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다리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1:27-28)”.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갈수록 현대인은 점점 조급해하고 빨리 무엇인가를 성취하려 합니다. 조금이라도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은, 현대인의 질병이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기다림은 필수 요건이며, 그 기다림에는 설레는 마음이 함께 가슴을 뛰게 합니다.
기다림과 설레는 마음은 나의 뜻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하늘이 땅보다 더 높이 있듯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더 높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삶은, 기다림으로 이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쉽게 단정하지 말고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인간관계가 성급하게 끊어지는 것은 대부분 기다릴 줄 모르고 참을성이 없는 조급함과 이기적인 마음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상대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줄 뿐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 감싸줘 미운 마음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기다림은 이미 모든 것을 다 포용하겠다는 깊은 의지의 표현이기에, 설레는 마음도 함께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축복의 완성입니다.
설레임이란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 두근거림 또는 그런 느낌’을 뜻합니다. 신앙인들의 믿음이란 ‘기다림’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즉 믿으면 기다립니다. 그것도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기다려 줍니다. 불신은 ‘조바심’의 다른 표현입니다. 믿지 못하니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기다림은 다양합니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 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것, 직장 입사시험을 친 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것, 각종 대회를 치른 뒤 입상 소식을 기다리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기다림은 필수 요건이요 의무입니다.
어린 시절 해마다 11월이 가고 12월이 되면, 대림절과 함께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세월 앞에 주눅이 든 낙엽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못 이겨 저마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나뒹굴다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길 위를 한참 동안이나 헤매다 고랑에 빠져 슬퍼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겨울밤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높고 깊은 밤하늘은 제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달의 중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샛별처럼 빙그레 미소짓는 큰 별과 잔디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은하수들의 온기는, 성탄절이 다가오는 겨울밤을 설레는 밤으로 다가와 속삭여 줍니다.
저기 유난히 크고 빛난 별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동방박사가 된 것처럼 대림절의 주인공인 양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두 손을 크게 펼쳐 밤하늘을 안아보다, 친구들과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기쁘고 즐겁게 뛰놀던 그 시절입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며 마음이 들떠 행복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그때 그 시절 순수했던 성탄절이 다시금 추억으로 오늘 밤을 설레게 해 잠을 이루기조차 힘든 그리운 밤입니다.
본문 28절은 누가복음 8장 21절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복이 있음을 부인하신 것이 아니라, 축복의 조건이 육적 관계를 초월한 영적 자격이 있음을 말씀해 줍니다.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며 회개와 속죄로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으며,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말씀을 읽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저자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씀했던 “너희는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닦으라.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광야에 길을 곧게 하라”는 예언을 상기시켜 줍니다. 여기서 ‘길’은 결국 주님 가시는 길이고, 수난과 죽음의 길이 됩니다.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도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고, 이를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와 속죄가 그 실천이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의 기다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을 ‘회개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하나님께로 시선을 옮기면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 삶은 평생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고, 이 회개의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할 때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믿음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소망은 믿음을 굳게 지켜 믿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응답으로 성도들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 중 사랑이 제일인 까닭은 그것이 믿음과 소망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 것이고, 인간의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성도들이 가진 많은 은사들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는 폐하지만 사랑의 은사는 영원히 지속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로 모든 은사들뿐 아니라, 믿음과 소망보다 더 크고 위대함을 우리 성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는 말씀 중 “모든 것을 바라며”란 맹목적 낙천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을 믿는 가운데 소망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을 맞으며, 기쁜 성탄절을 기다리며 환호하는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오심을 오래오래 기다렸던 마음으로, 늘 우리는 설레는 가슴으로 충만한 은혜 속에 사랑을 꽃 피워가는 신앙인으로서 세상이 부러워하는 주님의 향기를 뿜어내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불우이웃을 ‘돕자’는 울림이 땅 위에 있는 신앙인들로부터 시작돼야 하겠습니다.
비록 나라 안 정치가들 싸움이 진흙탕으로 물들어 백성들의 고달픈 삶은 아량곳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영욕에만 탐심을 내 실망감을 안겨주지만, 우리 신앙인들만큼은 주님께서 의도하신 그 믿음을 따라 세상을 의의 길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시기와 질투, 권력과 음모, 거짓과 권모술수가 만연한 현 시대를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두 번 다시 소돔과 고모라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맑고 청아한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 시대의 숙제를 성도들 각자가 책임지는 모습으로, 주님의 뜻을 받들어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소망 없는 신앙생활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성탄의 기쁨은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주님의 용기 있는 군병들이 돼야 합니다. 대림절의 참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신앙인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