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겸손한 자세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요한복음 1:24-28)”.
인생의 필수 미덕인 겸손은 종종 눈에 띄지 않거나 과소평가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배움이 열려 있으며, 다른 사람을 존중과 친절로 대하는 자질이라고 합니다. 즉 겸손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여정은 아니지만, 추구할 가치가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겸손(謙遜)’은 공경할 겸(謙), 따를 손(遜)으로, 공경하여 따른다는 뜻입니다. 남을 높이어 귀하게 대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말합니다. 잘하는 일이나 자랑할 만한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잘난 척 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겸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겸손의 반대말은 거만입니다. 잘난 체 하며 남을 멸시 천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 자주 쓰였던 말 중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삭은 벼에서 열매가 열리는 부분으로, 벼 이삭은 익을수록 점점 무거워져 아래로 축 처지고 구부러집니다. 이처럼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조상들 역시 겸손한 마음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선비의 바른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나 지식이 있어도 항상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신발(샌달) 끈을 푸는 것은, 하인들이 하는 일 중에서도 가장 천하게 여기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는 비유로, 자기와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아주 높이 평가하며 자신을 낮추는 최고의 표현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무슨 자격으로 세례를 베풀고 있는지 이유를 묻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 일은 그에게 자신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별하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 질문의 형태는, 그 세례 의식이 공식적 권위 표시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대신, 다음 대목에서 예시될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33절에서 그리스도의 성령 세례와 대조됩니다. 그 성령 세례는 세례 요한의 물 세례보다 우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세례 요한의 겸손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장소는 11장 1절에서 언급된 다른 베다니와 세심하게 구별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 12월 셋째 주일은 ‘자선의 주일’로서 우리에게 엄청난 사랑을 주신 주님을 기억하고, 어려운 이들과 가난한 이들, 억눌린 자들과 외롭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주일입니다.
해마다 사순절과 대림절을 지나며 성찰과 회개의 생활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가올 부활과 성탄의 기쁨을 미리 맛보고, 그 소망으로 열심히 기다리는 인내의 삶으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겸손의 자세를 가르치는 대목입니다.
대림절 셋째 주일을 맞아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자유를, 갇힌 자들에게는 놓임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대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예언자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들의 질문에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나는 아니다”며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라고, 자신에 대해 가감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심지어 “나는 그 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치 않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작은 존재가 되고 싶어 철저히 자신을 낮추었지만, 많은 이들은 그를 위대한 인물로 존경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세상 누구보다 큰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깊은 겸손이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의 칭찬을 듣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교회 안에서 신실함과 겸손으로 살고 있는지, 자신을 높이며 자랑하기를 즐기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이웃을 위하는 척 하며 포장된 봉사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거짓 때문에,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모습은 이제 그만 해야 하겠습니다.
포장된 모습으로 겸손을 자랑하는 이들은 내면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늘 불안함과 시기와 중상모략으로 세상을 어둡게 살 뿐이지만, 주님 안에서 ‘신실한 겸손의 소유자’의 내면에는 늘 기쁨이 깊이 샘솟고, 전적으로 하늘에 나의 소망을 맡기며 묵묵하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는 신앙인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2023년도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2024년 전반기에는 총선이 있습니다. 각 정당에서는 국민들을 위한 봉사자로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과거 운동권 출신이나 결격 사유가 있는 자들이 서로 물어뜯으며 총선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공무원이나 직장인들은 결격 사유가 있으면 아예 취직을 꿈도 꾸지 못하는데, 국회의원이나 시의원·구의원들은 왜 결격 사유가 충만해도 출마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전과가 있어도 출마할 수 있고, 오히려 전과를 무슨 공로처럼 여깁니다.
그런 자들이 정치를 하면 깨끗한 정치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들은 국회의원이나 시·구의원을 한 번 하고 나면 재산이 급격히 늘어나던데, 그 월급으로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지금 출산율이 저조해 나라의 미래가 어두워 전 세계에서 한국을 염려하고 있는데, 정치가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서로 힘을 모아 이 문제를 해결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논리만 내세웁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무수한 죄들에 대한 방패막이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적이 침입해도 당파싸움에 함몰돼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 못된 정치 가들 때문에, 애먼 국민들만 억울하게 많은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 조선 시대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으니 참으로 애가 마릅니다.
이 모두는 정직하고 정의롭지 못한 자들이 교만한 포장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진실성 없이 부도덕하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들을 보노라면, 난세에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같은 인물들이 그립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겸손한 자세로 사명을 감당하는 분들이 별로 없으니, 나라의 미래는 정말 어둡기만 합니다.
본문 말씀 주인공인 세례 요한의 겸손한 태도를 신앙인은 물론,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정치가들은 닮아야 할 것입니다. 헤롯 왕의 잘못을 용기 있게 나서 지적하는 모습도 배워야 합니다. 같은 당원이나 함께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있다면, 적극 나서서 과거를 깨끗이 물리고 새로운 정치, 국민들을 위한 봉사로 다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사람의 속을 환히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겸손한 척,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척 포장하는 사람들을 잘 걸러내야 할 것입니다.
고요한 겸손은, 상대방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손으로 만질 수 없습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내면에 있는 진실을 보여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낮추면서 최고 섬기는 자세로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나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겸손입니다. 그 겸손은 순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끗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그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모두 줄 수 있는 열려 있는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오롯이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성숙한 마음을 세워주고, 덮어주며, 양보하는 마음입니다.
특히 권력에 아부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탐심, 자기자랑, 거짓 꼼수와 갖은 술수, 시기와 모함 등은 교만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악한 교만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 교만을 물리치기 위해, 우선 깊은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 겸손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만이 해결책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