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안을 허물고 정화하자!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마가복음 11:15-17)”.
오늘 본문 말씀 속 ‘성전’은 헤롯이 건축한 제3성전을 말하고, 매매하는 자들이 있던 장소는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아주 멀리 사는 유대인들은 돈으로 제물을 사서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기에 매매하는 자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유월절에는 각국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들이 성전에 반 세겔의 세금을 내려면 유대 화폐로 바꿔야 했기에, 돈 바꾸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비둘기는 양이나 염소를 바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3-17절은 공생애 초기 사건을, 공관복음(마태복음 21:12-17 ,누가복음 19:45-48)은 고난주간 중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을 내어 쫓으신 곳은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이는 고난주간 월요일에 발생한 일입니다. 성전의 본질은 ‘기도하는 곳’인데, 성전이 시장화되어 사기와 착취의 온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적 분노를 터뜨리며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라고 개탄하십니다.
지난 2월 14일 사순절이 시작됐습니다. 머리에 재를 얹고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며 회개하는 삶의 메시지를 듣고 나를 비우며, 온전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서 삶을 전환하고자 결심하는 주간입니다. 벌써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진실한 삶의 방식은 말에 있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삶인데, 그렇지 못하고 매번 핑계를 대며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지난 두 번의 사순절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환전상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를 둘러 엎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비둘기 파는 장사치들을 내쫓으시며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으십니다. 이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전에 와서 하나님은 잊고 외적 형식과 사람들이 만든 틀과 규범만 실천한다면, 그곳은 성전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장이 되고 맙니다. 거룩함이 없는 성전은 장사꾼들의 놀이터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허물어 버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금 성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몇 년 전 어느 교회에서 성도 한 분의 불평을 들었습니다. 타 지역에서 전입해 오신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고요하게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는데, 여기 오니 성도들이 너무 떠들어서 힘들어요.”
물론 성전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친교하고 봉사하고 즐겁게 믿음 생활도 해야 하지만, 엄숙할 때는 엄숙하고, 슬픈 일을 당하면 함께 위로하며,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전에서 기도하며 찬송할 때,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 장소임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예물을 봉헌하기 위한 장소의 이미지를 넘어, 하나님 뜻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진정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면은 회개하지 않고 이기적이면서, 예물 봉헌에 대한 율법 규정만 지키면 신앙인의 의무를 다한 것일까요?
이런 모습은 ‘무늬만 성도’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예배 장소로서의 성전은 마땅히 허물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다져진 새 성전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 새 성전은 십자가 제사로 세워진 참 성전으로 지어져야 합니다. 십자가의 제사로 세워진 거룩한 참 성전은 바로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옷 입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에 힘입어 희생을 실천할 때, 비로소 주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예배가 되고 아름답고 거룩한 성전으로 정화될 것입니다.
흔히 잘 아는 팔복 중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입니다. 이는 산상수훈 또는 산상설교로 불립니다. 팔복 말씀들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높은 도덕적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삶으로 지켜야 할 윤리의 대강령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란, 마음이 겸손한 자를 뜻합니다. 즉 자신의 것,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게 됨을 알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말합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곳이므로, 이들이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후 8절에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와 마음이 청결한 자는 천국과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일러 주시는 말씀은 귀합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정화된 믿음이 있어야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란 외식과 두 마음을 버리고 오롯이 하나님을 향한 단순한 마음을 가진 자를 뜻합니다. 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인간과 하나님 간의 관계를 화평케 하신 것처럼, 사람들 사이와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화평을 조성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남 잘 되는 꼬락서니를 못 보거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명예욕과 승부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거룩한 집을 구별하지 않은 채 소란과 거짓으로 물든 장소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전은 투명하고 서로 위로하며 사랑 넘치는 장소로서 기쁨과 축복과 찬송이 넘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가진 것을 서로 나누고 통용하며,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말씀 안에서 정화하고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로서의 삶을 실천하며 나아가는 성도들이야말로 초대교회를 본받는 성도일 것입니다.
자존심, 무익한 고집과 아집, 내 안에 숨은 교만과 자랑을 버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시며 몸소 실천하셨던 십자가의 희생을 우러러 느끼고 체험하는 사순절 셋째 주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안에 있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쏟아내고 비워내는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를 정화하지 않고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순절과 점점 멀어져갈 뿐입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의 끝은 부활이라는 영원한 승리의 나팔소리가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질 것입니다.
특히 전공의들이 시한을 넘긴 첫날에도 복귀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애가 마릅니다. 의사들의 민낯에 어이가 없습니다. 부모나 형제, 자녀들이 병으로 곤경에 처했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병 고치는 사람들로서 응당 해야 할 도리를 저버리고 집단이기주의로 이익을 위한 일에만 전념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번 사순절 시기를 통해 나를 비우고 깨끗하게 정화하는 아름답고 귀한 시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