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생명윤리 6
우생학을 나타내는 영어 ‘eugenics’는 ‘well’(잘난, 좋은, 우월한)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의 ‘eu’와 ‘born’(태생)의 뜻을 가진 ‘genos’의 합성어다. 인류를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우생학은 생명윤리 영역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있다.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은 다윈의 사촌이자 19세기 생물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톤(Francis Galton)이다. 우생학은 생존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이 생물 종의 진화를 결정한다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우생학에 매몰된 사회진화론자들은 강한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허약한 형질을 가진 약자나 불구자를 도와주는 국가 복지정책은 적자생존의 원칙에 벗어나기에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생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이 여러 형태로 다가왔다. 우생학의 시작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더 나아지려는 욕망과 교만의 산물이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 5)
인간의 교만과 탐욕이 바탕이 된 우생학은 의과학의 발달과 함께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위협하고 있다. 우생학의 파괴력은 인간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불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이 되게 한다. 실제로 인류 역사상 우생학은 종족 우월주의를 내세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폭력과 인종차별 그리고 대량 학살을 발생시켰다.
종교개혁의 진원지였던 독일이 혼합된 신학으로 가장 앞장서서 타락하면서 사회 각 영역의 타락 현상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개조하겠다는 우생학의 환상에 깊이 빠져버렸다. 이런 흐름은 나치즘을 형성하는 철학적 기초가 되었다. 우수한 종족만 남기고 열등한 민족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종족 우월주의 우학생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들은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불치병을 앓거나 정신병자, 정신지체자, 불구 아동의 삶을 ‘살 가치 없는 삶’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안락사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30만 명을 거세시켰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약 7만 명의 정신병 환자들을 살해하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집시, 기타 ‘바람직하지 않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가스실에서 대량 살상시켰다.
죽음의 천사로 알려진 요세프 멩겔레(Josef Mengele)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우생학을 연구한다는 목적으로 비윤리적이고 반인류적인 인체실험을 자행한 의사다. 멩겔레는 약 1,600쌍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말라리아, 티푸스를 감염시킨 후 부검 실험, 남녀 쌍둥이 생식기 교체 실험, 독극물 주입 후 죽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실험, 무염분 음식투여, 저온 등의 극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생체 실험을 실시했다. 아리안 종족의 푸른 눈을 가진 우성 인간을 만들겠다고 주사기로 눈에 푸른 염색약을 주입하는 잔인한 실험을 자행하기도 했다.
청교도 정신으로 세워진 미국 역시 신학의 타락과 함께 인종차별과 무지한 폭력이 자행되었다. 실제로 미국 장로교의 타락을 이끈 사람들 대부분이 독일 유학파였다. 혼합되고 타락한 자유주의 신학 사조와 함께 우생학이라는 악(惡)의 학문을 받아들였다.
인디애나주는 1907년에 처음으로 정신병자, 백치, 강간범을 거세하는 거세법을 통과시켰다. 우생학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인종의 이민이 앵글로 색슨의 미국을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1924년 앵글로색슨 민족의 이민을 독려하고 대신 유대인이나 동유럽, 아시아나 아프리카 민족의 이민을 제한하는 존슨 이민법을 통과시켰다.
의과학이 발달하면서 우생학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인공수정를 통해 생성된 배아 세포를 일부 떼어내어 검사하는 착상 전 유전 검사(PGT, Pre-implantation Genetic Testing)는 배아의 염색체 이상이나 유전질환을 사전에 알아보는 검사이지만, 여러 가지 유전정보를 알 수 있다. 성감별이나 개인적 소질 등을 확인할 목적으로 검사가 남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크리스퍼(CRISPR) 가위 기술의 발달로 배아 유전자를 조작하여 자신이 원하는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인종을 차별하고, 비윤리적인 불임 수술을 강제하고, 약자의 생명을 죽이는 일을 정당화하는 우생학의 유혹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생각 속에 숨어있다.
우생학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무서운 죄로 인도하는 악의 유혹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이 세상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차별이 없으신 분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거나 죽일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다. 힘이 센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머리가 좋은 자나 지능이 떨어진 자나 주님의 사랑과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1-12)
우생학은 선악과를 따먹고 더 나아지려는 아담과 하와의 죄를 답습하는 죄악이다.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운영위원장(의사평론가,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