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인이라면, 이념에 충실한 정치 해야
호랑이 잡으러 왔다는 이상민
2024년 1월 8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대전 유성을) 의원이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상민 의원은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온다는 다부진 생각으로 입당하게 됐다”는 말로 변을 밝혔다. 그가 입당한 곳이 국민의힘이니, 호랑이 굴이 국민의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호랑이는 대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상민 의원은 2021년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인물이다. 그것도 순교적 자세로 앞장섰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민주당 내 대권 주자들에게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과 각오를 밝히라고 요구하면서, “민주당 후보로 선다면 그 정도의 정체성을 갖고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를 아는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입당 후에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없는지를 물었다. 이에 이상민 의원은 “(전용기) 의원이 앞장서서 했으면 좋겠다. (민주당에서는) 대부분 기독교 눈치 보느라 입 밖에 꺼내는 것도 안 한다. 그게 민주당 모순 아닌가”라고 했다.
잘 생각해 보라. 이상민 의원은 지금 기독교의 반대가 무서워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민주당을 지금도 여전히 비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이상민 의원이 말한 호랑이는 기독교인임이 분명하고, 호랑이 굴인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호랑이인 기독교인의 뒤통수를 치는 우회전략을 선택한 것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저런 음흉한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람을 받아들인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심히 의심스럽다. 차별금지법을 막는 것을 소명으로 여겼던 김기현 전 국민의힘 당 대표는 왜 갑자기 사퇴한 것일까? 혹시 차별금지법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의견이 충돌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것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여러 정보를 조합해 보면 점점 불안해진다.
이념은 대체 어디로?
일반 국민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입당이 자유롭지만, 당을 대표하여 선거에 출마할 국회의원 후보자를 공천하는 경우 이념과 정견을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 정당은 이념과 정견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체를 의미하기 때문이고, 정치인은 정당의 이념을 실현하는 권력을 위임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보수당이 무너진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도실용’을 주장하며 보수당의 이념을 저버린 데서 시작되었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일단 좌편향된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보아야 한다며 이념이 검증되지도 않은 인물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그 결과 총선에 참패한 것은 물론이고 이준석 같은 자에게 당권조차 빼앗겨 버렸다. 이후 황교안 대표는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고백하였으나 이미 대한민국 보수당은 와해된 뒤였다.
당시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종인은 아예 대놓고 ‘탈이념’을 지향하였다. 정당이 이념을 버리면서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장사꾼이 물건도 보여주지 않고 돈부터 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건 그야말로 갑질이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표를 줄 거라 확신하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짓이다. 대체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념이 없던 사람도 그러할진대, 얼마 전까지 보수주의에 반대되는 이념을 가졌던, 그것도 보수주의를 무력화하는 악법을 발의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의 입당을 자칭 보수당이 쉽게 허용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상민 의원이 이념 전향을 공표하였는가? 입당의 변에서 스스로 아니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설사 본인이 이념 전향을 공표했더라도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이념을 바꾸는 것은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를 살던 네오가 매트릭스를 발견한 때와 같은 구조적 의식변화가 이념 전향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념의 선명성은 정치발전을 위한 필요조건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많은 이가 선언적 조항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 헌법 조항은,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 실효성 있게 되려면 정당의 이념과 정견을 국민에게 명확하게 이해시켜야 한다. 모든 식료품의 포장지 겉면에 영양성분이 표시되어 있어야 소비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처럼, 정당의 이념이 선명해야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당선된 후에도 정치인은 이념에 충실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럴 때 국민은 자신이 지지한 정당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정치인이 간혹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더라도, 소속 정당의 이념을 신뢰할 때 조금 더 지켜볼 여유를 갖게 된다.
그런데 현재 국민의힘 지지자 중 소속 정치인을 신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물론 그 이유는 국민의힘의 이념적 방황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보수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런 비판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한 정당의 정치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이념이다. 오야붕이 결코 아니다. 정치인들이 이를 알았다면 조폭들이나 사용할 법한 친이계니 친박계니 하는 불쾌한 용어를 들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교회에서도 우파라고 하면 이명박, 박근혜 지지자로 여기고, 좌파라고 하면 김대중, 노무현 지지자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목사님 중 아예 교회 내에서 정치 이야기를 금지하는 분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쯤 되니, 교회를 죽이는 차별금지법을 교인이라는 사람이 지지해도 교회는 손쓸 방법이 없게 되어 버렸다.
국민의힘을 향한 당부
2013년 개봉한 영화 ‘보그만’은 유럽의 난민 정책 실패를 비판한 영화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가 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노숙자를 불쌍히 여겨 집안으로 들인 결과, 주인 부부를 살해하고 집을 차지하게 되는 황당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영화는 현재의 국민의힘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왜 다른 정당에서 탈당한 의원을 최소한의 이념 검증 절차도 없이, 지지자의 동의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인가? 국민의힘은 난민캠프인가?
이형우 교수
행정학 박사
한남대학교 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