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선생님들과 친구들 간에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학생과 친구들에게 “너는 붕어 아이큐냐”란 말을 종종 했습니다. 그 뜻과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남들이 하니까 그냥 사용했습니다. 붕어는 조금 전에 낚싯바늘에 걸렸다가 탈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똑같은 미끼를 물어서 낚시에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필자가 30여 년 전 붕어 아이큐를 경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낚시를 매우 좋아하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집사님의 권유로 평생 처음 낚시를 따라갔습니다. 좌대를 펴고 낚시를 시작했습니다. 옆에 앉아 있는 집사님 낚싯대 찌가 물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낚싯대를 채 올렸습니다. 고기는 딸려오지 않고 낚싯바늘에 고기의 주둥이(뼈)만 떨어져 나왔습니다. 너무 이상했습니다. 집사님께서 “목사님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주둥이가 떨어진 고기를 다시 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워 물속에 던졌습니다. 조금 후 다시 낚싯대 찌가 물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낚시에 딸려온 고기를 보여 줬습니다. “목사님 보세요. 바로 전 주둥이가 떨어진 고기입니다.” 잡혀 올라온 고기는 큰 붕어였습니다. 그 붕어는 바로 전에 주둥이가 떨어진 고기였습니다. 필자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붕어 아이큐”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좋은 교훈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과 붕어 아이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필자에게 레마가 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기독교인이 근심과 염려 속에서 이 땅을 살아갑니다. 필자의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이런 약속의 말씀들이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을 성경공부(신학)와 설교로 수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와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을 전지전능신 분이라고 고백을 하고 말을 합니다. 그런 고백을 하고도 돌아서면 성경 말씀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잘 믿지를 않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이 붕어 아이큐와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그리고 막연히 나는 천국에 갈 그것으로 생각하면서 살다가 이 땅을 떠나게 됩니다. 진실한 신앙생활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결론
필자의 신앙 철학은 이 땅에서 천국을 살다가 천국을 가는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내 안의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이 말씀은 신앙인들에게 소중한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나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인간이 쓴 글과 책은 절대 로고스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저자(인간)가 쓴 글과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를 믿게 되면 그 말씀이 나에게 실체가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만약 당신이 구원을 위해 요한복음 3장 16절과, 하나님 자녀로 생각하는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을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다른 모든 말씀도 그와 동일하게 믿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은 믿고 다른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과 거룩한 삶입니다.
국제국호 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