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이란 제품을 아시나요? 언제나, 어디에서나 간단하게 가열만 하면 갓 지은 쌀밥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으로 90년대 중반 출시되어 현재까지 30억 개 이상이 판매된 우리나라 대표 무균밥 제품입니다. 도정된 쌀을 씻고, 불리고, 적당한 물을 맞춘 뒤 가열을 하고, 뜸을 들여야만 먹을 수 있던 쌀밥이, 이 제품 덕분에 근처 슈퍼나 마트에서 손쉽게 사서, 전자레인지나 끓는 물에서 가열만 하면 간단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제품이 되는 것이죠.
이처럼 단순한 쌀밥이 상품이 되어 손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포장기술 덕분입니다. 갓 지은 쌀밥을 용기에 포장을 하고, 다시 가열을 했을 때 처음의 그 밥맛을 유지 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맛뿐만 아니라 또 생산과 유통, 판매까지 고려했을 때 장기간의 유통기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포장기술은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갓 지은 밥이 산소와 만나 밥맛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기능성 필름을 사용하고, 유통 중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균실에서 작업을 한다든지, 전자레인지나 뜨거운 물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특수 용기를 사용을 한다든지, 하나의 제품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포장 기술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렇듯 포장기술은 현대에 와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본 제품을 담는 데 필요한 포장을 넘어서서 제품을 부각시키는 마케팅적인 요소, 하나의 제품을 상품화시킬 수 있는 요소, 더 나아가 제품의 일부로서 여겨지는 패키징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시니어는 이 포장업계에 60여 년간 몸담으며 ‘포장의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김청 한국포장산업연구소 대표입니다.
포장기술사이자 공학박사이기도 한 김청 대표는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 1964년 제지업체에 취업하고, 훗날 종이포장 기업인 ㈜한선을 창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포장산업의 발전과 진흥, 새로운 포장문화 창달을 위해 1984년 (주)포장산업과 부설 한국포장산업연구소를 설립하여 포장의 적정화, 과학화, 선진화, 환경친화의 기치를 내걸고, 국제 포장기술 정보와 업무 교류, 포장전시회, 관련 도서 출판, 포장진흥·조사·연구 등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포장 업계 대표 매거진인 정보지 월간포장을 간행하며 다양한 포장관련 전문 이론 서적을 저술하신 국내 포장, 패키징 업계의 대부 같은 분입니다.
“대학 졸업 후 60년대 산업용지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포장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포장의 개념이 미비했던 나라였습니다. 포장은 제품의 부자재 정도로 취급해 물품을 그냥 싸고 담는 정도로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분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 포장기술의 발전 없이는 수출지향적인 우리나라 산업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제기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가적으로 포장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내 포장연구실이 개설되고, (재)한국디자인포장개발원 등 공기관들이 설립되면서 포장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이 시작되어, 국내 포장산업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월남 파병 장병들을 위한 군수 물자의 까다로운 국제적 포장 품질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포장기술 발전에 기여한 예이기도 합니다.”
각종 포장 자재와 용기가 국내에서 생산되고, 포장기술도 동시에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상품들이 생산되고 시장에서 소비되면서 포장이 원래 목적인 보호·보전은 물론 마케팅에서 ‘말없는 세일스맨’으로 부각되면서 포장에 대한 인식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제품이 상품으로 성공하려면 제품+포장=상품으로, 포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은 이제 정석이 되었습니다. 제품을 단순하게 싸고 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포장기술과 결합한 다양한 포장상품들이 시장에서 호응을 받고 있지요. 예를 들면, 무균밥이나 인스턴트 스틱커피, 발효 문제를 극복한 김치포장, 환경 친화적인 다양한 제품 등 여러 노력과 시도가 다방면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포장기술과 포장산업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김청 대표는 세계적으로 포장(packaging)의 중요성이 날로 인식되고 있는 터에, 우리나라 포장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에서의 전문학과 창설과 포장의 과학화를 위한 이론서의 부재가 아쉬웠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업계 중지들을 모아 연세대학교에 우리나라 유일한 패키징학과 설립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패키징학과는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포장 관련 전문서적들이 많이 발간되어야 업계 종사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포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포장 산업 발전에 뒷받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처음 집필한 <포장이야기> 등 7권의 ‘포장지식시리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포장의 세계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사례를 통해 친근하게 알려주고 있어 포장기술 입문서로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1999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포장 업체를 운영하면서 현장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그간 모아뒀던 국내외 기술정보와 동향 등을 정리해 책으로 엮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저술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포장학개론>, <인쇄기술>, <식품포장학개론>, <골판지포장기술>, <플라스틱포장기술>, <금속용기포장과 캔>, <유리용기포장>, <패키지디자인전략> 등 현재까지 20여 종이 넘는 포장 전문 서적들을 저술, 개정하면서 포장의 학문적이고도 과학적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포장학 개론>은 포장학의 체계를 잡았다고 평가하고 있답니다.
저술 활동 외에도 김청 대표는 포장 업계 최초 정보잡지인 ‘월간 포장’의 발행인으로도 긴 시간 활동해 왔습니다.
“80년대에 들어서며 성장하고 있는 포장 업계를 대변하고 국내외 포장기술 정보를 교류하는 정보지가 있어야한다는 업계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다르게 당시에는 잡지를 창간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인허가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 직접 발품을 팔며 각계의 사람들도 만났고요. 이런 노력들이 모여 1984년 4월 국내 최초 순수 민간 포장정보지인 ‘월간 포장’이 창간되었습니다.”
매거진은 매월 업계 전반적인 경영과 기술 동향을 공유하며 포장 관련 전시, 연구, 용역 사업을 진행하며 포장업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4년 창간 30주년이 될 때까지 ‘월간 포장’을 이끌었던 김청 대표는 후배에게 그 역할과 임무를 물려주었습니다. 현역에 있는 동안 (사)한국포장기술사회 회장, (사)자원순환포장기술원 원장 등 업계를 위한 봉사직을 맡으며 포장기술과 포장산업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보처장관, 지식경제부장관 유공자 표창, 환경부장관 공로상, 국무총리 표창,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포장기술 발전을 위해 달려온 김청 대표는 이제 마지막 역점 사업으로 한국포장산업연구소 내에 고급 포장기술교육과정을 개설하여 고급인재 양성교육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다양한 포장재료인 지기, 골판지상자, 플라스틱 필름, 시트와 성형용기, 금속캔, 유리병, 목재상자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물류효율화와 환경대응을 위한 적정포장 설계 전문가의 육성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포장업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 산업발전을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포장산업 현장에서 60년을 보낸 인생 전부를 걸쳐 한 분야에서 몰두하고, 본인이 쌓아온 노하우를 또 다시 산업 발전을 위해 저술 활동과 교육 활동에 나선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후에 있을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청 대표를 보며, 우리 시대에 은퇴는 있을지언정 멈춤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