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마가복음 3:28-30)”.
29절에 나오는 ‘성령의 역사’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죄를 깨닫고 회개케 하는 것입니다. ‘성령 훼방’은 역사를 거역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가 크고 부끄러운 죄를 지었어도, 진실한 회개를 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서기관들은 예수의 사역을 사단의 행위로 정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교훈을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며, 결국은 죄 사함, 즉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제 2023년도 절반이 넘었습니다. 흐르는 세월 앞에, 하나님 나라가 그만큼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도 세상의 이치에 줄을 서며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종교인들을 볼 때, 참으로 답답하고 심지어 애처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대화할 때, 그 사람의 직업을 그 사람 자체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이 담당하는 일이나 인격, 삶의 질과 따로 분리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오해와 갈등으로 상처를 주곤 합니다.
인간은 일과 직분을 통해 생명과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상과 관계 맺고 살기에, 그 사람의 직업이나 취미, 적성, 특기들을 살리려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리고 ‘진로 선택’이란 인생의 의미를 선택, 몰입하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기회들은 대개 젊은 시절 주어지고, 특히 학창 시절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도전의 문은 열려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여정이 달라지기에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온갖 훈수와 충고를 많이 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저성장 시대 지금 젊은이들은 예전보다 더 오래, 더 치열한 삶을 살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요? 사실 직업이 자신에게 전혀 맞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각자의 고유성과 특별함은 부정한 채 똑 같은 꿈과 진로와 목표를 정해 깃발을 먼저 차지하려 할 뿐입니다.
부모와 이웃들은 모두 함께 남들이 다 좋아하는 직업을 자녀가 갖기를 바라고 원하지만, 이러한 기성세대의 가치관 때문에 패배의식과 무기력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은 아닐까요? ‘은둔형 외톨이, 게임중독’ 등으로 젊은이들을 걱정하지만, 이는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부모의 탓이자 사회의 잘못된 구조와 편견 탓은 아닐까요?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소리, 어릴 적 좋아하고 호기심에 더 끌렸던 행복했던 것들에 귀 기울이며 무한한 잠재력과 적성을 발견하고자 애쓰면서 자기만의 ‘걸음’으로 정진해 나가는데 있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많이 실패하리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시도란 늘 실패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란 다른 말로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연속되는 실패에 혹 의기소침해져도, 실패를 지금 자신의 상태와 함께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로 여긴다면 성공을 이끌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로마 제국 관원들이 자신을 없애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쳐 실망과 낙심, 슬픔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려 로마로 간다”고 답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제자들을 만나, 주님께서 주신 영광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오늘 베드로의 이 모습이 신앙인들에게 주는 교훈은 실로 클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입니다. 하지만 그 죄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는 신실한 회개의 눈물이야말로,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모습은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주님의 뜻이자, 바른 신앙인의 모범답안이 아닐까요?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가룟 유다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하나님께 진심 어린 회개를 피하고 오롯이 세상 양심에 젖어 교회 안에서 스스로 분쟁의 씨를 뿌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뜻과 전혀 무관하게 비신자들도 하지 않는 일들을 마구 저지르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을 볼 때,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깊은 아픔만이 마음 한 부분을 메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소수 당회원이 모든 당회원을 장악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담임목사를 쫓아내는 일과 당회원끼리 권력 다툼으로 당회원이 사임하고 담임목사가 쫓겨나는 초유의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는 현 시대를 바라보며, 주님의 뜻이라는 착각 속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리의 소굴로 만드는 무리들이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장로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 교회의 택함을 받고 치리 회원이 되어 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 심령들의 관계를 살피며, 교인들이 교리를 오해하거나 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도록 권면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당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망각한 채 자기도취 속에 주님의 교회를 개인의 소유물 혹은 권력으로 장악하는 장로들이 있으니 참으로 애가 마르기도 합니다.
그런 분은 교회 지도자로 나서지 말고, 차라리 세상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좀 크다고 자랑하는 교회에는 은퇴장로실과 원로장로실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아성을 만들고 남은 권력을 누리는 참으로 못된 행사가 이뤄지고 있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성도들을 위해, 온유하고 화목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염려하고 걱정하며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모습은 없고, 그저 편을 만들어 교회를 비판하거나 담임목사의 설교와 행동거지를 비판하며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은퇴자들을 보노라면, 또 다시 주님을 로마로 보내려 하시는 게 아닐까요?
특히 잘못된 당회 회의 문화는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리고 항존직 선출 과정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인기투표도 아니고, 그저 교회와 성도들 보는 앞에서 자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표를 많이 얻기 쉬우므로 시급히 개선돼야 합니다. 투표 역시 1차로 끝내고, 억지로 장로 인원 수를 채우는 문화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깊은 신앙과 품성, 인격과 정직으로 이웃을 배려하고, 성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분을 장로로 선택해야 하는데, 밥이나 잘 사주고 교회 보험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잘 해결해 주는 사람을 선택하여 장로로 세우면, 반드시 그 장로는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전혀 도움이 되질 않을 것입니다. 장로 선택은 깊은 기도와 찬송을 통해 이뤄야 합니다.
특히 여성 장로와 목사를 허락하지 않는 교단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총회법에서는 여성 장로를 허락하고 있음에도 허락하지 않는 산하 교회도 있다 하니 심히 우려가 됩니다. 여성 장로가 있으면 당회 분위기가 살고, 특히 인기 발언을 하지 않으며, 심한 언어폭력도 근절되고, 여성들 의견을 반영할 수 있기에 반드시 여성 장로가 선택해 시대를 앞서가는 당회 문화를 만들어,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장로님들은 성도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심지어 비신자들에게도 무한 존경을 받으면서 그 시대 교회는 존경과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갈수록 신앙인들의 믿음의 질서가 무너져, 시대가 갈수록 사악해진 것은 크리스천들의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 시대는 세상을 앞서가며 선한 영향력으로 교육을 통해 그리고 많은 복음이 전해졌지만, 현 시대는 비신앙인들보다 더 악한 행동을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자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므로, 주님께서 또 다시 십자가 형틀에 달려 돌아가시려 로마로 가시는 게 아닌가 심히 두렵기도 합니다.
이제 바른 신앙인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다시 세울 지도자를 잘 선택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권력과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목사와 장로가 있다면, 속히 회개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때는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타작마당에서 타작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을 다시 전환해 초대교회 본모습으로 돌아오는 참 바른 신앙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다 보니, 교회를 교회답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 군림하지 않으셨습니다, 교만하지도, 자신을 나타내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사셨던 무결한 분임을 깨닫고, 우리도 그 모습을 닮아가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 삶을 배워봅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주리신 후 마귀로부터 시험당하시고 승리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면서 공생애를 시작하셔서 많은 이적을 베푸시며, 주리고 목마른 자, 병마에 지쳐 쓰러진 자들과 억눌린 자들을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때로는 완악한 자들을 훈계하시며, 일점일획도 소홀함 없이 이 세상에서의 사명을 질서 있게 감당하시고 하늘나라로 승천하시기까지를 하나하나 짚어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형틀에 내어놓으시기까지 “다 이루었다”고 외치는 주님의 음성을 고요하게 묵상하며 실천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