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교회는 과거와는 달리 애통해하는 자들을 보기가 힘들다. 과거에는 예배드리면서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많았다. 지금부터 약 50년 전만 해도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애통해하는 공동체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이었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눈으로 보면서 살아야 했던 때였다. 더군다나 한국전쟁 이후 우리 상황은 지금의 아프리카를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그런 형극의 길을 걸으면서, 교회에 모이는 우리 선조들은 눈만 감았다 하면 울었다. 자기 죄를 놓고 통곡하고, 예수 안 믿는 식구들을 위해서 통곡하고, 나라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뿌리며 기도했다.
마룻바닥 여기저기에 눈물 자국이 너무 진하게 박혀서 걸레로 닦아도 닦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로 기도했다. 이렇게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 또한 대단히 컸다. 울어 보지 아니한 사람은 도무지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위로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래서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자 하는 자들이 많이 나왔고, 주의 종이 존경을 받던 시절이었다.
물론 우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은 아니다. 그렇지만 눈물이 메마른 교회보다 애통해하는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훨씬 더 은혜의 세계를 깊이 안다. 예수님도 첫 사역을 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하셨다. 우리 모두 회개 운동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설동욱 목사(다산 예정교회 담임, 목회자사모신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