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충성된 청지기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 두려워서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태복음 25:14-30)”.
교회 다니는 성도들 중 달란트 비유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특히 주일학교에서 ‘달란트 시장’ 행사도 합니다. 전도를 많이 해오는 친구에게 참 잘했다는 표시로 스티커 같은 것을 만들어 주는데, 이것들을 모아 달란트 시장이 열릴 때 과자나 학용품, 카페나 중국집, 분식집 같은 곳에 가서 이용할 수 있는 요긴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주시는 달란트 비유는 감림산 위에서 들려주시는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 있을 징조에 대하여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여러 재난과 마지막 징조들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다가올 천국을 위해 준비되기를 원하시며 천국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들을 말씀하셨는데, 그 비유 중 오늘 주제인 달란트 비유도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각각 재능에 따라 풍성한 은사를 부여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위해 재능을 성실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이 어떻게 재능을 활용하는가에 따라,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의 태도에서, 주인의 말이 같다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사는 양적으로 많고 적음이 상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받은 은사로 전심전력을 다해 일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일의 결과를 보고 자신을 질책하거나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일의 결과가 많고 적음은 그리스도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각자의 능력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성과를 올리려 하는 태도는 그리스도의 정신에 합당치 않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라는 18절 말씀은, 종이 주인을 속이거나 사욕은 채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종의 잘못은 주인의 뜻을 충성스럽게 지키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는 귀한 은사를 사장시키고 있었습니다. 이 같이 폐쇄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충성하지 않는 자는 결코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의 달란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한 달란트의 정확한 가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품군의 하루 일당이 한 데나리온임을 볼 때 노동자의 20년치 품삯에 해당합니다.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입니다.
환산하면 한 달란트는 오늘날 우리 돈으로 약 51억 원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으며, 그만큼 무게가 나가는 값진 돈을 뜻합니다. 이 달란트를 서로 나눔으로써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선포하시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말씀이자,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나눠준 달란트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즉 인생이란 시간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각자 받은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남겼으며,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의 이익을 남겼다는 것은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은혜의 장사꾼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구원의 도구이자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복음서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주인으로부터 혼이 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흐르고 흘러 고달픈 이들을 달래주고, 허기진 이들을 채워주며,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줘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땅속에 묻혀 썩히고 있었기 때문에 혼이 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사랑을 묻어두지 말고,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자신의 삶과 사회 안에서 사랑의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각자 받은 재능에 최선을 다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달란트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받은 달란트, 곧 사랑의 능력을 키워 기쁨이 충만한 사랑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우리 삶은 더욱 정성스러워집니다. 정성을 다하는 이에게 맡겨진 재산은 더욱 풍성해지기 마련입니다. 맡기고 떠난 주인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 시간이 마치 밤도둑처럼 오겠지만, 맑은 정신으로 깨어 기다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이란 달란트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므로,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도리어 감추어 불충한다면 하나님 앞에 어찌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앙인들은 현재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황금 같은 시간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나의 재능을 갈고 닦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노란봉투법’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해, 경제계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악법을 만들어 크게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이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부르는 말입니다. 2014년 법원이 쌍용차 사태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판결을 내린 후 한 시민이 ‘노란봉투’에 작은 성금을 전달하기 시작했고, 이후 시민들의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이어져 15억 원에 가까운 돈을 모금하여 생겨난 것입니다.
그동안 경제계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노사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르고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음을 수차례에 호소한 바 있음에도, 야당은 경제계 의견을 무시하고 정략적 판단으로 국가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개악 안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경제계는 이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법안이 가져올 경제적 위기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밖에 남지 않으므로, 대통령께 거부권행사로 이 나라의 기업과 경제계에 무너지는 것을 막아 주시기를 간곡하게 호소 드린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젊은 대학생들까지 “민법 3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국제적으로 보편타당하지도 않은 불법 파업”이라며 서울대, 연세대, 동아대, 전남대 등 전국 100여 개 대학에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고 의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웃기는 일은 국민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대신 일해 달라고 세비까지 주며 뽑아줬더니, 기껏 한다는 일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안건을 통과시켰다는 점입니다. 이 저질스러운 국회의원들의 민낯은 참으로 가관입니다.
국민들을 바보천치로 아는지, 아니면 자신들이 마약을 먹어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국회의 모습은 차라리 폐지하여 세비라도 아껴, 국민들의 삶에 보태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어느 기업이 시위를 하며 폭력으로 재산을 망치는 것을 그냥 두고 보겠습니까? 그러면 국회의원들의 가정에 도둑들이 드나들며 다 부수고 행패를 부려도 ‘노란봉투법’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이럴 바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동자들 모두에게 퇴직금을 다 정산하고 제3국에 가서 기업을 운영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그때 가서는 또 어떤 법을 만들어서 국민들을 기만할 것인지….
국회의원들 수준이 너무나 저급해, 대한민국의 앞날 무궁한 발전과 영광에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입법부는 차라리 폐지하는 수순으로 가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할 정도입니다. 폐지가 힘들다면, 이런 악법을 통과 시킨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모두 낙선시켜야 합니다.
땅에 묻어둔 악한 종보다 더 못한 국회는 현재 쓰레기 더미로 가득해, 더 이상 국민들이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양심도 팽개친 채, 오롯이 한 사람의 방탄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추태를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되고, 이제 국민들이 나서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천직으로 알고, 보다 나은 국가 백년 대계를 위해 피, 땀, 눈물로 온 정성을 다 바쳐 일하는 국회의원들로 바뀔 수는 없을까요? 국민들도 각자 맡은 달란트로 귀하게 순종하고, 주어진 청지기 사명을 최선을 다해 봉사하며 충성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보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