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옳은 선택의 기준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 의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 10:2-3)”.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두 사도를 선택하셨습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 즉 ‘대리자’라는 뜻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보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선택한 것은, 열두 지파를 본떠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란 자기중심적 삶을 버리고 하나님을 생활의 구심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크리스천들이 남에게 더 많이 베풀기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하셨듯, 성도 역시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순간적인 분위기나 기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저희를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의아해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려 쳐다보셨을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노력이나 수양에 의해서가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어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중심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의 생활은 접어둔 채,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처신하는 자기 복음적으로 신앙생활에 젖어 있으면서, 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고 습관적으로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필자가 항공회사에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같이 근무하던 선배는 담당한 항공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검사는 물론, 정비 및 제작하는 가운데 외국 해당 항공기 제작사로부터 국내 최초로 교육을 이수하며 나름대로 많은 경험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해당 항공기를 구입하는 국내 대기업에서 항공정비사를 선발하는 면접 과정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면접 중 좀 이상한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면접관 뒤에 앉아있는 분이 있었는데, 점술가였다고 합니다. 사람을 선택하는데 해박한 지식이나 성품, 경력 등을 보지 않고 외모로 평가한 것입니다. 그 선배는 해당 회사에 입사하지 못하고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그 선배는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많은 직원들까지 아까운 인재라고 하는데,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점술가에 의해 입사 여부가 결정되는 것을 보면서, 서운한 마음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 회사에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인간은 자기 기준과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늘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고, 실패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신세한탄은 물론 극단적 선택까지 하기도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왜 저런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이 일반적 기준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무식한 어부들이었고, 소문이 좋지 못한 세리 마태도 있었으며,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던 열혈당원 시몬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런 사람들을 뽑으셨을까요?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은 주님의 뜻을 삶의 가장 앞자리에 두는 사람, 그리고 우선순위로 먼저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뽑으신 그들을 가까이에 두셨고, 그들에게 권한과 사명을 주시며 길 잃은 양들을 향해 열방으로 파견하셨습니다.
제자로 선발된 각자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소중한 이들로서, 맡은 바 사명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습니다. 실상 그들 대부분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죽기까지 주님의 뜻에 충실했으며, 자신이 부족할수록 주님께 더 의탁하고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는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옳았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생각대로 제자들이 선발됐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 주님을 따르려던 이들은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 모두 다 떠났을 것이고, 복음은 선포되지 못한 채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 각자를 통해서도 지속됩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을 보면, 주님 밭의 일꾼으로서 부르심을 받는 이들은 많지만 자신의 기준에 따라 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이유로 잘 응답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다양한 자리에서 기꺼이 응답하는 교회의 일꾼들에 대해서는, 일부 성도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함으로써 결국 어떤 이는 교회를 떠나고 양들이 흩어지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오래도록 교회를 섬겨왔던 담임목사 은퇴할 때마다 불거지는 청빙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많은 교회들이 정상적 청빙이 아닌, 몇몇 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청빙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금 신학교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에는 부목사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청빙은 어디까지나 공개 채용으로, 공정과 정의와 상식이 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집 요강을 보면 요구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목회에 필요한 것 외에는 모집 요강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특히 추천에 의한 청빙은 옳지 않으므로 배제해야 합니다. 청빙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목사 안수를 받은 이들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물론 신앙의 선배들과 유명한 신학자, 부흥사의 추천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오히려 그 방법이 독이 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추천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잘 대접하고 마음에 쏙 들게 하는 후배 목사를 추천할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분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추천자는 가까이에 있는 목회자를 추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바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좋은 예로 부산 ㄷ교회는 담임목사를 두 번 청빙하다 낭패를 겪어 교인들이 수백 명이 떠나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성도들 간에 갖은 욕설과 패싸움으로 얼룩진 모습은 비신자들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주는 사례로, 이제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망동입니다.
추천을 받아 청빙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번거로움을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믿을 만하고 존경하는 분의 추천이므로 모양새가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신앙 선배들로부터 세 사람 정도를 추천받고, 날짜를 선택해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한 다음 교인들 투표로 결정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들러리로 내세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사람을 이미 선정해 놓고, 교인들 보기에 그럴싸한 모양새만 갖추는 경우가 태반인 것입니다. 목소리가 좋은 목회자, 청빙 설교 시 모든 것을 동원해 설교를 잘 해서 성도들의 환심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청빙 시 유의할 점도 많습니다. 대개 짧은 기간에 청빙을 끝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적어도 퇴임 3년 전부터는 청빙을 시작해 퇴임 3개월 전에는 완료해야 합니다. 그렇게 퇴임자나 청빙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퇴임과 이임을 잘 마무리하면 교회는 보다 은혜롭고 주님의 명령인 복음 사업을 더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목사님들에게도 담임목사 청빙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오히려 부목사님들은 해당 교회에서 이미 검증되어 성도들의 신앙 문제를 비롯해 가정, 직장, 사업 등의 문제를 잘 알고 있고 교회의 형편, 정서, 문화도 상세하게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 안전한 청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장 통합 총회 헌법 제5장 제27조 목사의 칭호 ‘3)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다. 임기는 1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 단,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바로 승계할 수 없고 해 교회 사임 후 2년 이상 경과 후 해 교회 위임(담임)목사로 시무할 수 있다’도 수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청빙 시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은 가슴이 따뜻하고 온유한 목회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는 성도들을 차별하지 않고, 어떤 돈이나 권력과 명예 앞에 자유로워야 하며, 교회를 섬기는데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줄 아는 사명자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고집이나 아집이 있는 분은 당연히 제외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고집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정직하지 못하고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분은 배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품격이나 인품,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도와주는 섬세한 충고와 판단력이 겸비되는 목회자를 청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예수님의 부르심과 선발 기준이 우리에게 기억되고 존중되며 구현되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나부터 기쁘게 응답하는 삶이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