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읽는 설교 251] 논쟁 격화
본문: 요한복음 8:51-53
논쟁이 더 격화되는 상황입니다. 분위기로 보아 간단한 상황이 아닙니다. 어느 쪽으로든 막바지 상황임이 감지됩니다. 주님이 십자가 죽음을 예견하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다 유대인들의 기세가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분위기에서 주님은 엄청난 선언을 하십니다. “주님을 믿으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역설적 현장입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생명 주관자인가, 과대망상자인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생명의 주관자
주님은 죽더라도 다시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51절)”.
죽은 나사로를 살려 놓고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 연상이 됩니다. 죽은 지 4일이나 지난 나사로를 주님이 살리셨습니다. 그때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 질문을 받은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는 그렇게 살줄을 믿는다”는 교리적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부활을 믿는 고백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핵심은 “주님이 생명의 주관자 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에게도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암시합니다. 주님에게는 육체적인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미 6장 63절에서 주님은 하늘에서 오셨음을 밝히시면서 “살리는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과대망상으로 생각되는 정도입니다. 정말 영생의 주인이라면, 죽음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은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야 하는 영적 세계에 대해 말씀하시는 순간입니다. 주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밝히는 이유입니다.
2. 영원한 세계가 있다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당신이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당신의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52절)”.
대단했던 아브라함도 죽었고, 선지자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하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입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우리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장에 있었다면,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난감했을지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지금은 죽음이 점차 다가오는 분위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아무도 죽음을 피한 사람이 없었다는 근거를 갖고 말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주님이 “귀신이 들렸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귀신이 들리지 않고서야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현대 용어로 풀어서 말하면, 과대망상이라는 말입니다. 과대망상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생각,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다 치고,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이 정말 정신이 이상한 분이었는가, 아니면 정말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신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 후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문제입니다. 주님이 과대 망상자인가, 생명의 주관자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3. 영생이 있음을 믿으라
사람은 육체적인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신가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 하는가요(53절)”.
유대인들은 점차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래서 더 열을 올리면서 주님에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멀쩡한 정신, 정상적인 정신으로 말하는지를 증명해 보라고 주문합니다.
이 부분에서 성경학자들은 유대인들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이 실증하는 것에 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확증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믿음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었고, 예언하던 선지자들도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죽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도대체 당신 자신을 누구로 만들고 있습니까?
당신이 우리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요 갈릴리 사람이요 나사렛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나 모든 선지자보다 큰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당신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지킬 때에 죽음으로부터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유대인들은 도저히 속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문제는 하나입니다. 영생을 믿지 않는 사실입니다. 죽은 후에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4. 정리
사람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죽음 후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믿을 수 있는가입니다. 죽은 후 영원한 생명이 있는가를 믿을 수 있는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가는 인생 길에 영원한 세계, 영원한 생명에 대해 확실하게 믿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생명의 주관이심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는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죽은 후에 영생이 있음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죽은 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믿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