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가을날”.
한 달 전쯤 신델라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국립극장에서 본인이 단독 공연을 하는데 저를 특별히 VVIP로 초청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공연 중에 제가 작사한 노래 ‘주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를 하면서 저를 소개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공연장에는 교계 방송에 관계된 분들, 그리고 교계 주요 인사들이 초청되었을 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이 3분의 2가 넘을 정도인데, 이런 자리에서 목사님 딱 한 분만 소개를 해 드리는 것은 자신에게도 영광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기꺼이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교회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그날 같은 시간에 포은아트홀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새에덴교회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지 않고 딴 곳으로 갔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섭섭해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신델라 공연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입니까? 서울대 음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국립 음악원인 산타체칠리아를 최단기 코스로 마치고 졸업을 한 후, 유명 팝페라가수로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일 점심까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로서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 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집사람이 대신 우리 교회 총여선교회 회장이신 김옥경 권사님과 함께 그쪽으로 간 것입니다.
포은아트홀에서 진행된 청소년 오케스트라도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정말 공연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정중앙 VIP석에서 바라보니까 아이들도 아이지만, 김연정 집사님의 지휘하는 뒷모습이 너무 품격 있고 우아하게 보였습니다.
이윽고 공연이 끝나자, 제가 집사람에게 어땠느냐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 입에서 감탄이 나오는 것입니다. “공연이 너무 훌륭하고 품격 있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이곳에 와서 공연을 봤으면 집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데 많은 영감과 지혜와 착상을 얻었을 것입니다. 대중가요 콘서트와는 또 다른 격과 결이 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신델라 교수님께서 저희 집사람을 일어나라고 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께서 꼭 오시려고 했는데 다른 일이 있어 사모님이 대신 오셨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작사를 소 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소 목사님 대신 사모님께 박수를 쳐 주세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저희 집사람만 소개를 하며 따뜻하게 맞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넓은 공연장이 단 한 자리도 비지 않고 꽉 채워져 있었는데, 후문에 의하면 신델라 교수께서 가장 좋은 자리에 직접 앉아보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저와 집사람에게 내어 줬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몇몇 교계 인사들이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빠서 못 오셨습니까? 오셨으면 완전히 목사님 자리가 될 뻔 했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은 아쉬움이 있는 날이고 또 대견스러운 날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에 갔다는 건 담임목사로서 대견스러운 일이고, 또 신델라 교수 공연에 가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다음날 다른 교회 집회를 갔는데, 그만 모르고 설교 원고를 안 가져가 버렸습니다. 물론 원고 없이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있어야 든든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혹시라도 실수하지 말아야 할텐데…. 그래서 비서실에 그 원고를 찾아서 인터넷으로 보내라 했습니다. 일어나 보니 꿈이었습니다.
물론 다음날은 제가 다른 교회 집회에도 가지 않고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전 예배 때도 외부 강사가 오셨고, 저녁예배 때도 외부 강사가 오셨습니다.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두 분이 오셔서 다 은혜를 끼쳤습니다. 두 분을 모두 베드로 동상까지 배웅했습니다.
그때 교회 직원이 가로수의 낙엽을 쓸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르신, 그 낙엽 안 쓸어내셔도 됩니다. 어차피 오늘 쓸어봤자 내일 또 떨어질 거 아닙니까? 그리고 지나가는 분들이 낙엽 밟는 낭만도 있어야지요.”
저녁까지 아무리 돌아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조그마한 일이라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쓸지 않은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그토록 아쉬웠던 마음과 대견했던 마음이 잘 융합이 되었는지 그날은 그저 낙엽을 밟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그 일 외에도 연말이 다가오고 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이따금씩 꿈속에서 뭔가 강박 같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새 시집을 탈고하고 또 한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잠에서 깨고 나면 아무 일도 없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부디 성도들의 가을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아무 일 없이 좋은 소식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