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칼럼] 르네상스(1)-오르산미켈레성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릴 때, 6.25를 경험했다.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산속의 방공호에 들어가기도 했고, 시뻘건 포탄이 읍내를 향해 하늘을 가르고 날아갔다는 어른들의 얘기를 들을 때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무언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 그것은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아닐까? 그런 두려움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지배할 때, 그 여파는 대단하게 된다.
지금 피렌체는 그런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1348년의 여름,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엄청난 재앙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옆집, 아랫집, 자주 만나는 이웃들이 갑자기 죽어 나가는 상황을 맞이해야 했을 때, 어떤 병인지, 어떻게 전염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4년 전 밀라노 인근에서 발명하여 수많은 사람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야 했던 코로나처럼, 번성하던 피렌체 인구의 반 가까이 목숨을 잃어야 했으니 말이다. 아마 시내는 빈집투성이였을 것이다. 마치 전쟁 중에 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난 것 같은 모습처럼 말이다. 그 후 치열했던 흑사병이 주춤하게 되자 용케 살아남은 자들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흑사병의 전염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중에 소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오르산미켈레(Orsanmichele, 대천사 미카엘의 텃밭이란 의미)의 건물 1층에 성모 마리아를 봉헌하는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 성소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1292년에, 그곳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경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그 소문이 50여 년 동안 신화처럼 전해오다가, 전염병(흑사병)에 대한 공포로 전국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움을 만나게 되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있다. 70년대 초 도서실 관장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당시 빌려준 돈을 받아 달라는 의뢰인의 부탁을 받을 때,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을 엿보다가 갑자기 가격한다고 한다. 그들은 전문가들이기에, 어느 부위를 가격하면 얼마를 입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해박하다고 한다. 그리고 가격당한 자가 어느 병원에 입원하였는지를 확인한 후에, 의뢰자에게 3-4일 기다렸다가 전혀 모른척하고 꽃을 사 들고 병문안을 가라고 안내한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병문안을 가게 되면, 얼마 후에 빌려준 돈을 받게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병원에 입원한 자는 첫날이나 둘째 날은 전혀 모르는 자에게 당한 게 너무 억울하여 씩씩거리다가, 마음이 가라앉게 되면 자신을 본능적으로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아, 내가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일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였구나” 깨닫고 빌린 돈을 갚는다고 한다. 사실인지 모르나 그럴듯한 얘기라서 50년이 지났는데도 기억에 남아 있다.
피렌체 사람들에게도 흑사병의 엄청난 재난 앞에서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들은 처음 양모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양모가 많이 나는 잉글랜드에서 양모를 수입하여 플 랑드르의 공장에서 실을 만들어 전 유럽과 세계에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그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런데 탐욕은 멈출 줄을 모른다.
저들은 번 돈을 이자로 빌려줌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돈을 늘렸다. 그런데 흑사병의 범람으로 자신의 탐욕을 돌아보게 되었다. 교회에서 철저하게 금하는 탐욕에 빠졌고, 더 나아가서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어기면서까지 돈을 벌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단테는 이런 탐욕 자를 지옥 7층에 떨어진다고 신곡에서 묘사하였으니 두려움은 굉장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 오르산 미켈레 성소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영험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성스러운 성소를 수리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헌신하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연옥에서 고통이 감면될 것이고, 거기서 천국으로 쉽게 갈 수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일에 시민들, 특히 부자들에게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공사는 무려 요즈음 돈으로 환산하며 7백억 정도 소요되는 대공사였다. 그런데도 죄를 탕감받거나 면제받는 일이니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다.
특히 성소의 외벽에는 조각상을 장식하도록 하였고, 조각가, 기베르티(Lorenzo Ghiberti1378-1455)로 하여금 마태의 조각상을 주문했다. 마태는 세리 출신이었기에 자신들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전대미문의 흑사병이 시민들을 죽음에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그 두려움이 르네상스라는 인류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