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습니다 석유뿐만 아니라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원자력 발전에 필수광물인 우라늄, 철강의 원재료인 철광석, 2차전지의 대표적 원재료 리튬 까지 생산되지 않아 대부분의 천연자원들을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자원 빈국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렇게 수입된 원자재들을 재가공해 더 높은 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많은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로부터 유연탄,철강석을 수입해 우수한 품질의 철강제품을 만들어 전세계로 수출을 하고 있고, 전기차 핵심 부품인 2차전지(배터리) 역시 원재료인 리튬같은 희토류들을 수입해 재가공하여 상당량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원자재를 수입한 뒤 재가공해 수출로 이어지는 형태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형태의 무역입니다. 외화를 들여와 경제 발전을 시켜야 했던 1960년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값싸게 원목들을 수입해 합판으로 만들어 해외로 수출했던 역사는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세계 1,2위를 다툴정도로 우리나라의 합판 수출은 유명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화학, 정유제품 역시 같은 구조의 산업입니다. 중동, 유럽, 동남아, 중남미 등 전세계에서 수입한 원유들을 재가공해, 휘발유, 등유, 경유, LPG 같은 정유제품으로 재가공해 수출을 하거나 플라스틱, 섬유, 고무, 고분자물질 등 산업에 핵심 재료가 되는 제품들의 원재료인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석유화학 강국으로 불리고 있는 이유는 이 석유화학이 단순 제품 수출에서 그치지 않고 석유화학 제조 시설인 생산설비 (공장) 들을 해외현지에 설치하고 생산이 가능할 수 있게 운영시스템까지 이식해주는 플랜트 산업 강국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석유화학 플랜트 산업의 역사, 그 자체이신 시니어 한 분을 소개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단지인 여수산업단지 건설초기에 기틀을 잡으셨고, 충남의 대산공업단지와 해외에 수많은 플랜트 건설 현장을 누비시며 건설해 오신 최흥식 전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님 이십니다.
최흥식 부사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충주비료를 시작으로 호남석유화학 (현 롯데케미칼), 삼성물산 (건설부문) 거친 후 삼성엔지니어링, 한국설비공학회 및 한국플랜트학회 고문 등을 역임하신 전설 같은 시니어입니다. 석유화학 플랜트의 대부가 된 계기를 여쭤보자, 50여년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당시 재직하고 있던 충주비료는 미국의 원조를 받아 설립된 최첨단 공장으로,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요람 같은 곳이었죠. 그곳에서 화학 공장의 기초를 다지고 있던 중, 국가에서 여수에 석유화학 공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면서 정부출자 추진기업인 여수석유화학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게 석유화학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지요.”
인프라 조성사업과 함께 최흥식 부사장은 여수산업단지 공사를 위한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석유화학산업의 경험이 미진하다 보니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준비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내 산업 전반을 조사하여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물자를 확인하고, 해외에서 구매해야 하는 물자, 그리고 들여야와 하는 기술등을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또 1년 정도는 일본 동경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일본 업체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고 설계와 기술 도입, 그리고 물자 조달 업무까지 담당했습니다.” 최흥식 부사장을 비롯한 당시 실무진의 노력으로 여수석유화학단지 공장들은 우리 기술진이 직접 참여한 첫 산업단지가 되었고 이뿐 아니라 다수의 기기와 부품을 국산으로 채택함으로써 국내 기술 발전에도 이바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여수석유화학 공업단지를 준공시킨 최흥식 부회장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으로의 이직과 함께 해외 현장에서 커리어의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여수산업단지 준공과 이후 충남의 대산석유화학단지의 성공을 기반으로 공사기술과 설비 부품들이 대부분 국산화가 이뤄졌습니다. 저도 국내 여러 공장들을 쌓은 경험과 기술로 해외 시장을 도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대만에 여의도의 10배나 되는 대단지 석유화학 공단을 포함하여 카타르, 태국, 인도, 사우디, 미국, 리비아, 알제리 등 국내외 60여개의 석유화학 공장들을 건설하며 우리나라 석유화학 플랜트 수출의 최선봉장 역할을 담당 하셨습니다.
세계 곳곳을 누빈 최흥식 부사장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사전준비, 관련부서 및 업체들과의 원할한 의사소통, 빠른 문제 해결 능력과 현지인들과의 소통능력이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건 문제가 없는 현장은 없습니다. 늘 제가 했던 것은 그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을 위해 동료들과 현지 근무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동일하지 않은 문화와 법 체계를 잘 살피고, 끊임없는 설득과 대화로 문제 해결을 해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척팍한 해외 현장에서 그 난관을 이겨내고 엄청난 역사를 세운 최흥식 부사장은 그 공로들을 인정받아 1992년 동력자원부표창, 1993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2002년 과학기술훈장 진보장 등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플랜트 분야에 기네스북이 있다면 전 세계 10억 불 이상 투자되는 석유화학 정유공장을 60여개 세운 기록으로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최흥식 부사장님과 같은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의 노력으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인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정제능력과 석유화학 제품 생산량으로 전세계 상위 석유제품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우수한 기술력을 전 세계에 널리 퍼트려 우리의 기술력으로 세운 공장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리딩으로 불패신화를 이뤘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실적들이지만 그 놀라운 성과들을 두고는 ‘매순간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을 뿐입니다.’라는 말로 최흥식 부사장은 세상에서 쏟아진 모든 찬사와 칭찬들을 겸손히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최흥식 부사장의 행보를 보면, 어떤 난관에도 문제들을 헤쳐나가면서 뚜벅뚜벅 걸어온 우리 민족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런 자원도 없는 나라가 외화를 벌기 위해 원목을 수입해 합판을 만들고, 철광석을 수입해 철강제품을 만들고, 원유를 수입해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최흥식 부사장은 현재 한국플랜트학회에서 고문 역을 맡으며 그가 경험했던 땀과 지혜의 가치를 후학들에게 전수하고 있습니다.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최흥식 부사장을 보며 그의 경험과 노력을 닮은 인재들이 계속해서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도전정신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