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칼럼] 융통성 있는 생활양식
아침에 잠을 깨우기 위해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그런데 이상한 음이 나오면서 잘 들리지 않았다. 음량도 조절해 보고 눕혔다가 세웠다가 전화기를 이리 저리 옮겨 보았지만, 도저히 소리가 이상하게 들려 전화기가 고장이 났나 했다.
그런데 눕혔더니 소리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렇게 듣고 있었더니, 부엌을 지나가던 딸이 “왜 그렇게 빨리 듣고 있어!”라며 들어와서 속도를 조절해 주었다. 알고 보니 어제 방송을 보다 소리를 빨리 설정해 놓았던 것이었다. 무엇이 원인인지도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의 이 경험이 나에게 작은 통찰을 주었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세팅이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시대나 상황이 바뀔 때마다 세팅을 바꿀 수 있을 때 기능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내가 하는 것이 옳다고만 생각한 채 거기서만 답을 찾으려 할 때가 있다.
인생에서 경험하는 것들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에게 적절하던 것이 내게는 맞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 너무 좋은 것이 나에게는 좋기는커녕 쓰레기가 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언제냐에 따라서도 다 달라질 수 있다.
어제 남편이 팬트리에 설치할 수 있는 가구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멀리 골드 코스트로 가는 한 가족이 가게에서 사용한 물건들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에게는 필요 없어졌지만 우리에게는 요긴한 것이었기에 감사하며 가져왔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로 처분돼야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귀하게 사용될 수 있기에, 정형화된 답을 찾기보다 나의 상황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정된 틀을 가지고 있어, 마치 유튜브 속도 세팅이 잘못돼 이상한 속도로 노래를 듣듯 불편한 상황임에도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내게는 예의범절이 중요하고, 어른들을 챙기면서 선후배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경험이며, 삶의 많은 부분이 그렇게 세팅되어 형성됐더라도, 자녀들이 살고 있는 세상 특히 호주 사회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세팅이 전혀 없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인사를 강요하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우리는 불편한 관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마치 다른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이전 프로그램의 세팅을 적용하는 것과 같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런 인생의 고정된 틀이 어린 시절 경험에서 형성되는데, 그것을 ‘생활양식’이라 명명했다. 어린 시절 형성된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틀이 평생 살아가는데 고정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성격 형성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상호작용을 할 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건강하게 형성될 경우 평생 평안한 인생을 살게 된다. 반면 건강하게 형성되지 못할 경우 자신을 힘들게 하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하며, 나아가 개선되지 못하면 왜곡된 성격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아픔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내주고 희생하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면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사람을 찾지만, 도리어 상대로부터 학대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이 같은 자신의 생활양식이나 관계의 패턴,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이해의 틀을 잘 알지 못하면 관계 속 아픔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 융통성 있게 살기 위해 우리는 나를 돌아보고, 잘못 세팅된 부분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생활양식이 건강하지 못해도 그것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얼마든지 성장과 변화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싱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짝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남여 네 명씩 등장했는데, 가장 인기 있는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직업이 좋고 옷차림이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사람들과 융통성 있게 대화를 잘 나누는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 가장 인기 있었다.
나이가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인생을 많이 경험해 돈도 외모도 더 이상 많이 중요하지 않은 시기에 도달하니,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융통성 있게 열린 태도를 가진 것임을 알게 된 것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성숙해지고 더 많은 융통성과 삶의 경험을 통합함으로써 오는 성숙의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잘못된 세팅으로 인생을 계속 살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바라보지 못해 고집불통이 돼 닫힌 태도로 타인과 세상을 원망하면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융통성과 삶의 통합을 경험한 사람들 주위에는 가족이 많다. 자녀들도 그들과 함께하기를 원하고, 그들을 닮기 원하고, 그들을 따르기 원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는 가족들도 멀리 떠나는 것을 본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융통성 없고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태도가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내가 경험한 인생의 틀이 내가 세팅한 삶의 태도가 전부일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나를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생을 바라보는 나의 세팅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인식하고, 건강한 틀이 아니면 나이와 상관없이 과감하게 깨뜨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장성한 자녀 또는 결혼한 자녀와 자꾸 갈등이 생긴다면, 자녀들이 바뀌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내가 경험한 삶의 자리에서 형성된 ‘생활양식’, 즉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점검하고, 먼저 내가 ‘네가 ~해야만 해” 라는 태도를 버리고 변화해야 한다.
어른들은 인생을 통해 자신에게 형성된 고정된 틀로 인해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 힘들 수 있다. 반면 젊은이들은 가장 유행하는 첨단 트렌드를 무분별하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시대의 주류 사조와 유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갈 때, 우리는 자칫 부모의 유산 중 좋은 생활양식까지 버리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훈 목사 Rev Dr. HUN KIM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