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11월의 가을 단상”.
지난 목요일 점심에 몇 분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 기관 회장은 아니지만, 어느 기관 정기총회 일로 저를 찾아와 의논을 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저에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는 것입니다. “소 총회장님, 요즘 얼마나 힘드세요. 과거에 소 총회장님이 배려하고 베풀어 주었음에도 그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 보고 있을 텐데요. 어쩌면 소 목사님의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닙니다. 누가 저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고 전화도 했지만, 전혀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 그 뒤로는 전화도 안 받고 그런 문자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일에 신경쓸 여지도 없고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를 세울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교회는 코로나의 상흔이 있고 후유증이 있는데 이 상흔과 후유증의 안개를 뚫고 어떻게 교회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 나갈 것인가. 어떻게 한국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하며 ‘뉴트로 전략, 핵처치(사도행전적 원형교회)’라는 책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도대체 언제 그런 책을 쓰셨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책을 쓸 수 있습니까?” “저는 원래 아침형이 아니라 저녁형이어서 날밤을 새워서 책을 썼지요.” 이런 덕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그들을 교회 정문까지 배웅해드리고 나서, 잠시 거리를 걸었습니다. 얼마 안 남은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내렸습니다. 문득 이런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가을나무 한 그루 / 차가운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 애타는 얼굴로 / 팔을 휘젓고 서 있다 / 햇빛 쏟아지는 / 거리에서 / 바닥에 떨어진 / 나뭇잎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 하나 하나 / 이름을 부르고 있다.”
제가 부총회장에서 총회장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어떤 분이 집요하게 반대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개혁측 출신이 그렇게 쉽게 총회장을 하느냐. 좀 어렵게 총회장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이 어느 노회 소속인가 알아봤더니, 파악한 바에 의하면 21 당회도 갖추지 못한 미조직 노회라는 것입니다. 교회 실사위원회를 맡았던 분이 저에게 그걸 알려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원칙적으로는 총회에 나올 수도 없고 총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제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그분이 알고 먼저 총회에 고소했던 것부터 취하하고 부랴부랴 저의 접견실로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어떤 분이 소 총회장님이 너무 잘나가고 쉽게 총회장이 되는 거 같아 곤경을 선물로 줘야 된다고, 그래야 소 총회장이 날뛰지 않고 겸손하게 될 거라고 저를 뒤에서 컨트롤을 했습니다. 어쩌면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죠.” 그러면서 녹음된 통화 내용을 저한테 들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장 책상을 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선배님,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습니까? 왜 이렇게 나이답지 않은 행동을 하십니까? 그런 걸 들려준다고 제가 들을 사람입니까? 그런 일로 왔으면 어서 가십시오. 저는 그런 거 개의치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에게 교통비까지 줘서 보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행동했던 저를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를 수행하는 유송근 장로님이 전철역까지 그분을 태워다 드렸는데 그분이 차 안에서 들려주더라면서, 유 장로님이 그 내용을 저에게 보고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로님께 그랬지요.
“장로님, 저한테 보고하지 마세요. 저도 사람인지라 그런 얘기 들으면 편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장로님,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그 편견과 선입견이 잘못 표현되면 꼴불견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난 꼴불견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 유 장로님이 오히려 저한테 감동받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저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떨어진 낙엽을 밟는데, 지난 여름 푸르른 나뭇잎들과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무성하고 푸르렀던 나뭇잎도 결국 가을이 되니까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떨어지는 낙엽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어찌 낙엽뿐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저와 관계했던 사람들, 얽히고설켰던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생각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저를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생각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