 윤종석 역, <탕부 하나님>, 두란노, 15쪽).”
◈복음으로 우상을 깨뜨려라
마음 속 우상 바꿀 수 있는 것, 오직 그리스도 높이는 복음뿐
죄와 복음 관계, 우상숭배 통한 회개와 그리스도 주인 삶으로
죄인이라는 나쁜 소식 깨닫는 좋은 방식, 우상숭배로 죄 보기
팀 켈러는 <답이 되는 기독교>에서 문화 속에 있는 신념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시대 사람들의 생각 밑에 당연한 듯 깔려 있는 배후 가정도 많다. 문화가 기독교에 관해 우리에게 주입하는 이런 신념들 때문에, 기독교는 점점 더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이런 신념은 보통 논증 과정을 거쳐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연예와 소셜미디어의 이야기와 주제 속에 녹아 들어서는 우리사상을 파고든다. 그러면서 어느새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작업은 상당히 끈질겨서, 많은 기독교 신자의 마음과 생각에서조차 신앙은 점점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다. 아마 처음에는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팀 켈러, 윤종석 역, <답이 되는 기독교>, 두란노, 16쪽).
결국 우리 마음의 우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복음뿐이다. 그 예로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재정 후원을 하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그는 교인들이 재정 사용에 있어 서로 베푸는 관대한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억지로 후원하도록 하지 않는다. 그는 사도로서 명령하여 헌금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명령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며 오히려 그들에게 복음에 관해 생각해 보라고 요구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이 먼저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관대한 은혜에 감동하도록 이끌었다. 즉 그리스도의 관대하심을 통해, 어떻게 그들이 구원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도록 일깨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 역시 관대한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람이 타인에게 관대한 마음을 갖기 어렵게 만드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교만과 염려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쓴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나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얻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바로 교만이다.
또 다른 요인은 염려이다. 만일 자신의 재물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면, 자기 스스로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못할 수 있다는 태도이다.
바울은 사람들이 관대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들의 마음에 있는 문제, 즉 교만이나 염려와 같은 내면의 동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그는 이런 내면의 정서에 반응하며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전부 내어주심으로써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복음을 묵상할 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교만이 깨어지고 우리가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복음을 묵상하면 염려가 사라지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의 가장 강력한 존재가 우릴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무엇을 염려하겠는가(팀 켈러, 스티브 엄 엮음, <복음만이 모든 것을 바꾼다>, 두란노, 38쪽).”
바울은 헌금을 이야기하면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상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만약 불쌍한 사람들의 영상을 보고 헌금을 했다면, 그것은 감정(emotion) 변화에 불과하다. 몇 달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게 될 가능성이 많고, 자신이 힘들어지면 헌금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참된 변화인 정감(affection)이 변화되려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물질주의’가 깨뜨려져야 한다. 그 물질주의라는 우상이 깨지고 그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심어질 때, 자신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다른 사람을 위해 기쁘게 희생할 수 있는 복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의지적으로 행동을 바꾸려고 하거나, 돈이라는 피상적인 우상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교만과 염려의 문제를 해결할 때 비로소 참된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팀 켈러는 죄와 복음의 관계를 우상숭배를 통한 회개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기 전에 나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죄인되었다는 나쁜 소식을 깨닫게 하는 좋은 방식이 바로 우상숭배의 관점으로 죄를 다루는 것이다.
이것은 행위보다 더 깊은 마음의 동기를 다루어 주며, 또한 죄로 생각하지 않았던 도덕의 탈을 벗게 해준다. 팀 켈러는 <탕부 하나님>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죄 뿐 아니라 우리의 의도 회개하는 사람들이다.”
고상섭 목사
그사랑교회 담임
영남신대·합동신대 졸업
팀 켈러 연구가, CTC코리아 강사
<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