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칼럼] 전쟁과 평화론의 3가지 유형 (3)
로마 제국 종교 자리잡은 기독교
병역거부나 전쟁 반대 이유 없어
제국과 전쟁 승리 기도할 수밖에
무엇이 정당 전쟁인가 중요 논점
평화주의 전통, 정당전쟁론 대치
정당한 전쟁 제시해 전쟁 제한해
2. 정당 전쟁론(Just War)
전쟁이 좋지 않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전쟁보다 나쁜 대안은 없다는 점에도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전쟁은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이사야 2장 4절,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는 상황은 지상에서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그러기에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인류가 소멸되기 전까지는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기독교 사상가들조차 어떤 전쟁도 반대하는 절대 평화주의 대신 의로운 전쟁론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도덕적으로 양심의 가책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전쟁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편 가장 앞선 인물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Cicero, B.C. 106-43)였다. 그는 다음의 몇 가지 경우를 정당한 전쟁이라고 판단했다.
① 전쟁에 참여할 유일한 정당성은 국가의 명예나 안전을 지키는 것이고
② 모든 협상이 실패했을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며
③ 상대에게 적절한 경고를 하기 위해 반드시 전쟁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어야 하고
④ 그 목적은 정복이나 세력 확장이 아니라 정의로운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⑤ 포로와 항복하는 모든 사람들은 보호되어야 하고
⑥ 합법적인 군인만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 이런 선에서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칼빈, 곧 주류의 기독교회가 이 정당전쟁론을 제시했다. 물론 4세기 이후 곧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I, A.D. 272-337)의 개종(312)과 기독교의 공인(313), 그리고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I)의 기독교 국교화(380, 392), 그 이후 ‘역사적 상황’의 변화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역사적 상황이란 교회가 국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 되고, 국가의 과제를 종교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교회는 로마제국의 방어적 전쟁이든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이든 상관없이 제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그리고 전쟁의 승리를 위해 기도해야 했다.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자 제국의 영토 확장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고, 초기 기독교회가 견지했던 평화주의는 퇴조하고 그 대신 ‘정당전쟁론(正當戰爭論, Just war theory)’이 대두하게 된다.
무죄한 자를 방어하고 부당한 탈취를 회복하여 정의를 보장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전쟁은 정당성을 지니고, 이럴 경우 군 복무와 전쟁 참여는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제는 전쟁 자체가 문제시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의로운 전쟁’이며 무엇이 ‘정당한 전쟁인가’가 중요한 논점이 되었다.
이 이론을 제시한 첫 인물은 앞서 소개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였다. 기독교권에서는 암브로시우스(Ambrosius)를 거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에게 와서 정당전쟁 이론이 체계화되었고, 기독교인의 참전권(參戰權)은 의로운 전쟁론의 지지를 받으며 조직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런 경향은 교회와 국가의 결속으로 볼 수 있는 기독교국가(Christendom)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캄펜하우젠은 “초기 기독교회는 평화주의적이었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교회는 제국을 지켜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고, 교회는 이런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 기독교의 평화주의적 전통은 4세기 이후 ‘정당전쟁론’으로 서서히 대치되기 시작한다.
350년경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00-373)는 “살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일은 합법적이며, 칭송받을 일”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암브로시우스는 “야만인들에 대항하여 고향을 지키고, 가정에서 약자를 방어하고, 약탈자로부터 자국인을 구하는 싸움은 의로운 행위”라고 보았다.
4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평화주의 전통은 더욱 후퇴하고, 전쟁을 허용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392년 이후 기독교가 제국의 유일한 공인된 종교가 되자 교회와 제국은 협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었고, 군 복무나 병역(兵役)을 거부하거나 제국의 이름으로 행하는 전쟁을 반대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 해서 교회가 모든 전쟁을 옹호하게 된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 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문제시함으로서 전쟁을 제한하고자 했다. 핵심은 그 전쟁의 동기나 원인이 정당한가의 문제였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엇이 정당한 전쟁인가를 논한 대표적인 이론가로 대두되었다.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39-397)
주교 전 집정관, 정당전쟁론 지지
제국 군사적 방어, 신앙 수호 일치
야만족 로마 침략, 신앙 모독 여겨
4세기 서방교회 교부였던 암브로시우스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전쟁은 수용될 수 있다고 보는 정당전쟁론을 지지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밀란의 주교가 되기 전 집정관이었던 그는 제국을 군사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신앙의 수호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아리안(Arian)족 등 이교 야만족들이 기독교 세계가 된 로마 제국을 침략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모독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암브로시우스는 제국의 군사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구약 본문을 원용하기도 했다. 즉 블레셋과 다른 이방 족속들에 대항한 이스라엘의 전쟁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증거라고 보았다. 이 점을 야만족에 대항하여 싸우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확대 적용하였다. 암브로시우스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때 정당한 전쟁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았다.
첫째, 전쟁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보호하는 관점에서 허용될 수 있다.
둘째, 수도승이나 성직자들은 전쟁 행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셋째, 전쟁 행위가 정당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정당하게 수행돼야 한다는 말은 전쟁의 의도와 목적, 원인 등이 정당해야 하며, 정당한 권위에 의해 전쟁이 선포되고 정당하게 수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의 원인보다는 전쟁 목적의 정당성을 중시했다. 전쟁이 기독교 제국의 방어가 아니라, 전쟁의 목적은 평화이어야 한다는 것이 암브로시우스의 입장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of Hippo, 354-430)
지상에서 온전한 평화 기대 못해
전쟁 목적 평화 회복, 정의 근거
정당한 원인과 의도, 최후의 수단
전쟁 피해 이상 결과 때만 허용
암브로시우스를 거쳐 아우구스티누스 때 와서 그리스도인의 참전권은 정당전쟁론으로 조직적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는 전쟁을 다른 악과 마찬가지로 인간 죄의 결과로 인식하고 반대했다. 그는 지상에서의 온전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고, 완전한 평화는 적들의 도전이 없는 천국에만 있다고 보아 지상에서의 평화는 비현실적이라고 인식했다.
지상에서의 전쟁은 불가피한데, 문제는 어떻게, 그리고 어떤 경우에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암브로시우스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도 전쟁의 목적은 평화의 회복이어야 하고, 그 평화는 정의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정의가 없이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도 불의가 시정될 수 있다면 최선의 것이지만,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그 전쟁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세 가지 조건을 갖출 때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정당한 원인(just cause)이었다. 선제공격이 아닌 외부의 침략에 의한 불가피한 방어적 전쟁일 경우여야 한다.
둘째는 정당한 의도(just intention)였다. 전쟁의 의도가 복수나 앙갚음 혹은 상대편의 파멸이 아니라, 자행된 악을 제거하고 파괴된 평화를 회복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또 무죄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나 부당하게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한 경우도 의도가 정당하다고 보았다.
셋째, 그 전쟁이 최후의 수단(the last resort)이어야 한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정의에 근거한 평화를 회복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곧 전쟁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경우의 전쟁은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조건 외에도 정당화될 수 있는 전쟁의 규약을 말했다. 첫째로 합법적 권위(lawful authority)를 지닌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포된 전쟁이어야 하고, 둘째로 비전투요원 곧 민간인은 보호받아야 하며, 셋째로 전쟁 중에는 방화, 약탈, 학살 등을 자행해서는 안 되고, 넷째로 수도승이나 성직자들은 전쟁 행위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의 전쟁 규약이었다.
정당전쟁론, 혹은 의로운 전쟁론이라고 할 때도 전쟁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피해야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에도 이상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때만 그 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정당한 전쟁은 승리 가능성(feasibility of victory)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가적 조건으로 제시했다. 전쟁은 불가피하게 인명 피해와 그로 인한 고통을 수반하는데, 이런 희생 이상의 선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굳이 전쟁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였다. 이 점 또한 전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피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의 정당전쟁론은 정당한 조건만 충족시키면 전쟁을 해도 좋다는 의미라기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 그 이상의 선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경우에만 전쟁이 허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당한 조건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가능하면 전쟁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전쟁론은 절대평화주의에서의 분명한 후퇴였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된 후 기독교의 비폭력적, 반전주의적 태도는 416년에 와서 완전히 전위되었다. 황제가 모든 군인들은 기독교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공표한 것이다. 이제 군복무와 기독교 신앙은 아무런 충돌도 일으키지 않게 되었다. 불과 1세기 만에 기독교의 입장이 완전히 변화된 것이다.
이것을 레이든대학 교수였던 헤링(Gerrit Jan Heering, 1879-1955)은 ‘기독교의 타락’이라고 불렀다. 이런 아퀴나스 루터나 칼빈에게로 이어지면서 서구의 주류의 기독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여기서는 루터의 견해에 대해서만 소개하고자 한다. <계속>
이상규 박사
고신대학교 명예교수
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