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부부 사이 거짓말, 어쩔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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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119] 집안에 CCTV를 달까?

▲ⓒ저자 제공
▲ⓒ저자 제공

1

“집안에 CCTV를 달아야 돼.”

“달아, 달아! 당장 달아.”

이 말은 우리 부부가 종종 나누는 대화다. 무슨 일을 두고 이야기를 했거나 어떤 행동을 했는데 서로 말이 안 맞아서 답답할 때 블랙박스가 필요하다는 대화인데, 아마 다른 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리라 믿는다. 대개 이런 때다.

1) 분명히 말해놓고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잡아 뗌.

2) 분명히 전달받고도 못 들었다고 오리발 내밂.

3) 어떤 말을 하긴 했으나 확답을 준 것은 아니라고 말을 살짝 바꿈.

​4) 어떤 안 좋은 말을 했지만 그렇게까지 심한 표현은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함.

​5) 어떤 건설적이고 좋은 이야기는 분명 내가 말한 것 같은데 자기가 했다고 우김.

기억력은 내가 더 좋은데, 늘 이런 일은 내가 더 많이 했단다. 아무래도 아내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것 같지만, 이름이 ‘욱이’라서 우긴다는 말조차 ‘그런가?’ 싶을 만큼 아내와 말하다 보면 죄다 내 잘못으로 끝나곤 한다.

그나마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는 증거가 남는데, 말은 어디 저장된 것이 아니라서 종종 공방이 생긴다. 뭐 대단한 공증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대개는 사소한 것, 남들이 들으면 별걸 다 따진다 할 만한 것들일 테지만 부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니…, 건성으로 대답하고 잊어버리다니…,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기억도 못할까…, 여자를 말로는 못 당하니 주로 당하는 쪽은 남편이다. 아무튼 그렇게 CCTV를 달아야 한다고 서로 억울해하면, 우리 딸이 반려견용 카메라라도 설치하라고 조언하곤 한다.

2

사람의 기억은 왜곡된다. 그리고 왜곡된 채 저장된다. 그래서 철석같이 사실로 믿고 있지만, 잘못 알고 있는 일들이 많다. 카카오톡으로 분명히 말한 것 같은데 찾아보면 남아 있지 않은 때도 있다. 말해야지 했다가 잊은 것도 메시지를 보냈다고 착각하는 등 머리에서 계속 일종의 버그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부부의 기억은 다르게 기록된다. 당연히 헤어진 연인들의 추억도 다르게 적힌다. 안 좋게 이별했다면 내가 잘한 것은 부풀려 기억하고, 상대방이 잘한 것은 축소하다 못해 잊어버린다. 물론 내가 잘못한 일은 잊고 상대방의 실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비율 차이는 있겠지만 똑같이 기억의 실수를 저지른다. 어떤 때는 정말 억울해 녹음이라도 하면서 말을 해야 하나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귀찮아서만이 아니라 내 실수가 담겨서 증거로 남을까 걱정해서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 기억, 지식, 인식 등은 정말 초라하고 불완전한 것이다. 사람이 일생 동안 내뱉은 거짓말을 기록한다면 아마 팔만대장경, 아니 팔만 두루마리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거짓말에 대해 여러 번 다루고 있는데,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했고(롬 3:3), 거짓말하는 영이 있다고도 했다(왕상 22:22; 대하 18:21 등). 그 거짓의 아비는 다름 아닌 마귀다(요 8:44).

사람의 거짓말은 워낙 많아서 종종 당연시되기도 한다. TV 예능이나 유튜브에는 웃기기 위해 거짓말과 가짜로 설정을 하는 일이 흔하다. 사실 영화나 소설도 일종의 거짓으로 픽션(fiction, 허구)이며, 논픽션이라는 다큐멘터리나 탐사 취재 등도 가설이나 추정 같은 것 없이 100퍼센트 진실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움직이면 먼지가 나듯, 사람은 거짓이라는 족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오직 진실함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찾을 수 있는 거룩한 속성일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배고픈데 괜찮다고 하고, 안 했으면서 하고 있다고 하고, 아직 멀었는데 다 왔다 하고, 시간을 낼 수 있지만 바쁘다고 하고,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한다. 물론 속일 의도나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굳이 긴 설명 하기가 애매해서 그냥 둘러대는 경우도 있고, 절반의 사실을 기반으로 모두 사실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때론 배려나 미덕으로 작용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가볍게 여기는 습관은 당연히 좋지 않다. 한 개의 거짓말을 감추려면 일곱 개의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거짓이 거짓을 낳아 점점 불어나기도 한다.

사람 간의 다툼, 특히 가족 사이 다툼은 사실 아주 작은 차이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일을 자꾸 따져봐야 시간 낭비다. 거짓말쟁이들끼리는 아무리 다툰들 100 대 0의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을 보신다면 아마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실 수 없는 싸움이다.

마치 욥의 친구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며 논쟁할 때, 그 안에 옳은 말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진짜 진실한 사람은 자신의 진실을 굳이 항변하지 않는다. 들을 귀가 없는 자들에게는 말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3​

성경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다. 심지어 저주하고 맹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거짓말한다. 그는 수탉이 울자 그제야 예수님 말씀을 기억해내고 비통하게 운다. 거기 CCTV라도 있어서 돌려보았다면, 그는 더욱 참담했을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전에 또 다른 거짓말을 했다. 바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장담했던 일이다(마 26:35). 주님을 부인했을 때 그가 한 말은 자동으로 또 하나의 거짓이 됐다. 그래서 거짓말은 그것을 가리기 위한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한 것은 물론, 과거의 자기 말과 약속도 거짓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형을 속여 맏아들의 권리를 취한 야곱은 거짓말로 남편을 속인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아버지 이삭의 축복까지 받지만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 야곱이 곧 이스라엘이고, 그들의 고통은 마지막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모든 인류의 곤고한 삶은 이브의 거짓말과 아담의 변명에서 시작한다. 그들의 후예인 인류는 늘 거짓을 섞어서 말을 바꾸며 둘러대곤 한다.

남자들은 맘에 드는 여자를 섭외할(?) 때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것을 다 이행하기는 어렵고 불가능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만 약속하면, 여자가 넘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런데 자기가 한 말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남자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뒤늦게 깨닫고 허황된 약속을 하지 않고 살면, 변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결혼 자체가 거짓이 아니고는 이룰 수도 이어갈 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감언이설급 유혹에도 콩깍지가 아니면 결혼을 할 수 없고, 속으면서도 용납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판단력을 페로몬으로 잠시 마비시키시는 사랑의 묘약 같은 것인데, 그 때문에 좀 억울해도 가족 사이에는 서로 손해를 보며 살고, 지나가면 또 그런가 보다 한다. 결혼할 때도,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 마음들만은 진실일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도 믿음이 연약했을 뿐,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통곡한 것이다.​

집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언제 그걸 다시 돌려서 볼 것이며, 확인한다 한들 지나간 이야기를 무엇으로 책임질 것인가. 또 확실한 범인(?)이 드러난다 해도 공방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이렇게 말한 건 인정! 하지만 내가 오죽하면 이렇게 말했겠어…, 하면서 그 앞의 발단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아마 엄청난 시간 낭비를 할 것이다.

원래 모든 관계는 한 사람이 손해를 봐야 이어진다. 부모 자식 간에도, 친구 간에도, 어떤 거래처와도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백퍼센트 공평한 관계는 있을 수 없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서로 용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이래서 집안에 CCTV를 달아야 한다니까.”

“내 말이… 저번에 한다더니 왜 안 했어?”

“딱 기다려. 당장 주문해야지.”

오늘도 유치한 대화를 이어가지만, 여전히 우리 집에는 CCTV가 없다. 다시보기로 진위를 가려낸들 크게 개과천선할 것도 아니고, 별다른 소득도 없어서일 거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 우기고 다투다 또 원점으로 돌아오는 게 삶이라는 것을 알기에 잠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뿐, 괜한 짓 할 여력이 있으면 상대방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할 일이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다. 그런데도 모든 말을 의심하고 점검할 수는 없다. 결국 믿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다. 거짓말쟁이가 확실한데 믿어야만 같이 갈 수 있다는 아이러니는, 내 말의 신용을 돌아보는 동시에 상대방의 실수는 용납하는 이타적인 자세를 상기시킨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CCTV를 설치하는 것보다 훨씬 이롭고 평안하다. 그래도 정 억울하다면,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실 주님이 먼 훗날 모든 오해를 풀어주실 것이라는 심정으로 살면 된다.

애증으로 뒤섞인 부부의 손익을 계산기로 정산할 수 없듯, 감시 카메라만으로는 진실을 가려낼 수 없다. 카메라는 부부의 속마음도 사랑도 담을 수 없을 것이기에.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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