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곧 하나님 나라는 ‘반피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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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칼럼] ‘반피(하동 방언)’를 아십니까?

▲하동 고전교회당.

▲하동 고전교회당.

페이스북 친구 정주영 님이 ‘반피’라는 제목의 담벼락 글을 7월 21일 올렸다. 순식간에 댓글 60개 달렸다. 81개의 ‘좋아요’가 표시되었다.

정주영은 김해 어느 재활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계시다. 김해에 거주한다. 가야대학교 객원교수로 가르친다. 기독교 신자이다. 그가 담벼락에 올린 글은 다음과 같다.

“얼마 전 (재활보호센터에) 입소하신 하동에서 오신 어르신의 발음이 어눌해서 잘 못 알아듣는 저에게 뭐 뭐라고 하시곤 아주 크고 유쾌하게 웃으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 말도 못 알아들어, 직원을 불러서 통역을 시켰더니 반피랍니다.

반피라고요? 어르신 반피가 뭐에요? 난 정말 몰라서 물었어요. 또 막 웃으셨어요. 저는 어르신의 통쾌한 듯한 웃음에 너무 행복했네요. 그리고 어르신께 말했어요. 난 반피라도 어르신 아들 세 분과 딸 이름을 다 안다고 했더니 우째 알았냐 하시네요. 반피라서 알지요 했더니 또 웃으신다.ㅎㅎ 여러분은 반피를 아시나요? (반피 센터장의 일상입니다.)”

위 글에 달린 댓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얼굴 싸이즈가 작은 미인?” “모지랭이, 반등신, 반편(半片)의 사투리 발음 곧 반쪼가리라는 뜻, 반대말은 온편.” “반피를 모르면 갱상도 사람 아닌디?” “느낌상 ‘좀 모자란다’ 뭐 그런 뜻,” “아마 약삭빠르거나 계산적이지 않다는 뜻에서 쓰신 듯, 인간답다는 또 다른 칭찬의 반어법 같네요.” “축구 등신과 같은 뜻. 일종의 병신이라는 뜻과 같지요”.

나는 위 담벼락 글에 다음의 댓글을 달았다.
“하동 표준어 ‘반피’는 ‘반핑이, 반편이, 반푼이’의 줄임말입니다. 바보를 뜻합니다. 서울 방언으로는 ‘멍청이,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서투른 재주를 믿고 함부로 일을 벌이다가는 도리어 일을 망치는 사람을 뜻합니다. 울 어머니는 날보고 ‘반피, 반핑이’라고 자주 놀려댔습니다.

‘반피’는 반쪽으로 치우친 사람을 뜻하는 일본말 반편(半偏)과 흡사합니다. 그리고 어지간한 지식이 있기는 하지만 완전하지 못한 서투른 풍수쟁이가 명당이라고 잡아준 자리가 도리어 좋지 않아서 집안과 후손이 망할 수도 있다는 데서 온 말일 수 있습니다.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말과도 연관 있어 보입니다. 하…, 정다운 하동 표준어를 접하니 고향 생각이 뭉클 납니다.”

‘반피’는 하동 표준어이다. 나는 하동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자라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나는 여러 개의 언어를 습득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히브리어, 헬라어, 에스페란토어를 배웠다. 두 개의 방언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리고 하동 사람들이 사용하는 하동 표준말도 알아듣는다.

‘살팍, 통시, 말캉다가 무슨 뜻인가? 그라몬, 그라모, 하모, 을매나, 주헤비파갓고, 가가가가가가, 안그렁가배예, 좝사보이소, 맞지예, 아이가, 개한헌까싶다, 햇겁다, 어째시까, 둔디를 모리것내, 니도안다아이가, 해사타가, 칭구핵교대이기, 오새본깨내리떤디, 아즉꺼정비싸, 봄매이로, 무서버서먼디대이것나, 핵교대일때따악, 좀무삐따’ 등, 수없이 많다. 하동 표준어 사전이 만들어져 있을 법하다.

히동은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과 그 산허리를 감싸며 흘러가는 섬진강 동쪽 강변에 위치한 고장이다. 자연의 힘찬 생명력이 어우러져 장관을 펼치는 곳이다. 색깔∙느낌∙맛∙향기∙박진감 있는 이야기∙억양 등이 방문자들을 반긴다. 황금빛 들판과 언제보아도 반겨주는 강과 푸른 산이 주는 풍요로운 먹거리 그리고 볼거리로 가득하다. 하동은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

하동은 무인 정기룡 장군, 국무총리 김석수와 정홍원 등 정치가들이 자란 곳이다. 최재건, 최덕성, 최재율, 최재호, 하재성 등 신학자들이 자라고 신앙과 학문의 기초를 쌓은 곳이다. 가재잡고, 참새잡고, 물고기 잡고, 소몰고 다니고, 거름지게를 지던 나는 세상이 명문대학교로 알아주는 미국 예일대학교를 졸업했다. 하버드대학교를 다녔고, 나중에는 이 학교의 객원교수이기도 했다. 에모리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박사과정에서도 수학한 적이 있다.

나는 한국, 미국, 영국 그리고 얼마동안 이스라엘에서 공부를 했다. 캐나다,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멕시코, 중국,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거나 한 주간 정도 강의를 해왔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했다. 나의 미적 감각으로 보기에 하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천국 말고는 하동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없다.

하동 포구 입구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구례까지의 강 동편 하동 땅 경관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수려하다. 하동은 천국과 같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피자집, 치킨집, 맥주집이 없으며, 배달 서비스가 없기에 정착하여 살라고 하면 다소 주저되는 천국이다.

하동에는 식물도감에 없는 꽃과 풀도 자란다. 다람쥐가 뛰노는 아흔 아홉 골짜기 지리산, 산허리를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맑고 투명한 섬진강, 어느 곳도 아름답지 않은 땅이 없다. 박경리 「토지」의 무대 최참판 댁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황금들판과 섬진강 줄기와 하얀 모래 언덕은 이 세상에서 내가 본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다.

하동읍 송림공원에는 천 그루가 넘는 소나무숲이 있다. 개미가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송림공원은 하얀 모래밭인 강변 옆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다. 이 숲은 백사청송이라고도 불리며 조선 영조 21년(1745)부터 섬진강변에 식재하기 시작해 260년 넘게 보존되어 온 노송숲이다. 면적은 26,000㎡에 달한다.

천국 도시 하동읍은 나의 사랑하는 연인이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자란 곳이다. 결혼하여 지금까지 45년 동안 동고동락한 아내의 마을이다.

나는 하동군 고전면 고히리 게아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가까이에 있는 금오산에 자주 올랐다. 남해, 삼천포, 여수, 광양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하동군 동쪽에 자리 잡은 이 산은 높이 849m의 상당히 큰 산이다. 말굽 모양의 산릉이 빙 두르고 정상 아래에 달바위라는 전망이 일품인 곳이다. 한동안 군사시설 때문에 정상에 오를 수 없어 등산객의 발길이 뜸했지만, 현재는 산행에 불편함이 없다.

하동은 화개면 십리 벚꽃길로 유명한 고장이기도 하다. 나의 할아버지 최치원 선생이 쓴 진감선사탑비가 있는 사찰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 지어졌다. 하동향교, 청학동 삼성궁, 하동 백련리 새미골 도요지, 사기 가마터도 구경해볼 만한 곳이다.

지리산, 하동 녹차밭, 하동 북천면 코스모스 꽃밭과 메밀밭, 하동읍성,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고전교회당은 모두 아름답다. 고전교회는 1907년 독자적으로 설립됐다. 수많은 목사, 장로, 집사 그리고 여러 명의 신학교수들과 거룩하게 사는 많은 ‘성도들’을 배출했다.

고전교회는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의미심장한 독보적이고 전무후무한 흔적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고 돌본 김상재 장로를 기리는 송덕비가 그것이다. 한민족 전체가 헐벗고 굶주리던 시기 고전교회 초대 장로 김상재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 주었다. 끼니를 잇지 못하는 자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구한말에는 누더기를 걸친 걸인들과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걸식하는 과객들이 많았다. 이 걸식 과객들은 망해 버린 나라의 운명과 빈곤을 탄식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다녔다. 집도 없고 갈 곳도 없는 거지들이었다. 이들은 걸식하면서도 체통과 풍류를 소중하게 생각한 그 시대풍의 걸인들이었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으며, 민담, 야사, 미담, 추문 등도 전달해주었다.

배다리 장날에는 많은 걸식 과객들이 모여들었다. 해가 저물고 배가 고프면 이들은 “여보게 김 참봉 집으로 가세” 하면서 김상재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스도인 장로 김상재는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일일이 보살펴 주었다. 때로는 노자까지 주었다.

포목장사를 하던 그는 광목, 무명베에 솜을 넣어 만든 겨울옷, 여름이면 여름옷을 한 벌씩 만들어 그들에게 입혔다. 그는 열두 칸 대궐에 살던 부자가 아니었다. 남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구제하였던 것이다.

김상재의 집에는 끼니 때마다 두세 명의 ‘객식구’가 있었다. 그의 문전에는 평일에도 걸식 과객, 걸인들이 줄을 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밥상에 앉기 전 대문 앞에 나가 배고픈 행인들이 있는가 확인한 후 식사를 했다.

자신이 굶는 한이 있더라도 배고픈 과객들은 먹이고자 했고, 자기 밥상에 과객들보다 반찬이 한 가지라도 더 많으면 화를 내곤 했다. ‘장 종지기(작은 간장그릇)’ 하나라도 걸식하는 자들과 똑같이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소죽을 끓이면서 따뜻하게 불을 지핀 큼직한 사랑방에 걸식과객들을 쉬게 하고 재웠다.

김상재는 마흔 살에 예수를 믿어 기독교인이 되었고, 일흔 한 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김상재의 추의추식 광제한빈(推衣推食 廣濟寒貧, 입을 것을 주며 먹을 것을 주며 널리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의 삶은 계속되었다. 헐벗고 굶주려 죽어가는 고아 세 명을 데려다 딸로 입적시켜 키워 시집보내는가 하면, 길을 가다 추위에 떠는 걸인들을 보면 입던 옷을 벗어 주었다.

김상재가 추의추식 광제한빈의 삶을 살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김상재는 구중궁궐에 사는 갑부가 아니었다. 그저 남보다 조금 여유가 더 있었을 뿐이다. 김상재의 박애활동은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 시작됐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다. 가훈을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로 정했다.

김상재는 세상의 어떤 보상을 기대하여 구제에 열성을 다한 것이 아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단순히 실천했다. “너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마 6:3-4)”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랐다.

김상재의 추의추식 광제한빈 사랑은 필자가 ‘고전교회 김상재 장로 이야기’를 어느 월간지에 게재하고부터 널리 알려졌다. 기독 신자, 비기독 신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그의 어질고 자비로움을 칭송하였다. “외인들(딤전 3:7)”이 그의 선함을 칭송한 것이다.

장로 김상재에 대한 이 같은 칭송은 이 지역 복음전도화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 고전교회의 지위는 아주 특별하다. 유림과 비기독교 신자들도 교회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풍습은 장로 김상재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병자년(1938) 6월, 그의 추의추식 광제한빈의 사랑에 감동한 걸인, 길손, 걸식 과객들은 정성스럽게 얻어모은 돈으로 그의 은덕을 기리는 송덕비를 세웠다.

▲전참봉김공상재송덕비(前參奉金公相才頌德碑).

▲전참봉김공상재송덕비(前參奉金公相才頌德碑).

걸식 과객들이 돈을 모아 세운 이 비석은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현 비석의 머리 부분은 본래 없었다. 후대에 자녀들이 만들어 씌운 것이다.

이 볼품없는 비석은 그 볼품없는 까닭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볼품 없음은 걸인들이 세웠기 때문이다. 걸인들의 감사의 마음을 담은 김상재 송덕비는 사언구(四言句) 8행 운문체(韻文體) 비명(碑銘)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과 같다.

天生此人 萬有其仁(천생차인 만유기인)
推衣推食 廣濟寒貧(추의추식 광제한빈)
積善之家 歲代興昌(적선지가 세대흥창)
名振四海 萬口誦新(명진사해 만구송신)

하늘이 이 사람을 내시매 만방에 인자함을 베풀었도다.
입을 것을 주며 먹을 것을 주며 널리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였도다.
적선하는 집안 세세대대로 흥창하리라
그 이름이 온 세상에 떨쳐 만인의 칭송이 새로워지리라.

비석 모퉁이에는 “옛부터 아는 자들, 왕래하던 손들이 세웠다”고 적혀있다. 걸인들이 돈을 모아 장로 송덕비를 세운 전례는 교회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비석과 비명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천생차인, 만유기인 김상재, 그는 ‘전 참봉’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기독 신자로서, 자신의 주(Lord)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신행일치(信行一致)를 추구했다. 그는 예수의 제자였다.

김상재는 ‘반피’였다. 배다리, 기아대, 살대미태, 댕밑, 난더리, 삼내, 양보, 진교, 하동을 다니며 활동하던 김상재, 그는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완벽한 ‘반피’였다.

하동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인물은 아마도 ‘반피’ 김상재이리라. 하늘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동 사람이리라. 천국 곧 하늘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는 ‘반피들의 나라’이다. 예수는 ‘반피교’ 교주이다.

예수의 사도 바울은 ‘반피도당’의 괴수이다. “우리가 알아본 결과, 이자는 몹쓸 전염병 같은 놈으로서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이며 나자렛 도당의 괴수입니다(행 24:5, 공동번역)”.

기독교인들은 세상이 보기에 확실한 ‘반피’들이다. ‘반피’가 아니라면 자기 식솔 먹일 것도 부족한 가난한 시절에 어찌 걸인 과객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본단 말인가? 어찌 교회에 상당 몫의 헌금을 하고, 어찌 많은 시간을 내 교회와 이웃을 섬기고, 그렇게 하고서도 욕을 얻어먹고 비난을 감내하기도 한단 말인가?

‘반피’가 아니라면 어찌 신이 인간이 되었다고 믿는단 말인가? 어찌 예수가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었다고 믿는가? 어찌 처녀가 남자 없이 남자아이를 출산했다고 믿는가? 어찌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전 인류의 죄를 대신했다고 말하는가?

어찌 죽은 자가 부활했다고 하는가? 어찌 그가 시간의 끝에 심판자로 올 것이라고 떠드는가? 어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말하는가? 어찌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하는가?

고전교회 출신 성도들은 ‘반피’ 김상재 장로의 모범을 따라 살아왔다. 예수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고 윤리 규범을 존중하고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들은 모두 완벽한 ‘반피들’이다. 진주, 부산, 서울에 사는 하동 출신 ‘반피’들 수가 적지 않다. 부산 지역에는 장로교 노회를 하나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거주한다. 이 ‘반피’들은 도시 교회를 성장시킨 밑거름들이다.

하동 출신인 나는 ‘반피’이다. 나는 ‘반피 복음’을 전하는 ‘반피 신학자’이다. 나는 사람을 ‘반피’로 만드는 자를 훈련시키는 전문가이다. 목사양성에 33년의 세월을 바쳤다. 나에게서 ‘반피 복음’을 배운 목사 약 3천 명이 ‘반피 공동체들’을 섬기고 있다.

나는 현재도 ‘반피’를 양성하는 신학교의 총장이다. 지금은 ‘반피 대학교(BREAD UNIVERSITY)’를 세우고 있다. 조만간 출범할 것이며, 학생 수로 따져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대학교가 되리라 기대한다. 시간, 공간, 국경, 언어의 경계와 장벽을 초월하는 아마존닷컴 개념의 대학교이다. 주로 가난한 나라 젊은이들에게 신학 강의를 무상으로 공급하며, 셀그룹 형태로 공부하게 한다.

내 혈관에는 ‘반피’의 피가 흐른다. ‘반피 DNA’가 흐른다. 주 예수가 십자가에서 보배 피를 흘려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구원해 주었으며, 이제 그를 믿으면 하나님과 연합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

나는 세상이 보기에 확실히 ‘반피’이다. 일생 이렇다할 보상이 없는 ‘반피’ 일을 해 왔다. ‘반피’의 땅 하동에서 자란 탓인지 오뚜기처럼 일어서고, 야성적으로 도전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기질이 강하다.

하동을 찾거든 걸인들이 자진하여 돈을 모아 세운 김상재 장로를 기리는 송덕비를 방문함직 하다. 걸인들이 하동 최고의 ‘반피’를 기념하여 세운 송덕비는 하동과 대한민국과 세계의 역사에 길이 기념될 비석이다.

‘반피’ 아닌 자들이 ‘반피’를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념물이다. 내가 살던 예쁜 동네 게아대 마을 도로변에 있었으나, 지금은 배다리 시장 인근에 있는 고전교회당 뜰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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