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단자들 24] 롤라드 신앙운동 (3)
최종 권위, 로마 교회 아닌 성경에
성경 권위 확고한 신념 심고 확산
성경만이 기독교적 실천 기초 제공
3. 성경 사랑
롤라드 신앙운동의 최대 기여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대중에게 심어주고 확산시킨 것이다. 신앙과 행위의 최고 권위가 성경이라는 신념을 대중화했다. 종교의 최고 ‘권위’가 교황 또는 로마 교회의 조직과 전통에 있지 않으며, 성경이 최종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도록 하는데 이바지했다.
종교의 최고 권위가 로마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롤라드 신앙운동의 신학적 기초였다. 성경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롤라드인들을 움직였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품을 배우고, 영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물질만능주의, 종교적 교만, 교회라는 조직이 고안해 낸 종교 의식들과 강압적 지배권은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제자들의 삶과 불일치하며,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롤라드 신앙운동의 신학은 성경만이 적합한 기독교적 실천의 기초를 제공한다고 확신했다.
“만일 우리가 믿음이나 하나님의 법의 이성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며, 우리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우리가 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기 때문에 우리를 신뢰한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에게 저주가 있을 지어다.”
저명한 영국 감독 레지날드 피콕은 롤라드인들을 당대의 가장 큰 대적(大敵)으로 여긴 성직자 가운데 한 명이다. 롤라드 신앙운동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남자만 아니라 감히 여자도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또 겸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교회와 성직자가 지녀야 할 이성적 논증이나 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근거로 삼는다고 비판했다. 이 맥락에서 레지날드 피콕은 성경의 권위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신약성경에 토대를 두지 않고서는 기독인들을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묶어두는 어떠한 법령도 존재하지 않는다. … 성경을 참되게 이해하려는 열망을 가진 심령이 가난한 기독인 남녀는 누구든지 그것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 그 남녀가 언제 읽든지 간에 그리고 그 남녀가 더욱 겸손해지면 질수록, 더 빨리 성경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중략) 성경적 이해를 찾는 사람은 언제든지, … 그 남녀는 어떤 성직자가 어떤 종류의 이성 또는 성경의 증거, 특히 이성의 증거로 만든 모든 논증이나 증명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서 돌이켜야 하며, 듣고, 읽고, 이해하기를 멈추어야 한다.”
위클리프 사상 반영, 화체설 거부
면죄부 판매와 유통도 강력 비판
성인에게 기도 올리는 행위 거부
4. 외침
롤라드 신앙운동이 남긴 저작물들은 당시 교회의 성찬론과 윤리적 결함을 맹렬히 공격한다. 롤라드인들은 화체설을 거부했다. 화체설 거부는 위클리프의 사상을 반영한 가장 뚜렷한 흔적이다.
“성찬의 빵은 성질상 진짜 빵이다. 물질을 먹지만, 이것은 상징적인 하나님의 몸이다. … 성체는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먹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성품에 속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물질적으로 먹을 수는 없다”고 했다.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 그것은 형이상학적 미묘함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광화문 대로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볼 때 그것의 소재가 나무, 철, 구리인지 또 다른 것인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타내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체설을 거부한 어느 롤라드인은 떡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환되지 않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그것들을 꿀과 함께 삼켰다고 한다. 후대 롤라드인들은 성찬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것일 뿐이라 주장하고, 그 예식을 행할 때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실재를 부정했다.
롤라드인들은 나머지 성례들도 성경에 비추어 비평적으로 이해했다. 유아세례 필요성, 성직자 결혼 가능성, 평신도가 고백을 듣고 죄를 사하는 일의 합법성 여부를 논의했다. 성경이 당시 교회가 규제하고 시행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한다고 생각했다. 성경을 자국어로 읽고 스스로 생각한 결과이다.
롤라드 사람들은 면죄부 판매와 유통을 비판했다. 당시 성직자들은 교회의 물질적 비용을 감당하려고, 사죄 대가로 돈을 받았다. 롤라드인들은 이 사안과 관련하여 교황을 비난했다.
“면죄부를 팔아 교회의 재정을 채우는 일은 백성들을 속이고 조롱하는 짓 아닌가. 연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영혼들을 즉각 구해내지 않고서도 교황이 자비로운 지도자일 수 있는가. 어떻게 애원하는 영혼들의 탄원을 외면한단 말인가.” 면죄부에 대한 롤라드인들의 비평적 논증에서 우리는 16세기 인물 마르틴 루터를 만날 수 있다.
롤라드인들은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는 종교 행위를 거부했다. 성인들의 성스러움과 기도의 효력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성인들의 그림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겼고, 로마 교회가 소중히 여기며 신성시하던 성인들의 유골과 유물을 파괴했다.
성상파괴주의가 부활한 듯했다. 위클리프가 점화시킨 교회개혁의 불은 롤라드 신앙운동을 거치면서 영국 국교회의 비성경적 관습들을 하나씩 불태워나갔다.
롤라드인들은 라틴어 기도에 반감을 가졌다. 그들에게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단순한 나열은 무가치한 종교 의식에 지나지 않았다. 삶이 수반되는 믿음의 행위가 효과적인 기도다. 성지순례는 향락과 유흥 행위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이 참다운 순례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롤라드인들은 교회를 택자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가시적 조직체를 교회로 여기는 기존 교회관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 교회의 참된 구성원은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말한 위클리프의 주장을 따르는 롤라드인들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자들도 있었다.
교회 구성원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들, 참된 기독인 남녀, 그리스도가 피 흘려준 의로운 사람들의 회중”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위클리프의 교회 정의를 확대 해석하여, 교회와 세속 권력을 동일시하는 자들을 배교자로 여겼다. “수많은 제후들과 고위 주교들과 그들 아래의 직위를 지닌 자들은 … 배교자이다. 교회는 참된 신앙과 믿음의 고백을 인정하는 사람들 위에 서 있다”고 했다.
도덕적으로 순결한 사제만이 양 무리에게 성례를 베풀 수 있는가? 롤라드인들은 세속적 재산을 소유하거나 죄를 짓는 성직자는 영적 봉사 사역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교회는 온전하지 않은 성직자도 성례를 온전히 시행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인간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이 성례를 제정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어거스틴은 성례의 효력이 그것을 집행하는 성직자 개인의 성결성에 달려 있지 않다고 했다. 위클리프와 롤라드인들의 발상에는 성례의 효력을 성직자 개인의 거룩성에서 찾으려 한 도나투스주의가 희미하게 엿보인다.
위클리프는 도나투스주의를 배격했고, 성례를 거행하는 성직자의 타락을 질타했다. 성례의 효력은 그것을 집행하는 성직자 개인의 거룩함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주장이 성직자의 타락을 조장하거나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억제하는 구실로 이용되는 것은 잘못이다. 도나투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논의가 요청된다.
롤라드인들의 저작물들에는 당시 교회의 상태에 대한 위클리프의 거친 비판이 담겨 있다. 정치 권력을 획득하려는 교황의 노력에 대한 반감과 교회의 위계질서에 대한 위클리프의 규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가장 높은 영적 지도자는 그리스도의 법을 체현(體現)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매고 푸는 권세를 주신 것은 착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함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계승자라면 착하고 거룩해야 한다. 베드로와 같지 않은 성직자들에게 권세를 주실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롤라드인들은 교회에 대한 정의로운 군주의 개입, 곧 정치 권력자의 교회개혁을 촉구했다. 군주가 교회 개혁을 자신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는 것은 위클리프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는 군주에게 국가 비상시기에 교회당을 부수고 거기서 나온 돌들로 요새를 만들라고 충고했다.
어느 롤라드인은 예배가 “일반적으로 하늘 아래 공기 속에서 더 잘 드려진다. 다만 종종 비가 올 경우에는 교회 건물이 좋다”고 빈정거렸다. 후대의 몇몇 롤라드인들은 위클리프의 교회 개혁 열정을 훨씬 능가하는 주장을 펼쳤다. “만일 국왕이 교회에게서 부(富)을 박탈하는데 무능하면, 다음에는 일반 백성이 그 의무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최덕성 지음, <위대한 이단자들: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7장 2부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