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 제41회기 출범 비전 세미나 강연 원고
4.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교회체제
1647년에 발표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개혁주의 정통신학의 교리를 모아놓은 최고의 지침이지만, “장로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함께 청교도 전쟁에 나서고 있었던 회중교회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배려하였기 때문이다. 의회파 군대 “새로운 부대”의 총사령관 올리버 크롬웰과 그의 휘하 군인들이 소속한 교회가 회중교회였던 것이다. 그들은 국왕이나 주교와 같이 권위자들로부터 간섭당하지 않는 교회제도를 주장했고, 심지어 전국적인 교회의 총회에서 결의하는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개교회의 운영을 주장하였다.
청교도 전쟁이 일어난 시기는 한마디로 로마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가 초래한 위기의 시대였다. 유럽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을 새롭게 개혁하려는 운동은 부당한 왕권에 대한 저항하는 합당한 투쟁이자, 신앙적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었다. 청교도들은 다른 모든 교리에는 공감하면서도 교회의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장로교회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참된 교회라고 인정했다. 사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던 청교도들 사이에서도 장로교회와 회중교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당 안에서는 장로교회주의와 독립파가 종교전쟁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첫째로, 1640년부터 1646년까지는 장로교회가 대세를 이루면서 국가체제의 성공회를 비판했다. 바로 그 앞에 세대 동안에 각 지역에서 권세를 독차지 했던 성공회 주교들의 핍박과 탄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지독했었다. 1640년부터는 구체적으로 진행된 잉글랜드의 청교도 운동이 큰 호응을 얻었는데, 전체 국가교회에서 분리된 교회들이 존립하는 명분을 획득했다. 수백여 개의 교회들이 국가 체제 하에서 지역 교구의 주교로부터 통치를 받지 않는 독립된 체제로 분리하였다. 그들 중에는 개별 교회가 따로 자치권을 행사하는 회중교회가 가장 많았고, 특수한 침례교회, 일반침례교회, 제5 군주제도 등이 있었다.
영국 성공회의 치리 체계와 예배를 거부한 청교도들은 회중교회를 따라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1645년 이후로 평신도들에게도 선택의 자유를 제공한다는 장기의회의 결의에 따라서 이런 흐름이 만들어졌다. 크롬웰의 전성기였던 1546년부터 1653년까지는 독립적인 회중교회가 장로교회를 공격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독립교회’라는 표현보다는 회중교회라는 용어를 더 선호했다. 이들 회중교회는 존 오웬처럼 개혁주의 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채택하고 있었지만, 일부에서는 침례교회가 회중제도를 채택했다. 회중교회에 속한 올리버 크롬웰이 국가의 권력를 장악한 1653년 12월에는 국가교회체제가 힘을 잃었고, 청교도들의 체험과 복음적인 열정이 크게 확산되었다.
1653년부터 1660년까지는 더욱 더 급진적인 교회들 (분파적인 교회들, 퀘이커, 쏘시니언이즘, 제 5군주제도 등)이 회중제도를 싫어했다. 아예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했고, 전국 총회와 각 노회로 연결되어 있던 장로교회마저도 너무나 딱딱한 조직체라고 거부했다. 분리주의적인 교회마저도 받아 주어야만 종교적 관용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또한 다양한 교회의 정치제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변증하였다.
장로교회는 칼빈의 제네바에서 시작해서, 낙스의 스코틀랜드에서 전국가적인 체계로 드러났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당회’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의회에서 선출된 평신도들이 교회의 치리에 참여하게 된 것과 시의회로부터 독립적인 권한을 얻어 낸 것은 종교개혁이 일궈낸 최고의 업적이었다. 1560년 이후로 스코틀랜드에서는 낙스의 주도하에 국가적인 교회의 총회가 모든 주요한 투쟁과 중심적인 결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는 로마 가톨릭체제를 대체한 성공회가 매우 모호한 위치에 처해 있었다. 잉글랜드 성공회는 교회 조직체로서는 분명히 로마 가톨릭에서 벗어나서 캔터베리 대주교의 휘하에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주교 중심의 상하조직체로 운영되고 있었다. 청교도들은 과감하게 성공회 체제를 대체하고자 장로교회를 받아들였는데, 각 지역 귀족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