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둘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사랑은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이지요.”
지난 수요오전예배를 마치고 평신도사역개발원 간사들과 함께 산행을 하며 숲속의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냥 교회 소예배실에서 모임을 할 수도 있지만, 숲길을 함께 걷고 대화를 하며 더 깊은 소통과 공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에 오르자 푸른 나뭇잎들 사이로 진한 밤꽃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늘 저녁에 산행을 하는데, 그날은 낮에 평개원 간사들과 소통하는 사역도 하면서 산행을 할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에 밤꽃 향기보다 더 진한 소통과 공감의 향기가 불어왔습니다.
불곡산과 대지산 사이 깊은 숲에서 나무 벤치에 앉아 평개원 원장인 이경희 전도사 인도로 간사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양육 사역을 하면서 힘든 일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그 힘듬을 극복했는지, 보람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간사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은혜와 감격에 목이 메여 말을 못 잇는 것입니다. 저의 눈에는 그들의 뜨거운 눈물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었고 떨리는 숨결이 감사와 찬양의 노래였습니다. 눈물이 쏟아져 말을 못 하겠다고 하는 분들을 보며 제 마음도 울컥하였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성도들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게 보실까.”
어느 누가 사명을 감당하면서 힘들지 않겠습니까? 모두 다 사명을 감당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사명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아니, 사명이 아니었으면 살지 못했을 거라고 하면서 ‘사명은 생명’이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저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 뿐만 아니라 여러 공적 사역을 하다 보면 정말 절망하고 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주일 설교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금요 철야기도 같은 경우는 가끔 쉬고 싶을 때도 있고, 목양칼럼도 예전에 쓴 글을 재탕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 사명을 붙잡고 다시 설교를 준비하고 글을 쓰며 사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숲속의 대화를 하는데 정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끝 무렵에 “앞으로 내가 어떤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지, 나에게 바라는 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지금보다 더 잘하실 수 없습니다. 건강만 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은퇴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무조건 목사님을 따릅니다. 몇 살이 되었건 목사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태완 작가의 “사랑은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이다”라는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너무 좋아서, 너무 닮고 싶어서, 너무 소중해서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들꽃들, 올라갈 때 맡지 못했던 밤꽃 향기가 더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꽃보다도, 그 어느 향기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 평개원 간사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모두 다 하나님 앞에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고 있는 간사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이야 말로 새에덴의 핵심 원동력이요 보배들과 같은 사역자들이었습니다.
대화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높음이 아니라 깊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깊음이 아니라 높음을 추구하니까 서로 싸우고 분열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 평신도 양육 간사들은 언제까지나 높음이 아니라 깊음을 추구하며 각자의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모델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평신도사역개발원 간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중국 시인 쉬즈모의 표현처럼 ‘고개 숙인 온화함’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그날 그리스도 안에서 나눈 밤꽃보다 더 짙은 소통과 공감의 향기는 계절이 지나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