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아닌 필수의료 의사 2천 명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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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칼럼]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닫아라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판도라의 뚜껑을 열고 당황한 정부

판도라의 상자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낭패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을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판도라’라는 여인이 절대 열어 보지 말라는 상자를 열었을 때 온갖 재앙과 악이 세상에 나와 인간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당황한 판도라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가까스로 뚜껑을 닫자 불행 중 다행인지 상자 안에 희망이 나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어설프기 짝이 없는 필수의료 패키지 도입을 발표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줄줄이 펼쳐지는 상황에 당황한 정부는 닥치는대로 만 가지 처방을 발표하고 있지만 번번이 헛발질만 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날아가 버리기 전에 지금이라도 판도라의 뚜껑을 닫아야 한다.

추악한 담합이 낳은 재앙

필수의료 영역의 의사가 점점 줄어들자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정부가 나섰다. 그런데 진단과 방법 그리고 목적이 올바르지 않았다. 아니 정치적 이득만 바라고 정치가 의료의 가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의료사회주의자의 거짓 분석과 주장, 정치권의 정치 국면 전환 카드, 선거용 포퓰리즘, 그리고 대학과 대학병원 운영자들의 상업주의 이익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의료사회주의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대상을 질이 아닌 양적 개념으로 바라본다. 2. 다수를 위해서 개인의 인권이나 소유는 희생되어도 된다. 3. 강요된 자선과 선의를 요구한다. 4.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적 평등을 주장한다. 5. 탈전문가주의(해체주의, 포스트모던 사조)를 추구한다.

지금 정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들은 철저하게 의료사회주의의 특징을 고스란히 탑재하고 있다. 원래 의료개혁의 목적은 필수의료 영역을 떠난 의사들을 다시 필수의료 영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핵심목표인데, 의대 신입생 2천명 증원이라는 해괴한 해법을 내세우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필요한 것은 필수의료 영역의 의사인데, 정부는 매년 의대 신입생을 2천 명씩 더 뽑으면 낙수효과로 필수의료 영역으로 의사들이 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필수의료 영역의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이유를 엉뚱한 곳에서 찾은 것이다. 질이 아닌 양적 개념으로 바라보는 의료사회주의 시각이 드러난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낙수효과는 문재인 정권의 소주성(소득주도성장)과 닮은 꼴의 희망 고문이자 망상이다. 소주성과 원전 폐쇄로 임금만 올라가고, 물가와 집값 폭등으로 삶은 각박해지고 어려워진 것처럼 지나친 의대 집중화를 유발시켜 타 영역의 발전 저해를 넘어 균형발전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미 판도라의 재앙의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막상 판도라의 뚜껑을 열고 보니 전공의들의 저항이 거셌다. 정부와 야합한 병원 경영진과 대학 총장의 비민주적 동조와 야합, 그리고 정치권의 국면 전환 카드, 선거 때마다 들고 나오는 포퓰리즘 표심정책을 보고 젊은 청년들이 분노한 것이다. 이제 갓 졸업한 젊은 20대 청년들을 악마화하는 정부의 강압적 언사와 겁박에 마음이 심하게 상해 버렸다. 대한민국을 이끌고 갈 젊은 청년 1만 명에게서 희망과 사명감을 앗아가 버렸다.

정부는 자신의 잘못된 실책은 감추고 강요된 자선과 선의를 요구하며 너희들은 희생을 해도 되는 존재라고 몰아붙여 버렸다. 열심히 공부하고 몸을 갈아 넣으면서 진료에 참여해 온 만 명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국가에 대해 도대체 무슨 대역죄를 지었다고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왜 정치권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대답해야 한다. 마음이 떠나면 몸도 떠난다고 전공의들의 사직은 그들이 항의하고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된다.

대한민국 14만 명의 의사 중 만 명의 의사가 떠나갔지만 나머지 90%의 의사는 매일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자식 같은 제자들의 사직사태를 보며 그들의 빈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진료실을 떠난 제자들을 지켜보며 마음 깊은 미안함과 책임감에 제자들을 끝까지 보호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의사의 수입이 많으니 어떠니 하면서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며 정부의 실책을 알면서도 동조하는 비이성적 군중심리가 드러나 버렸다. 판사가 두드리는 판결 망치와 목수가 두드리는 망치가 같다고 주장하는 탈전문가주의적 사회주의 교육의 결과다. 포스트모던 사조의 해체주의 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필수의료의사 2천명이 필요한 것이지 의대 신입생 2천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의사가 환자에 대한 자료 분석을 잘못하면 진단이 틀려지고 결국 환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정부 정책도 마챦가지다. 지금 필수의료 영역의 의사 확충이라는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처음부터 진단과 정책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필수의료 영역을 떠난 의사를 돌아오게 하는 일인데, 10년도 더 있어야 의사가 될 의대 신입생을 더 뽑자고 덤벼들고 있다. 집에 불이 났으면 불을 꺼야지, 불을 끌 생각은 안 하고 불을 끌 물탱크를 짓자고 덤비고 있다. 한심한 행태다. 위험하고 힘든 필수의료 영역의 진료에 대한 보상과 민형사상 신분보장이 안 된다면 의사를 100만 명을 뽑아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홍수 속에 먹을 물이 없듯이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필수의료 영역의 의사가 늘어나지 않는다.

의대생 2천 명 증원의 근거로 제시하는 논지가 매우 황당하고 비상식적이다. 의대생 2천 명 증원의 근거로 사용한 연구 보고서 3가지를 모두 왜곡 해석한 것이다. 일부분만 따오거나 앞뒤 자르고 인용하고 있다. 정부가 이러면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정직하지 않다.

의료를 의료사회주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비효율과 자원 낭비, 직역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다. 일단 저지르고 밀어붙이는 정치꾼들이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렸다. 선무당 같은 정치가 의학의 가치를 훼손한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뒤늦게 정부가 필수영역의 진료에 대한 신분 안정과 보상을 충분히 하겠다고 사후 약방문을 날리고 있다. 말만 하지 말고 잃어버린 소를 지금 당장 찾아와야 되지 않은가? 우선순위가 틀렸지 않은가? 진단과 대책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사탕 발린 미봉책이 아닌 진정성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 되지 않는가?

개념없는 개혁은 폭력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놓고서는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날려버리겠단다. 개혁은 개혁의 진단과 목적, 방법과 대상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잘못된 개혁은 많은 수업료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한다.

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개혁해야 할 문제의 진단을 위해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 목적이 정당하고 납득 할 수 있어야 하고, 희생양 몰이식으로 개혁 대상을 정하면 안 된다. 세계 역사상 마녀사냥식 개혁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개혁의 방법은 합리적이고 정당해야 하며, 법치에 의한 윤리적 방법이어야 한다. 지금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개혁은 앞서 언급했듯이 진단부터 잘못되었다. 목적도 불순하다. 정치권의 선거용 인기몰이와 병원 경영진의 값싼 노동력확보, 대학의 의대정원 확장 욕심이 담합 한 것이기 때문이다.

방법도 정의롭지 못하다. 내 말을 안 들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막말을 쏟아내는 인격 없는 개혁 주장은 폭력이다. 손목을 비트는 국가권력과 형벌로는 성공할 수 없다. 몰아붙이는 진정성 없는 정부의 설득은 마음을 더 상하게 할 뿐이다.

헌법은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국가가 침해하지 않고 보장하도록 정해 놓은 것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의 자유 등은 신성불가침한 내용이다. 정부 관리가 감히 초헌법적 판단을 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하는 말을 함부로 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거주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는 곳이 어디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내가 도대체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인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전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이 선택할 방법이 아니다. 이전 무지한 정권이 하던 행태를 답습하고 있어 실망이 배가되고 있다. 지금 정부가 취하는 행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마치 칼 찬 순사를 보는 것 같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판도라의 뚜껑을 연 정부가 매우 당황하여 혼비백산하고 있는 것 같다. 각 부처마다 해석이 서로 다르다. 해도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듯이 정부 관리가 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있다. 완전 선무당이 칼춤 추듯 막말과 어설픈 대책을 남발하고 있다. 의료법도 면허 제도도 법 해석도 막장 수준이다. 의사들은 그들의 막말로 인해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상심을 넘어 의욕이 사라지고 회의까지 들고 있다고 한다.

정작 손 볼 개혁 대상은 수도권에 집중한 병상 증설 허가를 해준 정부와 노동력 착취를 즐긴 대형 병원의 상업주의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필수의료 의사를 몰아낸 과도한 법판결이다.

지난 정권 원전 말살 감사처럼 자료를 왜곡한 부분에 대해 반드시 감사원의 감사가 필요하다. 공수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반대하고 있지만 사안에 따라 권력남용 부분에 대해 공수처 수사도 필요해 보인다.

판도라 뚜껑에 손을 댄 자만이 닫을 수 있다.

개혁은 질 향상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해야지, 미련하게 양으로 밀어붙이며 낙수효과를 바라는 것은 무책임하고 미련한 일이다. 중세 시대나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사회에서 선택해서는 안 될 선택지다. 지금 같은 마녀사냥식, 악마화하는 치졸한 행태는 개혁이 아닌 정치 선동일 뿐이다. 위험하고 힘든 수술과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에 대한 신분보장과 일한 만큼의 댓가를 보장을 해주어서 필수의료 영역을 떠난 의사들이 돌아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개혁은 들불처럼 진행되어야 한다. 너무 강하고 뜨거우면 자신을 태울 수도 있다. 개혁은 자신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역주행하는 마녀사냥식 개혁주장과 인격이 없는 개혁 주장은 폭력이다. 초가삼간 다 태운 후 후대에게 폭탄 던지기를 하면 안 된다.

집을 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집이 불에 타는 데는 몇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 당시 원전 폐쇄 선동 정책을 온몸으로 막은 원자력 교수를 기억한다. 그는 지속적으로 통계와 수치로 국민과 지식인을 설득했다. 마침내 감사원 감사와 정권교체로 폐쇄된 원전이 되살아나고 있다. 진정한 애국자다. 의사단체는 이런 사실을 배워야 한다. 막말과 감정 섞인 푸념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를 보여 주었으면 한다. 위기는 정책창(Policy Window)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교수처럼 정부의 선동 정책을 이기려면 통계와 수치로 대응해야 한다. 의대 신입생을 늘리면 필수 의료가 해결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선동이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여러 설명이 필요하다. 비록 여러 설명이 필요할지라도 통계와 수치로 반박하고 국민을 설득해 가야 한다.

국민들과 상한 마음에 사직서를 내고 진료실을 떠난 일만 명의 대한민국 청년들 모두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이 있다면, 의학의 가치가 더 이상 훼손되면 안 된다는 것과 종북주의와 거짓과 속임수로 나라를 망쳐왔던 자들에게 다시 나라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애국심이다. 마지막 남은 애국심마저 없어지기 전에 해결되어야 한다. 판도라 뚜껑에 손을 댄 자만이 닫을 수 있다.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없어지면 우리 모두 망할 수 있다. 승자 없이 깊은 상처만 남는 게임을 멈추어야 한다.

루비콘 강을 건너면 안 된다. 님아 멈추어 서시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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